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40분 전 일이다. 내가 갓 수험친 지 얼마 안 돼서 방구석에 드러누워 살 때다. 기글 왔다 가는 참에 방구차의 열풍이 불어 잠시 글쓰기 항목을 눌렀다. 기글 댓글창에 출현해 홀로 치킨 방구챠를 쓰며 선두하던 귀인이 있었다. 방구챠를 한 번 써 내고 가려고 시간을 들여 지구에게 미안한 짓을 했다. 지구가 내게 물었다.
"좀 미안하지도 않습니까?"
했더니,
"방구챠 하나 가지고 환경이 파괴되겠소? 정 불만이거든 경찰서로 가시우."
대단히 철면을 깐 노안이었다. 결국 그만하라고도 못하고 쓰레기만 쓰지 말아 달라고만 부탁했다. 그는 잠자코 열심히 쓰고 있었다. 처음에는 빨리 쓰는 것 같더니, 저물도록 이리 돌려 보고 저리 돌려 보고 굼뜨기 시작하더니, 마냥 늑장이다. 내가 보기에는 그만하면 지구한테 충분히 미안하게 됐는데, 자꾸만 더 싸지르고 있었다.
인제 다 포기했으니 그냥 가라고 해도 통 못 들은 척 대꾸가 없다. 방구챠 타이밍이 빠듯해 왔다. 갑갑하고 지루하고 초조할 지경이었다.
"지구한테 미안해도 좋으니 그만 주십시오."
라고 했더니, 화를 버럭 내며,
"썩을 만큼 썩어야 거름이 되지, XX가 재촉한다고 거름이 되나."
한다. 나도 기가 막혀서,
"올릴 사람이 됐다는데 무얼 더 손본다는 말이오? 아저씨, 외고집이시구먼. 수치사하겠다니까요."
노안은 퉁명스럽게,
"그냥 글 내리슈. 난 안 쓰겠소."
하고 내뱉는다. 지금까지 뻘짓하고 있다가 그냥 끌 수도 없고, 방구챠 타이밍은 어차피 틀린 것 같고 해서, 될 대로 되라고 체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 마음대로 싸질러 보시오."
"글쎄, 재촉을 하면 점점 문단이 거칠고 엉킨다니까. 글이란 제대로 써내야지, 엮다가 망치면 되나."
좀 누그러진 말씨다. 이번에는 쓰던 폰을 숫제 주머니에다 놓고 태연스럽게 입에 사탕을 물고 있지 않는가. 나도 그만 지쳐 버려 구경꾼이 되고 말았다. 얼마 후에야 방구챠를 보고 이리저리 퇴고해 보더니 다 됐다고 내 준다. 사실 다 되기는 아까부터 다 돼 있던 방구챠이다.
땨를 놓치고 다음 글에 올려야 하는 나는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그 따위로 글을 써 가지고 댓글이 달릴 턱이 없다. 독자 본위가 아니고 제 본위다. 그래 가지고 시간만 되게 잡아먹는다. 도날덕(Duck, Donald)도 모르고 불친절하고 무뚝뚝한 노안이다." 생각할수록 화증이 났다. 그러다가 뒤를 돌아다보니 노안은 태연히 허리를 굽히고 폰을 보며 시시덕대고 있었다. 그 때, 바라보고 섰는 옆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위대한 옛것다워 보였다. 눈동자가 보이지 않는 작은 눈과 흐리멍텅한 이목구비 내 마음은 약간 누그러졌다. 노안에 대한 멸시와 증오도 동정에 감쇄(減殺)된 셈이다.
기글에 와서 방구챠를 내놨더니 회원님이 재미나게 써냈다고 야단이다. 전에 올린 것보다 참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전의 것이나 별로 다른 것 같지가 않았다. 그런데 회원님의 설명을 들어 보니, 글이 너무 쳐지면 글을 읽어 내리다가 지치기를 잘 하고 같은 무게라도 힘이 들며, 전개가 너무 빠르면 읽다가 말고 어딘가 빠진 것 같단다. 요렇게 꼭 알맞은 것은 좀체로 찾아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마음이 확 풀렸다. 그리고 그 노안에 대한 내 태도를 뉘우쳤다. 참으로 미안했다.
그 노안이 나다. 회원님은 어디계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