이름이 무려 HP-01입니다. 그 이름값을 하듯 HP 로고를 달고 출시하는 최초(이자 마지막) 인 계산기 달린 시계이죠. 1977년에 출시되었으며, 당시 가격은 은장 모델이 $650에 금장 $750으로 당시 물가를 고려하면 상당히 비쌌던 물건이죠.
물론 그 후 2년도 지나지 않아 굉장히 얇은 사이즈에 LCD까지 달려있는 주제에 더 저렴한 계산기 달린 시계가 일본브랜드에서 쏟아져 나옵니다. 이 당시의 전자기술 발전속도는 지금보다 훨씬 빨랐으니.
그렇지만, HP-01은 너무나도 강력하여 그 당시뿐만 아니라 이후에 출시된 여러가지 시계들은 따라올 수 없는 요소를 많이 갖추고 있거든요. 이 시계는 그냥 계산기 달린 시계가 아닙니다.
이당시 계산기 시계가 으레 그렇듯 버튼이 작아서 전용 스타일러스 없이는 쉽게 누를 수 없는데, 이 모델은 아예 시계의 Bracelet에 작은 스타일러스 펜을 내장하여 한번에 버튼을 누를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버튼의 설계마저 공돌이 감성을 예술로 승화시키는 HP답게 굉장히 정밀합니다.
- D는 Day, A는 Alarm, M은 바로바로 기억해야할 숫자들을 메모리하는 기능, T는 Time으로써 이 기능들은 시계의 LED가 꺼져있을때 빠르게 확인이 가능해야 하기 때문에 쉽게 누를 수 있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 S는 Stopwatch R은 스탑워치 리셋기능에 할당되어 있으며, 이 기능은 반드시 필요할 때 손으로 빠르게 눌러야 하여 중요도는 높지만 기능 작동시 화면이 상시로 켜지게 되어 배터리 수명에 문제가 발생하므로 오조작을 방지하기 위해 움푹 들어가 있습니다.
- 나머지 숫자 단추들은 스타일러스 없이는 전혀 조작할 수 없으며, 이는 손으로 조작시 다른 버튼과 숫자버튼을 헷갈려서 오조작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기능입니다.
굉장히 다양한 기능들을 지원하기 위해, 일반적인 디지털 시계들과 확연히 다른 조작 방식을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977년 기술의 한계로 이 모든 기능들이 전부 원초적인 몇 가지 기능에 기반하고 있어 사용자의 완벽한 이해와 암기를 반드시 필요로 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잘 안 와닿을 수 있으니..
- 하단부 중간의 삼각형 버튼은 '엔터' 및 선택 완료
- ':' 버튼은 시간 입력 활성화이며, 이는 계산기로 시간을 계산하거나 알람 및 타이머를 설정하는 일종의 set 버튼
- '/' 버튼은 날짜를 입력하는 버튼
- 이 버튼들과 기능 버튼, 숫자 버튼들의 조합을 이용해서 내장된 기능을 다양한 용도로 응용 가능
- S를 누르면 스탑워치 실행, :을 누른 뒤 시간을 입력하고 S를 누르면 타이머 실행
- '스탑워치의 초 값' 와 '타이머의 남은 초 값' 를 변수로 잡아 함수를 만들어 계산 가능
- 이렇게 해서 나온 스탑워치의 시간과 그 값을 바탕으로 세운 함수로 뽑아낸 값을 따로 표시 가능
- 계산기 모드에서 에서 ':' 버튼을 눌러 시간 계산
- 퍼페추얼 캘린더 기능으로 날짜와 요일 계산
암기는 어려워도 쉽게 이해가능한 인터페이스를 통해 최소한의 기술을 바탕으로 최대한의 기능을 구현해 당시의 부족한 기술을 극복하고 계산기의 한계를 끌어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입력방식은 RPN 그런거 아니고 일반적인 휴대용 계산기들과 동일합니다.
심지어 이 모델은 1년에 30초의, 지금 시점에서도 뛰어난 수준의 정확도를 보증합니다. 40년이 지난 지금 나오는 쿼츠시계들이 1달에 약 30초의 오차를 보증한다는 것을 비교하면.
현재 이 모델은 콜렉터즈 아이템으로, 예술성을 인정받았으나 한정수량 생산이라는 치명적인 문제점으로 인해 꽤 희귀하며 이베이에서는 약 80만원 - 100만원 선에서 구할 수 있습니다.
역사상 최초의 휴대용 공학용 계산기인 HP-35는 35주년을 맞아 복각판 모델이 출시가 되었죠.
그런만큼 얘도 좀 복각 만들어 줬으면 좋겠네요. 듣보 모델도 아니고 많은 엔지니어가 인정하는 모델이니.
간지와 실용성 둘다 보장이 됬으면 좋겠지만 항상 그럴순 없으니.. 액정 LCD로 바꾸고 좀 큼직하게 만든뒤 오리지널판에 있는 기능 전부 살려서 얇고 가볍게 만들어서 팔면 꽤 잘팔릴거 같은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