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로 굴러도 우로 굴러도 두바퀴 반은 구를 수 있는 이 방으로 이사온지도 벌써 5년이 넘었습니다. 졸업하면 나가야지~ 하고 들어왔는데 정작 졸업은 했지만 나가지는 못하네요. 어허.
여하튼. 얼마전부터 세면대 물빠짐이 영 시원치 아니하여 방도를 알아봤습니다. 뭐 보나마나 머리카락이 한그득일 터이겠지요. 하수구를 뻥 뚫어준다는 화학약품을 들이부어도 별 효과가 없고, 꼬질대마냥 머리카락을 긁어올리는 프라스틱 띠로 긁어도 별 효과가 없습니다. 머리카락 나오는 양을 봐도 물빠짐을 가로막을 정도로 많은 양은 아닙니다. 아 이거 심상치가 않구나.
건물 연식이 좀 있다보니 세면대 팝업도 푸시가 아니고 수도꼭지 뒤쪽의 쇠막대기를 누르면 열리는 구식입니다. 세면대 아래쪽에서 나사를 풀면 팝업을 뽑아낼 수 있는거죠. 한두 해 전에도 뽑아봤고, 그 안에서 지옥을 보았기에 마음 단단히 먹고 나무젓가락과 펜라이트를 준비하고 팝업을 뽑았습니다. 물때로 드러운건 사실인데 머리카락은 별로 없네요.
아 그럼 문제는 이 다음이다. 팝업 뽑아낸 상태로 수도꼭지를 틀어보니 물이 넘칩니다. 아이고 머리야 그렇다면 이제 트랩이 막힌거구나. 오밤중에 몽키스패너를 가져와서 해체를 시작합니다. 물때와 각종 오물이 어마어마하게 끼어있으니 외관부터 만지기 꺼려지는건 어쩔 수가 없네요. P트랩이면 오물 걸리는 부분만 분해가 되겠지만 안타깝게도 하수배관은 바닥이고 I트랩을 씁니다. 이건 하수배관으로 들어가는 부분까지 뽑아야 분해가 가능하지요. 아예 두 동강을 내야 하는 S트랩은 아닌게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입니다.
여하튼 그렇게 세면대 밑에 머리를 쳐박고 30여 분만에 트랩을 뽑아내고, 안 열리는 프라스틱 캡을 비틀어가면서 열고
무간지옥을 보았습니다. 꺄핫☆
뭐 더러워서 문제지 별로 힘쓸 일은 아닙니다. 한때는 제 머리카락이었던 무언가를 모조리 걷어내고 락스물 들이붓고 불어난 물때를 망가진 칫솔로 청소해 줍니다. 그다음 조립은 분해의 역순으로 한시간 여 만에 아주 원활한 물빠짐을 되찾았습니다.
바닥에는 언제나 그 아래가 있다는 말을 체감하였으며 설마 하수배관까지 제 손으로 뜯을 일이 생기지는 않겠지요. 이쯤되면 업자를 불러야 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