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K-99로 한때 큰 소동이 있었다가 지금 다시 장작넣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그때 못 했던 초전도 얘기를 써보려 합니다.
쉬운 주제는 아니지만 이과 고등학교~학부 수준의 지식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써 보겠습니다. 좀 깁니다.
역시 상업적이지 않은 한에서 자유로운 사용이 가능합니다.
- 서론
상온 초전도체는 물리학의 성배(Holy Grail)로 불릴 정도로 오래되고 중요한 관심사입니다. 그러므로 상온 초전도체가 개발되었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도 당연합니다. 그렇지만 초전도체의 실용성을 생각할 때는 다양한 지표가 존재합니다. 일반 대중은 이러한 초전도 공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므로 초전도체가 상온이냐 아니냐, 이것만을 기준으로 현혹되기 쉽습니다. 이에 초전도체의 지표를 간략히 소개하는 글을 씁니다.
- 초전도체, 왜 중요한가?
초전도 물질은 지금도 열심히 연구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인류는 아직 초전도 현상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이론적으로 잘 이해하고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쪽으로 물질을 만들어야 좋은 초전도체가 나올지의 방향조차 갈피를 못 잡고, 수많은 경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되는대로 박치기한다는 말을 교양있게 썼습니다) 초전도 물질을 탐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자금과 노력을 쏟아붓는 이유는 초전도체가 과학, 산업, 의료 등등의 분야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맡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쓰이는 초전도체에서 어느 한 특성을 개선하기만 해도 이들 분야에서는 막대한 응용가치가 생겨납니다.
대중 보도에서는 초전도체가 자석 위에서 뜨는 마이스너 효과를 위와 같은 이미지로 보여줍니다. 이건 대중 수준에서 뭔가 신기하고 눈에 잘 보이는 현상을 강조할 것일 뿐 (물론 이 효과를 물리학적으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학문적 탐구 주제입니다), 초전도체가 우리 생활에 가져올 영향을 잘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봅니다.
초전도체가 사용되는, 또는 크게 발전시킬 수 있는 분야의 예시는 위 이미지와 같습니다.
아마 전공자가 아니어도 과학/공학에 지식이 있으신 분들은 뭔가 큰 전류, 또는 큰 자기장이 필요한 곳에서는 초전도체가 무안단물처럼 쓰인다는 것을 눈치채셨을 것입니다.
일반 도체(구리 등등) 전선에서는 큰 전류가 흐를수록 발열(=전력 손실)도 증가해서, 더 큰 전류나 자기장 (코일에 전류를 흘리면 전자석이 되죠) 을 얻으려다 결국 전선이 녹아내리는 수준이 됩니다. 반면 초전도체는 임계 전류밀도와 자기장, 즉 최대한 받아들일 수 있는 전류와 자기장의 세기가 일반 도체와 비교하여 월등히 높습니다.
보통 병원에서 쓰이는 MRI를 가동하려면 1.5 T = 15000가우스의 자기장이 필요합니다. 대학병원 수준의 고가의 MRI는 3 T, 7 T 자기장으로 더 선명한 이미지를 얻습니다. (지구의 자기장이 0.25~0.65가우스입니다)
입자 가속기와 핵융합로(토카막)에서도 매우 강한 자기장이 필요합니다. 전하를 띤 입자에 가해지는 힘(로렌츠 힘)은 가해준 자기장의 세기에 비례합니다. 따라서 입자를 엄청난 에너지로 가속하거나 핵융합 플라즈마의 초고온 입자를 가두기 위해서는 고자기장이 필수적입니다.
또 초고자기장에서 물질이 갖는 특이한 물리학적 성질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더, 더욱 높은 자기장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이런 자기장은 보통의 도체 전선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2027년에 운영 예정인 일본의 리니어 신칸센도 초전도 기술을 사용합니다. 유튜브에 검색해 보시면 재밌는 영상이 많습니다.
케이블, 변압기, 발전기 등에서는 초전도 전선을 사용하면 저항이 없으므로 발열과 전력 손실이 없습니다. 높은 에너지 효율을 얻고, 방열 문제가 없으므로 한정된 크기 안에서 더 높은 출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컴퓨터에서 CPU 발열이 커질수록 식히기 위한 히트파이프, 방열판, 쿨링팬 등등이 훨씬 거대해져서 무겁고 큰 컴퓨터가 되는 것을 생각하면 쉽겠습니다.
