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금없지만 라자냐입니다. 그냥 기성 소스에 모짜렐라를 넣어 조립한 라자냐도 아니고, 직접 만든 라구 볼로네제에 직접 만든 베샤멜을 넣어 만든 라자냐에요.
한동안 기글을 비롯한 온라인 상에서 조용했는데, 사실 정말 바쁘게 살았습니다.
다른 것보다도 최근에 다시 요리를 해먹기 시작하면서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여러모로 한계치에서 왔다갔다 하는 중이기 때문.
원래 자취를 시작하면서 요리를 하겠다고 나서는 건 흔하죠. 그러다가 얼마 못 가고 때려치는 건 더 흔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때 샀던 소형 오븐과 주물팬이나 잘 관리하면서 스테이크나 종종 해 먹던 정도.
그러다가 최근에 본 어패티(Bon Appétit) 유튜브 채널을 접하게 되다 보니 어느새...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본 어패티는 미국의 요리 잡지더라고요. 1956년에 창간되었다고 하니 유서도 깊은 셈.
사실 본 어패티는 미디어 그룹인 꽁데 나스트(Condé Nast) 산하로, 여기 산하 미디어들 중에는 이름만 들으면 알 법한 곳들도 있습니다. 가령 남성잡지인 GQ나, 패션 등을 다루는 배니티 페어, Wired, 그리고 디지털 쪽을 다루는 Ars Technica 등이요.
본론으로 돌아와, 본 어패티는 많은 음식 관련 올드 미디어들과는 달리 훌륭하게 뉴 미디어 세계의 한 구석에 유튜브 채널로서 자리를 굳건히 매긴 듯 합니다. 오히려 요즘은 종이 잡지도, 디지털 잡지도 아닌 유튜브 채널이 메인이 되다시피 했지만요. 구독자 수를 보니 이제 500만을 넘어가고 있네요.
뭐 어쨌건, 본 어패티의 매력은 제가 열 말을 하는 것 보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이 직접 찾아보시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영어가 된다는 전제하에서이지만요.
그래서 요즘은 요리(제과/제빵 포함)를 하고 있는데, 사실 이건 취미는 아닙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취미는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게 취미고, 요리는 거기까지 가기 위한 일종의 관문같은 역할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무슨 차이냐고 한다면, 취미는 실패를 겪더라도 웬만해서는 마냥 즐겁지만 요리는 실패할 경우 정신적 데미지가 아주 큽니다. 오죽했으면 한동안 끊었던 술에 손을 댈 정도로요. 요리하는 것을 싫어하는 건 아니지만, 요리 자체가 좋아서 요리를 하는 것과는 큰 차이입니다.
지금까지 많이도 만들어 먹었어요. 대강 훑어보니 12월 중순부터 했다고 나오네요. 치킨 수프도 해 먹고, 치즈버거 파스타도 만들어 먹고, 스콘/쿠키/브라우니 등도 구워 먹고. 근데 제대로 사진 한 장 찍은 게 없네요. 없는 이유는 일단 먹는 게 바빠서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사진까지 찍을 에너지가 없다는 거랑 이 좁은 집에 마침내 공간이 다 소모되었다는 이유가 클 것 같네요.
위 사진도 그래서 잘 보시면 밀폐용기 탑 위에 접시를 조심히 올려놓고, 뒤에는 설탕 봉지랑 조리도구를 배경으로 해서 찍은 사진이에요. 정리를 하고 싶어도 이젠 정리를 할 공간이 없고, 뭘 내다 버리던가 하지 않고서는 답이 안 나오는 상황.
그래서 라자냐도 일단 먼저 먹고 보고, 그냥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처박아넣기에는 투자한 시간과 노력이 아까워 오랜만에 카메라를 꺼냈네요. 이게 두 달 동안 해먹은 요리 중 제대로 된 첫 번째 사진입니다. 그래서 기글에 올려요.
혹시 사진의 라자냐를 직접 만들어보고 싶으신 분이 있으시다면...
재료 - 6인분 기준
라구 볼로네제
1kg, 다진 돼지고기
500g, 다진 소고기
코셔 소금과 흑후추
2큰술(30ml),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
60g, 판체타 또는 베이컨, 썰어서
1개, 중간 크기 양파, 잘게 다져서
1개, 셀러리 대, 잘게 다져서
1/3개, 당근, 잘게 다져서
6쪽, 마늘, 얇게 썰어서
2큰술, 토마토 페이스트
3/4컵,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
800g들이 홀 토마토 캔
1컵, 닭 육수=치킨스톡(저염)
1컵, 우유
베샤멜
100g, 버터(무염)
7큰술, 중력분
6컵, 우유
120g, 파마산 치즈(가급적 직접 간 걸로)
카이옌 고추가루 약간
넛멕 가루 약간
코셔 소금과 흑후추
조립
450~550g, 라자냐
코셔 소금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팬에 기름칠하는 용도)
조리
라구 볼로네제
돼지고기와 소고기를 섞고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하고 한번 더 섞어 준다. 대략 18개 정도의 미트볼로 적당히 빚어낸다. 큰 더치 오븐(또는 양수냄비)에 기름을 두루고 중불에서 달군다. 미트볼을 두 번에 나눠 겉이 바삭한 갈색이 되도록 불을 조절해가며 굽는다. (각각 약 6분씩) 구운 미트볼을 접시에 옮겨 담는다.
