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 일본인데..
일본은 1185년 가마쿠라 막부가 들어서면서 교토의 덴노를 중심으로 한 정부(이하 조정)이 힘을 잃고, 무로마치 막부와 전국시대를 거치면서 사실상 이름만 남게 됩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힘 있는 다이묘와 무사들은 조정의 관위와 역직을 얻으려고 했는데 이유는 바로 권위 때문이었죠.
그래서 조정은 힘 있는 다이묘와 무사들에게 대놓고 관위를 팔기 시작하는데 대표적으로 오우치 요시타카는 금 2천량을 바치고 규슈의 총괄작인 다자이노쇼니(大宰少弐)를 얻어 규슈 지역의 다이묘 오토모 씨를 억누르려 했죠. 우에스기 겐신도 조정은 아니지만 막부(전국시대라 막부도 허수아비 신세)의 간토간레이(関東管領)직을 얻어 호조씨와 다케다씨를 기선제압하려 했고요.
물론 그런 직위와 상관없이 그저 직위가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미가 있어서 생뚱맞은 벼슬을 가진 경우도 있습니다. 다케다 신겐이 그런데 그의 벼슬은 다이센다이부(大膳大夫) 입니다. 역할은 황실의 음식을 공급하는 역할, 즉 요리사 쯤 됩니다. 일단 그도 그 벼슬을 얻은 만큼 조정에 식재료와 음식을 지원해 줬다고 합니다.
이러다 보니 아예 거짓으로 관직을 사칭하는 일도 생깁니다. 예를 들어 오다 노부나가는 카즈사노스케(上総介)란 관직을 받지도 않았으면서 자칭했죠. 그 외에도 오와리노카미(尾張守)를 칭하기도 했죠. 다아묘 외에도 좀 이름있는 무시들은 ~스케, ~카미 같은 지방관 명칭이나 적당한 관의와 역직을 사칭하는 일이 빈번했습니다.
이런 매관매직은 에도 막부가 성립되고 무가제법도, 금중병공가제법도 등이 만들어 지면서 끝납니다. 대신 막부가 다아묘의 서열에 따라 관직을 정하고 조정에 도장을 찍어주게 합니다. 어찌보면 더 비참해 보이지만요. 대표적으로 쇼군은 대신급, 고산케는 납언급 이런 식으로요. 대표적으로 일본판 박문수 포지션인 도쿠기와 미츠쿠니(미토 고몬)인데 그는 고산케라서 중납언(츄나곤, 中納言)이며, 그 직위는 중국의 황문시랑(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보좌관)에 비견됩니다. 미토 고몬이란 명칭도 도쿠가와 미츠쿠니가 미토 번 다아묘이자 황문시랑이라 생긴 별명이죠.
P.S 심심하면 나오는 ~카미나 ~스케 같은 관직은 일본 조정의 고쿠시(国司, 중국의 태수에 해당)직입니다. 등급에 따라 카미(守), 스케(介), 조(掾), 사칸(目)이 있는데 보통 지방명+카미 or 스케를 붙입니다.
그런데 또 무로마치 막부가 슈고(守護)라고 또 지방관을 만들면서 복잡해집니다. 슈고가 조정의 태수직을 겸하면 문제가 없는데 별개로 있으면서 대립하거나 힘으로 제압하거나 하극상하기도 합니다.
거기에 관직을 실제 가진 사람과 그걸 대행하는 사람(이 명칭도 복잡하지만 보통 다이칸(代官)으로 퉁침)이 서로 싸우는 일도 생기며, 심지어는 생판 상관없는 사람이 사칭하고 싸움을 거는 일도 생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