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천원에 업어온 삼성 홈시어터 기기가 있습니다. 굳이 상단 측면에 때빵만하게 찍힌 PAVV 로고 혹은 후면의 시리얼 넘버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 기기가 연식이 꽤 있는 물건이라는 점을 증명할 근거가 많은데요, 디자인 측면에서 미려할 뿐더러 표시 가능한 정보량이 많아 기능성의 측면에서도 굉장히 개념찬 전면 VFD 디스플레이부터, 투톤의 곡선형 디자인과 그라데이션이 적용된 LED 램프, 그리고 정전용량식 터치 버튼 따위는 찾아볼 수 없는 풍성한 조작부의 인터페이스 구성까지, 전형적인 SD - HD 과도기 TV 주변기기의 디자인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커다랗고 넓직한 대형 와이드 평면 HDTV와 어울리는 미래지향 테마를 염두에 두고 디자인하였으나, 그 디자인에 포함된 요소들은 과거의 틀을 깨지 않고 그대로 적용했죠.
근데 왜 갑자기 홈시어터용 셋톱박스를 찾냐면,
- PS3와 같은 '최신 게임기'가 다중 채널 입체 음향을 지원함
- 준수한 음질의 구형 홈시어터용 스피커 세트는 매우 저렴한 가격에 구할 수 있음
- 오디오도 영상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이미 PS3용 소니 3D 모니터를 구매한 바 있음
- 기기 하나에서 다양한 소스를 즐기고 싶음
... 뭐 이유야 다양하지만 크게 요약하자면 이 네 가지가 되겠네요. 음질이 좋지는 않지만 듣기 편안한 소리를 내주는 소니 미니컴포넌트는 소장하면서 음악 감상시 적당히 사용하되, 입체음성 및 출력이 중요하거나 영상을 동시에 시청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홈시어터 셋톱박스 기기를 사용하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각설하고, 본 제품을 켜면 메뉴 비스무리한 UI 요소는 온데간데 없고 그저 푸른색 배경화면 위에 그려진 삼성 로고만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디스크를 넣자마자 좌측 상단에 표시되는 '디스크를 읽는 중' 이라는 문구는 마치 SDTV 시절 DVD 대여점에서 빌려온 DVD를 넣었을 때 보이는 칙칙하고 흐려터진 그 글자를 연상시키는데요, 이런 구세대식 UX가 매우 선명한 1080P 해상도로 표시된다는 점은 굉장히 이질적입니다. 또한, USB나 SD 메모리를 위시한 각종 주변기기 연결기능을 갖추지 않았다는 점은 연식을 감안해도 아쉽습니다. 디스크 삽입부는 슬롯로딩 방식으로 두 겹의 플라스틱 사이에 위치해 있습니다. PS3나 차량용 헤드유닛과 동일한 방식으로, 깔끔하고 편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수리하기는 더 어렵습니다.
받아올 때 디스크부가 작동하지 않음을 확인했고, 사실 큰 상관은 없습니다. 각종 기계적 매커니즘과 광 매커니즘이 환상의 조합을 이루는 디스크 드라이브는 매우 당연한 이유로 타 부품에 비해 내구도가 빈약하며, 이에 따라 구형 기기 수령 시 파손되어 있을 확률이 가장 큰 부품 중 하나입니다. 말라붙은 구리스가 모터 토크에 영향을 주어 의도대로 작동치 못하게 하는 간단한 고장부터, 레이저 픽업 모듈을 통째로 들어내야 하는 복잡한 고장까지 그 원인은 무척이나 다양하며, 정말 재수가 없어 이 모든 고장이 설날 종합선물세트마냥 따라와서 하나를 고쳤더니 둘이 작동하지 않게 되는 경우라면 수리를 포기하고 모듈을 통째로 교환한 두 본인의 뇌를 꺼내서 으깨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CD 플레이어의 수리는 몇 번 진행해 본 적이 있습니다. 가령, 후반부 트랙을 재생하지 못하고 디스크 재생 중 특정 영역에서 재생을 포기하는 현상은 기어부의 이물질 제거로 수리했었고, 카오디오 슬롯로더의 결함은 서비스 매뉴얼을 참조하여 이탈한 부품을 제 위치로 이전함으로써 수리한 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CD의 경우 전자적인 구조가 단순하기 때문에 이런 진단이 가능하고, DVD나 BD는 진단부터 쉽지 않은데요.
이 제품의 경우는
- 슬롯 로더가 디스크를 끝까지 받지 않음
- 디스크를 강제로 쑤셔박아서 제 위치에 삽입해도, 가끔씩 initialize 과정 이후로 넘어가지 않음
- initialize 후 픽업 렌즈가 초점을 맞추지 못해 TOC reading을 시작하지 못함
첫 번째 문제는 슬롯 로더 기어부의 이물질을 제거함으로써 해결했지만, 두 번째 문제부터가 난관이었네요. 픽업부 수명이 다해서 출력이 부족했었더라도, 가변 트리머를 찾을 수 없어 출력 상승은 불가능했습니다. 여기서부터 그냥 수리를 포기했습니다. 디스크부 모듈만 따로 구할 수도 없으니, 그냥 버리는 걸로...
아무튼... 적당히 저렴하게 중고로 살 수 있는 5.1채널 홈시어터가 갖고 싶습니다. 요새 4K가 대세라지만 영상물 시청용이라면 1080P로도 크게 부족함을 느끼지 않고 있습니다. 막눈이라 그런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영화를 확대시켜서 보는 것도 아니니까요. 1080P 이상부터는 비트레이트 및 영상물의 품질이 해상도보다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영역대라고 생각하빈다. 본가에 있던 4K TV에 PS3를 물려 블루레이를 시청했을 때의 미친 듯한 화질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는데요. 왜 심즈에서 비싼 티비를 사주면 심들이 좋아죽는지 알거같습니다.
여담이지만 거의 3년 전부터 텔레비전을 자동으로 예약 녹화하는 디스크 플레이어 겸용 기기를 사고 싶어서 미국 직수입까지 고려했었는데요, 생각해보니 그럴려면 케이블 TV에 먼저 가입을 해야 되더라구요. 평소 좋아하던 TV 방송 '고작 몇가지' 보겠다고 비싼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고 싶지 않았는데, 케이블 TV도 비싸긴 마찬가지고, 전용 튜너도 있어야 한다길래 뭐.... 영상물 소장을 못 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은 있지만, 가성비를 추구한다면 어느 정도 희생해야 하는 부분이 아닐까 싶네요. 고전게임 녹화용으로는 어느 정도 도움이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