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이야기 자체는 마파 두부가 화제가 될 때마다, 간단하게 ~ 길고 장황하게 적은 적이 몇 번 있다 보니 (일단 기억나는 걸로는 루리웹에는 자세하게 두세번 적어 올렸었네요) 아마 보신 분이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도 매번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적는 게 귀찮아서, 링크 따려고 다시 한 번 적어 보는 거고요..^^;
약 20년쯤 전에, 미쿡에 파견 나갔을 때, 씹히면 뭐든지 먹는다는 저희 아버지 정도는 아니지만, 홍어나 취두부도 별 문제 없이 단박에 먹어 버린 저이다 보니, 먹는 걸 중시하는 중국인들과도 친해지게 되었고, 그 중에서 나이 차이가 꽤 나는 여학생과 사귀게 되었습니다.
맛있는 걸 먹는 것을 계기로 친해지다 보니, 데이트할 때에도 주로 맛집을 찾아 다녔고, 혐오 식품이 아닌 이상은 저도 딱히 가리는 것 없이 잘 먹다 보니, 주로 여친의 소개로 맛집을 주로 다녔습니다.
그래서 이것 저것 먹어 봤는데 제가 대부분 가리지 않고 먹더라도, 근본은 어디까지나 저희 집안 사람답게 고기류를 좋아하는 것에다가, 개인적으로는 두부를 좋아하다 보니, 마파 두부가 되게 입에 맞더라고요.
물론 팬더 익스프레스나 다른, 미국인들의 입맛에 맞춘 그런 중화 요리들 중의 하나인 마파 두부도 맛있었지만, 인생 첫 마파 두부를, 여친의 소개로 사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통 사천 식당에서 먹었기에, 그 쪽이 더 입에 맞았고요.
그러다 보니 몇 달 동안 데이트하면서 마파 두부를 자주 먹었습니다, 여친이 "이거 우리 나라에 가면 되게 흔해 빠진 음식인데, 이 먼 미국까지 와서 데이트하면서 꼭 이걸 먹어야겠냐?"고 불평할 정도로요.
그런데, 저는 당연히 결혼할 생각으로 사귀는 것이었기에, 딱 하나, 결혼하고 중국으로 귀화해서 살자는 것만 아니면 나머지는 전부 다 OK라며 여친에게도 "물론 네가 원하는대로 학교 졸업할 때까지 기다리겠지만, 네가 마음이 바뀌거나 해서 원하기만 한다면 나는 다음 주에라도 너랑 혼인 신고를 할 수 있다"고 자주 말했지만,"어디 감히 한국인 나부랭이가, 우리 중국인, 그것도 귀한 우리 외동딸이랑 미래를 생각해!"라는 걔네 어머니의 극심한 반대 때문에 결국 헤어지고 (여차 친구가 되게 뚝심 있는 애였는데, 그런 애가 너무 스트레스를 받아서 두 번이나 쓰러지는 걸 보니 차마 더는 붙잡을 수가 없더라고요), 반드시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너무 큰 상실감에, 체류 연장을 안 하고 귀국을 했는데요.
당시에 국내에서는 마파 두부는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애초에 만화나 그런 곳에서는 가끔씩 언급이 됐지만, 지금처럼 널리 알려지지도 않아서, 그게 뭥미?라는 소리도 자주 들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픈 기억이 서린 마파 두부를 먹기 위해서 일부러 차이나 타운이나 대림 혹은 고급 중화 식당을 갈 생각까지는 안 하고 있어서 나중에 해외에 나가게 되면 그 때에나 다시 먹어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만..
귀국하고 몇 주 뒤에, 저희 외갓집이 이사를 갔는데, 동네 분들이 "우리 동네의 XX라는 중국집이 되게 잘한다"면서 추천을 해 주시더라고요.
그래서 메뉴판을 받아서, 저도 다른 분들처럼 평범하게 짜장 + 탕수육을 먹으려고 했는데 그 때 제 눈길을 강렬하게 잡은 메뉴가 바로 마파 두부였습니다.
엥? 동네 중국집에서 마파 두부를 판다고?! 더구나 짬뽕이랑 비슷한 가격에?!라는 생각에 고민할 것도 없이 주문을 하고서 두근거리며 기다렸는데..
그런 제 앞에 놓인 음식은..
짬뽕 국물에 연두부를 넣고 케찹과 전분을 좀 푼 멀건 국물이더군요?!
