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렬 고기 신자인 까마귀라도 가끔은 외도가 걷고 싶은 겝니다. 안타깝게도 이 선택지는 꽤 꽝이었습니다.
문제의 음식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라지 사이즈의 베-컨 포테-토 피-자- 입니다. 대체 어디가 라지인 거냐고 울분을 토하곤 싶으나 그런 피자가 한둘이어야지 더이상 뭐라 할 여력도 없습니다. 가격은 방문포장으로 40퍼센트 할인된 19740원.
거기에 문화시민인 까마귀의 카카오페이지 5000캐쉬 서비스까지 받았습니다. 이거 없으면 오늘 저녁은 평범하게 한치 고추장 볶음이었을 터인데!
제 단순하기 그지없는 사고가 말했습니다.
피자헛? 거기 고작해야 15분 거리잖아! 질러!
제 지갑도 말했습니다. 어차피 지를거잖아! 질러! (눈물)
제 위장도 말했습니다. 뭐든 됐으니까 먹자!
500쯤 되는 거울 속의 아해들 덕에 지름욕으로 불타오른 까마귀는 가장 빨리 받을 수 있는 시간대를 선택해 주문했습니다.
그러고는 대충 차려입고 나오는데 뭔가 쌔-합니다.
그래서 주위를 둘러보니 롱패딩에 털코트에... 왠지 춥더라니! 꽃샘추위가 열일하고 있었군요. 방구석폐인이라 몰랐습니다.
동여맬 옷도 없이 주머니에 손 꽂아넣었다가 그래도 자세한 위치는 확인해봐야겠다 싶어 카카오버터맵에 검색해 봅니다.
어라.
버스로 25분! 도보로 35분!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다른 건 몰라도 도보 거리에서 매우 여유를 두는 카카오맵이기에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상세한 도착지의 위치를 확인합니다.
눈을 깜빡이고 다시 봅니다.
제자리에 멈춰서서 눈을 비비고 다시 봅니다.
망했어요! 멀어요!
간만에 찬바람을 맞았다고 돌아가기 시작한 제 머리가 문명의 이기를 쓰라고 조언해줬습니다. 달달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찾아 연락해 봅니다. 페이지에서 확인했을 때 '토핑중' 상태.
하지만 전화가 연결되었을 때는... '오븐에서 굽는 중' 상태가 되었습니다. 꺼이꺼이.
늦게오면 피자가 식는다길래 간만에 달렸습니다. 추운 날씨에 추운 옷 입고 뛰려니까 막 막 폐도 아프고 배도 아프고 머리도 어질하고 귀도 아프고 손도 시리고 엉엉
2분 초과된 시간에 맞춰 도착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어차피 집에 돌아가는 시간이면 이미 피자가 식어버릴 시간이란 겁니다. 실제로 그랬구요.
...멍청이...
집에 도착하니 정말 어질어질해서, 산소 공급을 위해 그대로 주저앉아 입에 피자를 우겨넣었습니다.
차가워요. 맛없어요!
어쩔 수 없이 비적비적 일어나서 전자렌지에 돌려 먹었습니다. 비로소 맛나더군요. 맛을 설명하자면 맛있는 걸 넣어 맛있는 걸 만든 맛이라고 할까. 집에서도 만들려면 만들 수 있을 것 같은 조합?
새삼 방금 쓴 돈이 머릿속에 떠올라 아련하게 허공으로 사라지는 환영이 보였다가 목이 타길래 입에 있던 걸 마저 씹어 삼키고, 오늘 버릴 쓰레기를 버릴 겸 해서 마트에 들려 음료수를 사가지고 왔습니다. -_- 요새 이런 배달음식점들 음료 가격이 올랐더군요. 슬픈 일입니다.
지금은 카카오페이지 캐쉬를 어디에 쓰면 좋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볼 것들은 이미 다 질러 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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