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왕이 관산성에서 패배한 이후 백제는 왕권이 약해지고 귀족들이 득세합니다.
그걸 무왕대에 나름 수습하긴 하는데 그 방법이 신라를 공격한다였죠.
그런데 문제는 의자왕은 그 어머니가 신라 공주 선화공주란 설도 있고, 그게 아니더라도 자신을 뒷받침할 권력이 없는 듣보잡 츌신입니다.
권세 있는 외가가 아니니 무왕의 장남인데도 40세의 나이에 태자가 된 걸 볼 수 있죠.
이런 상황에서 해동증자라 보일만큼 완벽한 모습을 연기하면서 왕이 되기 전까지 굽신거리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겨우 왕이 된 후 의자왕이 왕권을 강화하면서 권력을 지킬 수단은 두개 뿐입니다.
1. 신라를 공격한다. 외부의 적을 만들어서 나라를 결집시키는 겁니다.
2. 친위쿠데타와 코드정치. 자신의 아들과 친인척을 좌평 등 주요직에 앉히고 반대파를 없애는 거죠.
그런데 이 두개가 처음에는 잘 먹혔는데 그게 결국 의자왕과 백제를 멸망시킨 겁니다.
신라를 과도하게 공격하는데 집착해서 정작 당나라와의 외교는 뒷전이 됩니다. 당나라는 백제에게 고구려 공격을 도울 걸 요청했지만 고구려와 함깨 신라를 침략해야 하니 그걸 무시합니다.
거기에 당나라가 신라 좀 그만 패고 우리 도와달라 하는 것도 씹어버리니 백제를 좋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거기에 귀족들을 누르고 자기 친인척을 앉혀버리니 기존의 귀족들은 왕에게 불만을 품습니다. 의자왕이 사치를 했다느니 폭군이라느니 하는 건 이런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으니 나온 겁니다.
그래서 의자왕 초중기를 보면 잘 나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상누각이나 다름없던 겁니다.
이런 것들이 하필이면 삼국통일전쟁에서 나쁘게 터져버린 거죠. 신라에게 하도 어그로를 끌고 당도 저 백제가 얄미운 참이라 협공을 당한 건데, 정작 이 위기상황에서 백제가 군사력을 풀로 발휘를 못합니다. 풀로 발휘하면 나름 싸울 만했다는 건 백제부흥운동 당시 저항과 백강 전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귀족들이 협조를 거부해버리는 거죠. 그러니 나라가 멸망할 지경인데도 계백이 고작 5000명으로 신라를 맞서야 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거기에 마지막으로 예식진이란 귀족이 농성하는 의자왕의 통수를 날려버리는 겁니다.
결과적으로 백제는 신라처럼 국가가 일치단결을 못한데다가 귀족 연합 국가에서 나타나는 한계를 극복을 못했습니다. 거기에 의자왕 자신이 가진 한계까지 최악의 상황에 터져버린 거죠. 이걸 간단하면서도 확실하게 잘 묘사한 게 영화 <황산벌>입니다.
그런 점에서 의자왕은 나름 노력은 했지만 그 한계점을 이겨낼 수 없었고 없었고, 그게 그를 망국의 군주로 만들었죠. 마치 명나라 숭정제처럼 능력은 있는데 시대를 잘못 타고난 겁니다.
이 글은 신라 출신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