처음에는 뭔가 착오로 음식이 잘못 나온 줄로만 알았습니다. 그래서 음식이 잘못 왔다고 했더니, 그게 마파 두부가 맞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이게 마파 두부라고요?!라고 반문을 하니 "아니, 이봐요, 손님! 손님이 마파 두부를 먹어 봤어? 하물며 들어본 적은 있어? 어디서, 처음 보는 음식이니까 이게 뭔가~하고 시켜 봤나 본데.. 이게 마파 두부야, 알겠어? 모르면 주는 대로 먹어야지"라기에 "아니 제가 불과 얼마 전까지 미국에서 수십 그릇의 마파 두부를 먹고 왔는데, 이런 걸 마파 두부라고 하는 건 좀"이라고 했더니 "어디서 무슨 양코쟁이가 대충 만들어 본 걸 먹고 와서 아는 척이야, 아는 척이! 내가 중국집을 몇 년을 했는 줄 알어? 어디서 잘 알지도 못하는 주제에 말도 안 되는 트집을 잡고 있어! 경찰서 갈까?"라면서 성을 내더라고요.
저도 짜증 나서 경찰서에 가자고 하려고 했는데..
외할머니와 이모님께서, 이사온 첫날부터 문제 일으켜서 좋을 게 뭐가 있냐, 더구나 우리가 문제를 일으키면 여기를 추천해 주신 분들은 뭐가 되냐면서 저를 뜯어 말리시기에 그냥 버려야만 했습니다.
(웬만하면 음식을 안 남기고 먹는데.. 저건 아니더라고요. 저 묘사를 보신 분들 중에서 저걸 드실 수 있으신 분이 계시려나요?)
아무튼 그렇게 한국에서 제 첫 마파 두부는 저렇게 가슴 아프게 끝이 나버렸습니다. 너무 황당하고 억울하고 화가 나서 아직도 당시가 또렷하게 생각이 나는데요.
그 이후로도 1년 정도 으리으리한 곳은 아니더라도 몇몇 유명 중국집들을 다니면서 시험 삼아서 마파 두부를 몇 번 시켜 봤는데, 결국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제대로 된 마파 두부를 만드는 곳은 없더라고요.
(그나마 나은 곳은, 2.3만원짜리 마파 두부였는데.. 거기는 한국인들의 입맛에 맞추어서 화자오를 거의 안 넣은 것 빼고는, 한국의 중화 요리로서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 되는 곳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몇 년 지나니 대림의 몇몇 곳들에서 한국인 대상이 아니라 정통 중국식 요리를 해서 판다고 광고하는 곳들이 생겼고, 저희 동네에도 2~3년 전부터 그런 중국집들이 두어 곳 생겼다고 들었는데, 이제는 너무 지쳐서 굳이 안 먹어 봤고요.
그러다가 코로나 직전에 거래처 분을 만나 뵈러, 정말 오랜만에 미국을 재방문하게 되었고, 여윳 시간에, 모처럼 오랜만에 간 미국이라서 추억에 젖어 동네를 걸어 다니다가 추억의 식당을 발견해서 정말 오랜만에 마파 두부를 시켜 먹었습니다.
거의 20년만이니 종업원 분들은 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고, 솔직히 맛도 조금은 변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크게 변하지는 않았다 보니, 그 때의 추억이 떠오르면서 엄청나게 서글펐었네요. (더구나 다음 날 여행용 트렁크를 잃어 버리는 바람에 몸만 가지고 귀국해야 했고요)
아무튼 식당에서 능숙하게 자리를 잡고 주문하는 저를 보고서, 중국인이라고 생각했는지 중국어로 질문을 하는데 (그런데 제가 원래 해외에 나가면 일본에서는 중국인이라고 오해를 받고, 중국에서는 일본인이라고 오해를 받기는 합니다. 하물며 같은 한국인끼리도 제가 입을 열기 전까지는 같은 한국인이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고 하더라고요..^^;;) 중국어는 원래부터 잘하지 못 했던 데다가, 안 쓰니 다 까먹어서 그냥 영어로 얘기를 했더니, 재까닥,
우리는 아메리칸 차이니즈 푸드를 파는 식당이 아니라서 입맛에 안 맞을 수도 있는데 괜찮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상관 없다고, 그냥 오리지널 사천식으로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그래도 불안했는지 나중에 계산할 때, 같이 시킨 계란 볶음밥을 좀 더 줬었다고 하더라고요..^^;;
아무튼 당연히? 별로 매워하는 기색 없이 싹싹 긁어 먹고 일어났더니, 중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냐고 묻기에 아니라고 하고 나왔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의 결론이요? 객기 부려 가지고 잘 모르는 메뉴를 대~충 겉모습만 흉내내서 만들어 팔지마! 정도일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