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기초교육과정에서 하는 수준의 설명을 반복해야 할거라곤 생각을 못했습니다만 길어질거 같아서 따로 글을 팝니다.
화폐라는 개념에 대해서 교과서에서는 가볍게 약속, 신용 정도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재화와 교환하는 수단으로써 이야기 하죠. 그런데 이걸 좀 깊게 정확히 무엇인가 설명하면 상당히 무거운 이야기가 됩니다.
여러분은 예외적인 케이스들을 제외하면 이 살면서 국가라는 커다란 중앙체제의 아래 속해서 살아갑니다. 해야할 행동과 해선 안될 행동, 그리고 구성원들의 최소한의 판단 지침을 규정하는 법과 그만큼의 강제성은 없지만 그 사회를 구성하는 이들이 정하는 수많은 사회규범들이 있고, 또한 그러한 법과 사회규범들을 바탕으로 수많은 제도들이 굴러가고 있고 여러분의 생활은 깊건 얕건 그 영향 아래 있습니다. 물론, 그냥 법전에 써있는 글귀는 그 자체로는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그 법을 존중해야 의미가 있는 겁니다. 그걸 존중하게 만들기 위해서 사회 구성원들을 일정한 방향으로 가르쳐 이끄는 교육이 있고, 법에 따라 일탈을 막고 처벌함으로써 다른 구성원들을 보호하고 규범들을 지키게 만드는 사법기관이 있는거죠. 뭐 그리하여 국가마다 천차만별이지만 여하간에 그렇게 사람들을 강제하는 규칙 아래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게 됩니다. 화폐의 신용이라 하는건 바로 그런 규칙의 일부입니다.
여러분은 대한민국에 태어난 이상 원화라는 화폐를 주거래수단으로 하여 여러분이 만들어내는 가치, 즉 재화와 용역을 제공하게 됩니다. 화폐에 부여되는 가치는 다른게 아닙니다. 그 화폐를 발행하는 국가에 속해있는 여러분들이 창출하는 그 가치가 법과 사회규범에 따라서 그걸 살 수 있는 화폐에 부여된겁니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여러분이 재화와 용역을 돈을 받고 제공 하는게 아닌겁니다. 이러한 체제를 구성하는 요소들은 당연히 그냥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그 근간을 이루는건 인간이 쌓아온 역사와 지식과 그걸 바탕으로 한 수많은 법과 제도, 그리고 그걸 바탕으로 만들어진 국가라는 체제입니다. 화폐라는건 그런 토대 위에서 존재하기에 겨우 장부상의 숫자 따위가 아니라 여러분의 일상을 좌우하는 물건이 됩니다. 화폐를 사람들이 가벼이 "믿음"이라고, "약속"이라고 하지만 그 이면에 존재하는 이야기는 그렇게 무거운겁니다.
그렇기에 화폐의 가치에 있어서 중앙은행의 금고에 들어 있는 금은 그저 "따위"가 됩니다. 아무리 금이 가치있는 물건이고 그걸 많이 보유하고 있다 한들 사람들이 그 화폐를 믿을 수 없다면, 그러니까 그 화폐를 발행한 국가를 믿을 수가 없다면 화폐를 믿고 쓰기 보다는 그 국가의 중앙은행의 금이 모조리 거덜날때까지 사람들은 그 화폐를 들고 당장에 달려가서 금으로 바꿀겁니다. 그리고 금고가 비는 것으로 끝이 나는거죠. 실제로도 금은 아니지만 산유국으로써 풍부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데도 베네수엘라의 화폐는 정부와 국가경제 꼬라지가 개판이 나니까 아제로스 골드보다도 싸구려가 된걸요!(그 와중에 저는 윈도우즈 라이센스를 싼값에 사서 너무나도 유쾌했습니다.) 역사적으로 고대로 부터 수많은 화폐가 만들어졌으나 그 중 상당수가 실패한 것도 다른게 아니라 바로 국가체제가 저러한 "신용"을 제공하는데 실패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신용"을 제공할 수 있기에 현재 강대국이라 하는 국가들의 화폐는 중앙은행에서 금태환을 해주지 않고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겁니다. 은행에 들어있는 금덩어리 따위가 아니라 그 나라를 구성하는 법과 제도, 사회규범, 그리고 거기 종속된 사회 구성원들이 그 가치를 만들어주니까요. 그런 뒷받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구태여 금본위제로 화폐를 금에 종속시켜 그 규모를 경제발전을 따라가지 못하고 제약시켜 버리는 대신에 금본위제 자체를 폐기해버리는겁니다. 금 본위제를 폐기한 덕에 현재 경제 체제가 이만큼 확장 될 수 있던겁니다. 그렇지 않고 여태까지 금 "따위"에 경제가 매달리면 거기에 발목이 잡혀서 더 커지지 못했을겁니다. 지폐가 아닌 금속화폐를 원시적인 기술로 한심한 물량만을 간신히 만들어내던 그 시절에 전황이 벌어지던 것 처럼요.
사실 속칭 "암호화폐"라고 하는 물건들의 대다수가 가진 태생적인 문제 역시 여기서 발생합니다. "탈중앙화"를 외치기때문에 그렇게 가치를 확실하게 부여해 줄 수 있는 주체가 존재하지를 않습니다. 단지 뒤에 들어오는 눈먼 돈(+어둠속의 구린 돈)이 먼저 사들였던 사람에게 가고 있을 따름이죠. 애시당초 대부분의 암호화폐의 시작은 그 가치보증의 주체를 부정하기 위해서 태어난 물건이니까요. 오죽하면 거래소들이 달러 교환을 보증하는 테더가 등장하자 그걸 거래수단으로 쓰겠습니까. 그 테더도 의심받고 있는게 좀 우스운 현실이지만요.(리플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걸 주 거래수단으로 쓰고 있는 은행은 없어요. 실험적인 뿐더러 그 활용 부분도 자체가 화폐로 쓰인다기 보다는 블록체인을 이용한 내부거래 장부증명수단에 더 가까운 물건입니다. 리플 운영사까지 개입하고 있어서 탈중앙화와 백만광년쯤 멀어진 물건이기까지 하고.) 그렇다고 이 물건들이 가치를 따로 부여해주는 주체가 없이도 스스로 가치를 가지려면, 그만큼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가치가 있어야 하는데 불행히도 현재까지는 기술의 한계로 만들어내는 가치의 양은 투입되는 자원의 양에 비해서 너무 시궁창이라 효율이 너무 나빠서 극히 미미합니다. 비트코인처럼 그저 화폐의 기능밖에 못하는 멍텅구리들은 지극히 당연한 이야기고, 이더리움처럼 튜링완전한, 즉 범용연산이 가능한 멋진 물건이라고 하더라도 불특정다수의 분산된 연산자원이 느려터진 네트워크를 통해 연결되면서 발생하는 비효율 문제는 방법이 없습니다. 뭐, 증기기관이 2천년전에는 그냥 귀족들이 유희로 가지고 노는 장난감이었으나 과학이 발달한 이후에는 산업혁명을 이끈 핵심요소가 된 것 처럼, 기술이 발전하여 이런 골아픈 문제들을 극복하게 된다면 그때에는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만 현재로써는 그저 "Not Yet" 이올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