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1년 일본은 300여척의 대함대를 이끌고 신라를 침략합니다. 하지만 이 사건은 후세에 임진왜란처럼 임팩트 있는 전쟁으로 기억되고 있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신라의 성덕왕이 너무나 가볍게 털어 버렸기 때문입니다.
3년 후 성덕왕은 일본에 사신을 보냅니다. 그리고 신라 사신은 일본에게 우리는 “왕성국”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유교적 세계관에서는 세계를 왕성(중심, 1st)-왕기(수도 주변, 2nd)-육복(지방, 3rd)-번국(속국, 4th)으로 구분합니다.
즉 신라는 자신이 넘버 원이고 일본은 신라보다 아래니 무릎 꿇으라고 아주 고급스럽게 표현한 겁니다. 당연히 일본은 노발대발 하며 사신을 추방했지만 그 이상의 보복은 못 했습니다. 그러면 신라가 “뭐 XX, 한판 뜰까?” 이렇게 나올 거고, 일본은 신라가 그렇게 시비 걸면 “신라 형님, 저 일본 아우가 무릎 꿇었습니다.” 이럴 수 밖에 없어서였습니다.
당시 신라는 최전성기였고 일본에서도 귀족들이 신라 명품으로 부를 과시하고 장보고를 신라명신이란 신으로 섬기는 신사가 있을 만큼 신라의 영향이 컸습니다. 그리고 일본은 신라를 두려워해서 규슈와 쓰시마에 방어를 위한 신성을 쌓을 정도였죠.
P.S 신라가 멸망한 지 100년 후 일본에서 태어난 사무라이가 있었습니다. 그는 본명은 미나모토노 요시미츠이나, 신라명신 앞에서 성인식을 치뤄 신라사부로라고 불렸습니다. 전설적인 무용담을 남겼고, 훗날 다케다 신겐 등 유명한 후예를 남기게 됩니다. 당시 일본인들에게 신라란 국가가 매우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예라 할 수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