- 초전도체, 어떤 특성이 중요한가?
이렇게 보면 초전도체는 만능 물질이라 모든 곳에 쓰일 것 같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바로 임계 온도, 자기장, 전류 밀도, 그리고 가격과 가공성입니다.
초전도체는 이러한 온도-자기장-전류밀도의 영역 안에서만 초전도 상태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초전도 물질에 따라 이 영역의 크기가 다릅니다. (전류 밀도는 전선의 면적당 흐르는 전류를 의미합니다. 즉 전선 두께와 무관한 물질의 고유한 성질이 됩니다)
위 그래프는 초전도체의 임계 온도 기록을 나타낸 것입니다. 초전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접해보셨을 수 있습니다.
아까의 도식과 같이 보자면 초전도 영역에서의 온도 최고점 (Tc) 에 해당합니다.
사람들은 더 임계 온도가 높은 초전도체를 찾기 위해 100년을 넘게 연구해 왔습니다. 왜냐면 열에너지는 물질에서 원자핵과 전자를 무작위로 흐트려 놓으려는 에너지이므로, 높은 온도에서도 버티는 초전도체는 초전도 현상의 근원이 되는 힘이 그만큼 강하다는 뜻이며, 초전도 상태를 유지하는데 더 간편하고 저렴한 장비가 요구되는 실용성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극저온을 만들기 위해서 원하는 온도에 따라 다양한 수단이 사용됩니다.
액체 헬륨은 4 K(-269도)의 매우 낮은 온도를 갖습니다. 가장 이상적이지만 헬륨은 매우 비쌉니다. 대기중의 헬륨은 너무 가벼워서 지구 중력으로부터 다 벗어났기 때문에 대기중에 극미량만 존재합니다. 따라서 헬륨은 암반 밑에 갇힌 천연가스를 채굴하는 과정에서 같이 얻어지는 비싸고 한정된 자원입니다. 미국이 헬륨을 국가 전략자원으로 지정한 이후 헬륨 가격이 꽤나 올라서, 어렸을 때 놀이공원마다 있던 헬륨 풍선도 이제는 사치품입니다.
이렇게 비싼 액체 헬륨은 아무리 단열을 잘 해도 외부에서 열을 받아 증발합니다. 이것을 버리는 것은 더는 경제성에 맞지 않으므로 다시 헬륨을 액화시켜 회수할 수 있는 극저온 쿨러를 사용해야 합니다. 매우 비싼 장비입니다.
액체 수소(20.3 K)나 기체 헬륨 극저온 쿨러(< 55 K)는 이보다는 저렴합니다. 그렇지만 이 헬륨 극저온 쿨러도 여전히 비싼 장비입니다.
액체 질소(77K, -196도) 의 수준에서는 경제성이 훨씬 좋아집니다. 액체 질소는 공기로부터 아르곤, 네온, 크립톤, 제논 같은 희귀한 기체를 얻는 과정에서 부산물로 얻어지기 때문에 리터당 천원 정도 합니다. 액체 질소 단열 용기가 비싸기 때문에 베스킨라빈스 드라이아이스처럼 개인이 다루기는 힘들지만 연구실 정도라면 대용량으로 취급하기 쉽습니다.
코로나 백신때 -80도를 유지하는 백신 냉장고가 유명해졌습니다. 일반 가정용 냉장고처럼 냉매를 이용해 냉각하지만, 2단계 이상의 냉각 구조를 가집니다. 이 정도 온도라면 액체 질소를 주기적으로 주입받을 필요도 없이 조금 비싼 냉장고처럼 활용할 수 있으므로 경제성, 실용성이 비약적으로 높아질 것입니다.
임계 온도가 상온이냐 아니냐, 이런 분류보다는 각각의 임계 온도 단계마다 실용성이 크게 좋아진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넘어가시면 됩니다.
따라서 임계 온도는 초전도체의 중요한 특성입니다. 그렇지만 이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이 도식으로 돌아와 봅시다. 특정 온도에서의 초전도 영역은 해당 온도에서 단면을 썰은 영역에 해당하고, 자기장과 전류밀도 또한 똑같은 방법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온도-자기장-전류밀도는 서로를 희생하는 관계에 있습니다.