불을 약불로 낮추고 판체타(또는 베이컨)을 넣고 볶는다. 약 5분이 소요되고 바삭해지기 시작하면 양파, 셀러리, 당근, 마늘을 넣고 볶는다. (필요시 기름을 더 넣음) 약 6-8분이 소요되고 야채가 부드러워졌으면 토마토 페이스트를 넣고 눌어붙지 않게 볶는다. 약 2분이 소요되고 토마토 페이스트가 어두운 색을 띄면 와인을 넣고 거의 다 졸여질 때까지(약 4-5분) 볶는다. 토마토를 잘 으깨 넣은 다음 중불로 높여 8-10분간 되직하고 반 정도로 졸여질 때까지 볶는다. 육수와 우유, 그리고 따로 덜어놓은 미트볼을 넣고 약하게 끓인다. 거품이 약하게 끓을 정도가 되도록 불을 최대한 약하게 줄이고 3-4시간동안 익힌다. (110도의 오븐에 냄비째 넣고 익혀도 됨)
미트볼이 쉽게 부서질 정도로 익으면 미트볼을 으깨 소스와 섞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너무 질을 경우 약불에서 더 졸인다.
베샤멜
큰 냄비에 버터를 넣고 약불에서 녹인다. 버터가 녹으면 밀가루를 넣고 저어가며 고소한 냄새가 나기 시작할 때까지 약 4분간 볶는다. 우유를 부어넣고 중불로 높여 약하게 끓을 정도로 만든다. 베샤멜이 되직해질 정도로 약 4분간 더 저어가며 끓인다. 불을 약불로 낮추고 질감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약 10분간 더 끓인다. 불을 끄고 파마산 치즈, 카이옌, 그리고 넛멕 가루를 넣는다. 소금과 후추로 간을 한다.
조립
오븐을 165도로 예열한다. 끓는 물에 소금을 충분히 넣고 라자냐를 약 3분간 익힌다. 부드러워지기 시작하지만 아직 접으면 부러질 정도가 되면 찬물에 옮겨 식힌다. 라자냐를 한장씩 분리해 따로 둔다.
유리 또는 도자기로 된 오븐 용기(약 33cm*23cm)에 눌어붙지 않을 정도로만 기름을 바른다. 라구 볼로네제를 먼저 깔고, 그 위에 라자냐, 베샤멜 순으로 올린다. 이렇게 약 5층(또는 오븐 용기가 가득찰 정도로)을 쌓는다. 마지막으로 베샤멜을 깔아준다.
눌어붙지 않게 기름을 바른 호일로 오븐 용기 윗면을 덮고 베이킹 트레이에 올린 채로 오븐에서 굽는다. 약 1시간이 지나고 가장자리에서 부글거릴 때가 되면 오븐 용기를 덮고 있던 호일을 걷어내고 오븐의 제일 윗칸으로 옮긴다. 온도를 220도로 높이고 10-15분간 더 굽는다. 윗면이 갈색으로 익고 가장자리가 바삭해지면 오븐에서 꺼내 10-15분간 식힌 후 먹는다.
출처: https://www.bonappetit.com/recipe/ba-best-lasagna
대강 하루만에 만드려면 정말 하루 종일 만들어야 하고, 저는 이틀에 걸쳐 만들었습니다. 출처의 레시피와는 약간 차이가 있는 이유는 어느정도 제 주방 환경에 맞게 변형시켰기 때문. 그리고 오븐 용기가 작아서 저는 2/3정도밖에 못 담았어요. 나머지 1/3은 다음번에 작게 만들어 먹을 생각.
이렇게 만들어진 4인분 가량의 음식은 그날 저녁으로 1인분을 먹고, 나머지는 밀폐용기에 담아 냉장고에 보관하면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로 까 먹습니다. 요리의 종류에 따라 다시 데워먹기에 얼마나 적합한지는 좀 다르지만요. 가령 파스타류는 완전히 알 덴테로 익히면 잘 버티는 편이고, 어패류나 어류 등은 당연하지만 하루만 지나도 영 시원찮은 등. 이 라자냐도 내일 회사에 도시락으로 싸 가서 점심에 먹을 겁니다.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해 먹으면 몸은 힘든데 기분은 좋아요. 대신 거꾸로 기분은 좋은데 몸이 너무 힘들어서 죽을 지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