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유팩은 종이 쓰레기로 내놓지 말고, 에쁘게 잘라서/잘 씻어서/곱게 말려서 주민센터에 갖다 주면 된다고 하길래, 그렇게 모으다 보니 집에 한더미가 쌓였습니다. 찾아보니 서울은 주민센터에 그걸 수거하는 기계가 있네요.
그리고 이 기계는 무인 민원 발급기의 지문 인식만큼이나 폐급입니다.
이론적으로는 별거 없습니다. 스마트폰에 전용 앱을 깔고/회원 가입을 하고/그걸로 QR 코드를 태그하면 수거 장치의 투입구가 열립니다. 그럼 구멍 위의 카메라에 우유팩의 바코드를 인식시키고 우유팩을 넣으면 포인트가 적립됩니다.
문제는 이 기계를 만든 곳이, 실제 현장의 가혹한 환경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거에요.
우선 투입구 자체가 매우 작습니다. 1리터 짜리 우유팩을 대충 구기면 안 들어갈 정도로 작습니다. 저야 예쁘게 잘랐으니 반으로 접으면 들어가긴 하는데 편하진 않습니다. 뭐 이거까지는 다른 이물질이 들어가는 걸 피하기 위해서라 칩시다.
두번째로 바코드 인식이 불편합니다. 마트의 스캐너는 갖다 대면 바로 인식하는데 얘는 투입구 바로 위에 비스듬하게 있어서 최적의 각도를 잡기도 힘들고요. 제대로 대도 인식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가장 불편한 건 우유팩을 넣어도 인식을 안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겁니다. 우유팩을 투입구에 넣으면 그게 안으로 떨어지면서 센서를 지나가야 인식을 하는 구조인것 같은데, 이게 되게 복불복입니다. 감지 센서를 도대체 어디에 어떻게 넣은건가 싶기도 합니다. 기왕 가져갔으니 인식이 되건말건 다 넣고 치워버리자 싶어도, 허탕을 20개 쯤 치면 포기하고 도로 갖고 오게 되네요.
또 주민센터에서 여기에 쌓인 우유팩을 며칠 주기로 수거하는지는 몰라도, 20개 쯤 넣으면 항상 꽉 차버려서 더 이상 넣을 수가 없네요. 이 물건이 덩치가 작은 것도 아닌데 말이죠. 투입구가 작아서 대충 구겨 넣을 수도 없을텐데, 우유팩이 어떤 각도로 떨어져 쌓이는지 모를 일입니다.
나라 돈을 받아서 만든 물건이면 이런 피드백이 제대로 들어갈 리가 없을 것 같은데요. 생각해보니 이건 나라 돈이건 사기업이건 똑같은 문제네요. 맥도널드 키오스크도 일부러 불편하게 만들었다고들 하잖아요.
이 기계를 처음 들여놓을 때는 마신 우유팩을 바로바로 씻어서 두어개씩 딸랑 하고 넣는 식으로 쓸거라 생각했나 봅니다만, 현실은 그렇질 않네요.
물론 씻어서 말려 버리라는데, 그렇게 하면 한국인이 아니죠 그냥 버리는 사람이 반이상인데
처리는 수거 업체가 알아서 하는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