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주중인 빌라 바로 옆에 붙어있는 다가구 주택 옥상에 개가 한마리 삽니다. 1년도 더 전에 그 집이 팔리고, 새로 이사온 사람들이 데려왔어요. 콜리 비슷하게 생긴 중형견이에요.
이 개가 참 불쌍합니다. 우선 집이 없어요. 더운 날에 햇볕을, 추운 날에 바람이라도 막을 개집을 하나 갖다두면 한결 나을텐데 그냥 옥상에서 삽니다. 그것도 풀려있을 땐 그나마 다행이고, 적지 않은 시간은 묶여서 지냅니다. 이따금 안 보이는 게 안에 들여놓을 때도 있지만 그것도 잠깐입니다. 작년에 한참 더울 때는 너무 불쌍하니 창문에서 얼음을 던져주기도 했었어요. 이것도 오해사기 딱 좋아서 눈치보이지만.
한편으로는 시끄럽습니다. 옥상에 갖혀있고 목줄까지 메여있지만, 조금의 시야와 소리는 들리거든요. 그래서 고양이들끼리 싸우는 소리가 들리면 시끄러움을 보태고, 괴성을 지르며 꼬맹이들이 뛰어가면 신나게 짖어댑니다. 그 소리가 너무 시끄러워서 이걸 어떻게 해야하나 싶은데, 개를 몰지각하게 옥상에 방치해두는 개주인한테 말해봤자 전혀 효과는 없겠죠. 겨우 이런 사유로 신고가 되는 것도 아닐테고요.
그런데 요즘 들어 저 개가 마음에 드는군요. 다른 것도 아니고 그 짖는 것 때문에 마음에 듭니다. 길가에서 술취한 사람들이나 중국인이 시끄럽게 떠들면 개가 짖거든요. 1층 마당에 묶어놓은 개라면 취객들이 어떻게 해코지라도 하겠지만, 3층 옥상에서 고개만 내밀고 있는 개를 뭐 어쩌겠나요. 술취한채로 고성을 질러봤자 결국은 개를 못 이기고 조용히 다른 장소로 가더군요. 개랑 사람이랑 싸우면 무조건 개가 이긴다더니 그 말이 맞나봐요.
그리고 여전히 불쌍하긴 하네요. 정말 시끄럽게 짖을 때, 위에서 창문을 열고 '개!'하고 부르면 그만 짖고 쳐다보거든요. 제가 들어가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쳐다봅니다. 고양이 싸움소리라도 들리지 않는 이상 계속요. 그리고 저를 보고 짖진 않습니다. 가뜩이나 옥상에 갖혀서 심심한데 위에서 사람이 내다보면 볼거리가 생겨서 그런가봐요. 이렇게 똑똑하고 착한 애가 저러고 있는 걸 보니 마음에 안 들지만, 개주인이 없는 것도 아니고 참 할 수 있는 게 없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