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난주 말, 동생의 컴퓨터에 꽂혀있던 HD7750이 죽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이것이 EMP의 시작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죠. 그저, 2012년부터 지금까지 구르던 녀석이라 죽을 때가 되었겠거니 하고만 생각했었습니다.
https://gigglehd.com/gg/4369946
저는 동생이 쓸 그래픽카드를 새로 사는 김에, 동생 컴퓨터를 업그레이드하자고 제안했습니다. 지금 동생이 게임 돌리는 걸 보니까 CPU도 메모리도 후달리더라고요. 그래서 CPU도 중고로나마 바꾸고, 메모리는 16GB로 증설하고, 파워서플라이도 600W급으로 올리기로 했습니다. CPU는 중고나라 업자로부터 아이비 짭제온(E3-1230V2)을 11만원에 사고, 그래픽카드는 기글 분이 올리신 RX470 미개봉품 등산로를 오르고, 메모리와 파워서플라이는 적당한 신품을 구하기로 하였는데 시간이 좀 걸리는 우여곡절 끝에 그냥 컴퓨존에서 구매하기로 했지요. 저는 물건이 도착하는 대로 하나씩 테스트해보려고 했지만, 동생이 그냥 한번에 다 끝내자고 강경하게 반대하여 어쩔 수 없이 마지막 물건이 도착한 오늘에서야 겨우 테스트와 조립을 하게 되었습니다.
실로 간만에 뜯는 본체라서 먼지 청소하고 한다고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만, 어쨌거나 새로 온 부품들을 모두 조립하고 나서 부팅을 시도했습니다. 그랬더니 부팅이 시작되자마자 꺼져버리고, 잠시 후 다시 재부팅이 되기를 반복하더군요. 그래픽카드를 제거해도 마찬가지라서 새로 온 램을 빼고 지금까지 쓰던 램을 꽂아보니, 이번에는 비프음이 5번 울립니다. 인터넷을 찾아보니, 해당 메인보드에서 비프음 5번은 CPU Error입니다.
예전에 쓰던 CPU와 램까지 동원해서 몇 번의 테스트를 반복한 끝에, 주문한 메모리 2개 중 하나와 중고 짭제온이 각각 불량이라는 결론을 얻었습니다. 지금까지 쓰던 CPU를 넣고 불량 램을 꽂으면 전원을 넣자마자 도로 꺼져버리고, 지금까지 쓰던 램을 꽂고 짭제온을 넣으면 CPU Error로 비프음 이후 부팅이 안 됩니다. 혹시나 하여 BIOS를 최신 베타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CPU 지원에 변화가 있는지 확인해봤지만, 변화는 없었습니다. 사실 제조사 공식 홈페이지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 짭제온은 메인보드 출시 당시 버전의 BIOS로도 지원되는 것이 정상입니다.
컴퓨존 쪽은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전화를 했더니 내일 택배기사를 보내 문제의 램을 교환해 주겠다고 하더군요. 문제는 짭제온을 구매한 중고나라 업자인데, 전화를 했더니 자기는 제품을 두세 번씩 테스트했다며 CPU가 불량일 가능성이 낮으니 메인보드와 메모리를 몽땅 자기에게 보내면 문제를 해결하여 보내주겠다고 하더군요. 제가 이미 여기서 확인할 만큼 다 확인했다며 그냥 CPU만 같은 모델로 교환해줄 것을 요구했지만, 전화를 받는 업자는 똑같은 말만 반복하다가 지금 바쁘다며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옆에서 전화를 듣던 동생은 자기가 다 기분나쁘다며, 그냥 환불해버리는 게 어떠냐고 하더군요. 다시 전화를 걸어 제품을 교환해주지 않으면 그냥 환불하겠다고 하자, 그제서야 제품을 택배로 보내라고 합디다.
그리하여, CPU와 램 모두 지금까지 쓰던 물건으로 원상복귀하고 RX470 그래픽카드만 테스트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그래픽카드 쪽은 HDMI로 모니터와 연결했을 때 화면이 잘 나왔기 때문에 별 문제 없으리라고 생각하고 있었지요. 하지만 그 생각이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이 판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래픽카드를 달고 처음으로 윈도우에 진입한 뒤, 드라이버를 설치하기 위해 마우스를 움직이다가 어느 순간 갑자기 시스템이 완전히 얼어붙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처음에는 지금까지 쓰던 HD7750의 드라이버가 충돌을 일으켜 그렇게 된 것인 줄로만 생각하여,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안전 모드에서 기존 드라이버를 모두 삭제한 후 재부팅하고, AMD 공홈에서 드라이버를 받아 설치하려고 했지요. 그런데 설치 프로그램이 시작되고 잠시 지나자마자 또 다운되었습니다. 재부팅하고 장치 관리자에 들어가봤습니다. 장치 관리자에 그래픽카드가 나타나지 않고 있었습니다. 장치 관리자에서 하드웨어 변경 사항을 검색해봤더니, 이번에는 블루스크린이 뜹니다. 블루스크린 코드는 MACHINE_CHECK_EXCEPTION
. 하드웨어적인 문제를 의심할 수 있는 코드입니다. 혹시나 해서 재부팅한 후 최신 버전의 GPU-Z를 실행해 봤지만, 역시 실행되자마자 크래시됩니다. 그래도 GPU-Z는 블루스크린을 띄우거나 컴퓨터를 멈추지는 않더라고요. 그냥 에러 메시지와 함께 종료될 뿐. 묘한 곳에서 GPU-Z의 개발자 분께 감탄하게 되는군요.
그래도 혹시나 소프트웨어적인 문제임을 배제하기 위해, 안 쓰는 외장 SSD에 Windows To Go로 윈도우 10을 설치하여 그걸로 부팅해보기로 했습니다. 근데, 윈도우 10 미디어 생성 도구로 ISO를 다운받고 Rufus로 Windows To Go를 하려고 했는데 어째서인지 Rufus에서 Windows To Go 옵션이 안 뜨더라고요. 알고 봤더니, 윈도우 10 미디어 생성 도구로 다운받은 ISO 파일로는 Windows To Go 생성이 안 된다고 합니다. 미디어 생성 도구 다운받는 공식 홈페이지에서 꼼수를 써서 윈도우 10 ISO를 직접 다운받거나, 혹은 MSDN에서 ISO 파일을 받아야만 Windows To Go 생성이 된다고 하네요. 이거 몰라서 또 헤맸어요. 아무튼, 이걸로 부팅해 봐도 드라이버 설치 단계에서 블루스크린이 뜨더군요. 분명 HDMI 케이블을 RX470에 꽂아서 화면이 잘 나오고, 또 그래픽카드 팬이 잘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이건 그래픽카드를 의심하지 않을래야 하지 않을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까지 쓰던 구성에 내장그래픽을 사용하면 시스템이 멀쩡하기도 하고요.
동생에게 이 사실을 전하자, 동생은 어줍잖게 돈 아끼려고 중고 부품을 쓰려다가 이렇게 된 게 짜증난다면서 그래픽카드도 환불할 수 없느냐고 물어보더군요. 그래서 해당 회원님께도 쪽지를 보냈습니다. 정리해 보니 기가 막히네요. CPU, 메모리, 그래픽카드, 파워서플라이를 샀는데 파워서플라이만 빼고 모조리 다 불량이라니, 이건 EMP가 아니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사태입니다. 아니 이게 무슨 소리야! EMP라니!!
공부해야지 이놈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