초전도체를 더 높은 온도에서 유지하면 자기장과 전류밀도의 영역이 작아집니다. 즉 초전도체의 최대 전류와 자기장을 타협해야 합니다.
임계 자기장은 앞서 설명한 것과 같이 MRI, 핵융합로, 입자 가속기 등의 첨단 기술에서 중요한 지표입니다. 높은 자기장을 얻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온도에 대해 임계 자기장 세기가 얼마나 희생되는지를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초고자기장 연구에 사용되는 첨단 장비들입니다.
(사실 일반 도체로도 초고자기장을 얻을 수 있으나, 앞서 말한 대로 순식간에 녹아내릴 것이기 때문에 아주 짧은 시간만 펄스 형태로 자기장을 만들어야 하며 호수의 물을 통째로 끌어와서 고압으로 수랭을 해야 합니다. 전력 사용량도 막대합니다.)
헬륨이 매우 비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초전도 장비들을 액체 헬륨 온도에서 가동하는 이유입니다. 더 높은 온도에서는 원하는 자기장/전류에 도달하지 못하게 됩니다.
오른쪽에는 제법 높은 온도에서도 높은 임계 자기장을 가지는 초전도 물질들이 보입니다. 그러면 이런 물질로 초전도 자석을 만들면 될 것 같아 보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한계가 등장합니다. 가격과 가공성입니다.
초전도 온도가 높은 물질들은 만드는 데 대단히 비싸고, 바스라지는 결정 물질이므로 금속 전선처럼 편한 대로 휘어 쓸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특수한 가공 방법이 요구됩니다.
몇몇 물질은 충분히 상용화된 단계에 이르렀고, 몇몇 물질은 아직 시험적으로 쓰이거나 연구실 단계입니다. REBCO, BSCCO 같은 물질은 2차원 결정인데 테이프 형태로 증착해서 붙이거나 말아 쓸 수 있습니다.
일본의 리니어 신칸센 개발을 위해 오랜 시간 연구가 진행되었습니다. 그 중 성과는 극저온에서 작동해야 하는 NbTi 소재 대신에 Bi-2223(REBCO) 소재의 초전도 자석을 개발하여, 자기부상열차에 필요한 극저온 장비를 크게 단순화하고 비용을 낮춘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액체 질소 냉각기가 외부 열 쉴딩을, 내부의 액체 헬륨 냉각기가 초전도 냉각을 수행하는 복잡한 구조였으나 REBCO 초전도 자석으로 설계가 단순해졌습니다.
만약 액체 질소 온도에서도 비슷한 성능(임계 자기장, 전류밀도)을 내는 초전도 물질을 찾고, 적절한 형상으로 가공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자기부상열차는 훨씬 더 저렴해지고 대중적이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헬륨 극저온 냉각기도 필요없고 역마다 정차해서 우유보다 싼 액체질소를 부어만 주면 초전도가 유지되지요. MRI도 마찬가지입니다. 액체 헬륨의 유지에 필요한 비용이 크게 절감되어서 지금 X-ray 찍듯이 훨씬 부담없이 MRI를 찍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송전선도 액체 질소를 써서 더 큰 전류를 전달할 수 있으니 송배전 에너지 손실도 줄일 수 있습니다.
- 맺음말
어쩌면 상온 초전도체는 인류가 영원히 얻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상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기존의 초전도 물질에서 어떤 특성 한계를 더 끌어올리는 것만으로 지금까지 쓴 것과 같은 마법같은 일이 일어날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것이 초전도 연구입니다.
그러므로 초전도 연구를 접할 때에는 이러한 기술적 특징을 이해하고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봐야 합니다. 온도만 강조하면서 다른 필수적인 요소를 제대로 실험하지도 않았다면 거기는 학계에서 받아줄 기초조차 안 되어 있다는 얘기겠지요. 또한 이러한 연구는 논문 하나, 기사 하나로 바뀌지 않고 수십년의 긴 안목으로 내다봐야 함을 당부드리며 마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처 (더 깊은 지식을 원하는 분들께 읽기를 권합니다)
https://www.cell.com/iscience/pdf/S2589-0042%2821%2900509-5.pdf
https://global.jr-central.co.jp/en/company/_pdf/superconducting_maglev.pd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