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대, 아키하바라 일대에 조차장이 있던 시절에 당시 이 일대 지명은 지금과 같이 秋葉原라고 표기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3개의 형태소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바로 秋+葉+原입니다. 아키+하+하라 가 되겠네요.
개음절 구조인 일본어는 한 음절에 반드시 모음이 들어가고, 따라서 CV+CV 구조를 취하므로 폐쇄음화 현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흔히 일본어에 받침소리 [ㄱ, ㄷ, ㅂ]가 없다고 하는 이유입니다). 따라서 청음은 모음(비음)의 영향을 받아 탁음으로 전탁화(유성음화)하게 됩니다.
즉 당시 秋葉原는 아키하+하라 로 IC분석이 되는 합성어였으므로, 한 단위인 秋葉는 아키바로, 앞에 휴지(#)가 있다고 인식한 原는 전탁화되지 않고 하라로 읽혔습니다. 적어도 20년대까지는 말입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기차역 역명 후리가나에 아키바하라 대신 아키하바라 같은 표기가 등장하게 됩니다. 이유는 모릅니다.
스푸너리즘 현상 때문에 자음이 도치되었을 수도 있고, 담당자의 단순 실수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秋葉原는 아키하바라로 불리게 됩니다.
이 상태에서는 더이상 秋葉+原라는 IC분석이 불가능해집니다. 굳이 음운 현상에 맞추자면 秋+葉原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葉原라는 어휘는 존재하지 않으므로 秋葉原라는 합성어는 복합어 지위를 잃고 단일어화(어휘화)가 되었다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언어라는 것은 자의성이 강하고, 언중들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고 있음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기호학파가 얼마나 선구적인 사상을 갖고 있었는지도 말이지요.
+지명 유래를 찾아보니 秋葉原는 원래 아키하(노)하라였다고 하네요. 그래도 아키하#하라 로 분석이 가능하니 단일어화가 일어났다고 판단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