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7년부터 1909년까지 미국의 대백색함대(The Great White Fleet)는 전 세계를 순회하며 미국 해군의 위력을 과시했습니다.
일본 역시 이 함대의 위용을 직접 목격했으며, 이는 일본 해군에게 강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특히 러일전쟁(1904~1905)에서 승리한 후 근자감에 빠져 있던 일본은 미국을 가상 적국으로 여기며 해군력을 유지하고 강화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었고, 이에 따라 일본은 미국과 정면대결이 가능한 대규모 함대 건설 계획을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계획된 계획이 88함대(八八艦隊)인데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핵심 전력으로 합니다.
이 계획은 미국 해군에 대응하기 위한 장기적인 해군 증강 계획으로서, 최신 전함과 순양전함을 도입함으로써 해군력을 강화하려는 전략이었습니다. 주요 구성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전함 8척은 함령 8년 미만의 최신 전함으로 구성하여 적의 함대에 대응할 수 있도록 했으며, 순양전함 8척은 고속 기동이 가능하고 정찰 및 선제 공격 임무를 수행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이외에도 예비함으로 구형화된 전함을 8척씩 유지하고 전함에 준하는 성능의 순양함 8척을 갖추고 거기에 구축함, 경순양함, 항공전력 보강 등 보조 전력도 추가적으로 고려했습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전함의 대형화가 진행되던 시기였으며, 일본 역시 전함의 크기와 화력을 증대시키는 방향으로 설계를 진행했습니다.
일본 해군은 전면적인 대양전보다 함대 간 직접적인 결전을 중시하는 함대결전주의를 채택하고 있었으며, 88함대는 이 전략의 중심이 될 예정이었습니다.
또한, 당시 등장하고 있던 수퍼 드레드노트 개념을 반영하여 대구경 함포를 장착한 전함을 건조하려 했죠.
88함대 계획은 매우 야심찬 구상이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결국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습니다. 대규모 전함 건조에는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었으며, 일본 경제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웠습니다.
또 1차대전 이후 일본은 미국, 영국 등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1922년)을 체결하면서 일본은 전체 전함 보유량을 제한받게 되었고, 많은 계획이 취소되거나 축소되었죠.
당시 일본의 조선 기술과 자원 조달 능력은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열악했으며, 모든 전함을 최신 사양으로 건조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항공모함과 항공기의 중요성이 점점 부각되면서, 단순히 대형 전함 중심의 해군 전략이 시대에 맞지 않게 되었죠.
그래서 일본은 정작 항공모함 전술을 미국이나 연국보다 먼저 제대로 선보이고도 저 때 사고관에 사로잡힌 지휘관들에 의해 삽질을 거하게 퍼게 됩니다.
비록 88함대 구상은 완전히 실현되지 못했지만, 이 계획을 통해 일본 해군은 전함 나가토급, 야마토급과 같은 강력한 전함을 건조하는 기술력을 쌓게 됩니다.
그리고 저 전함과 순양함을 운영하기 위해 1년에 100명 정원이던 일본 제국 해군 사관학교 정원을 300명으로 늘렸는데 이들이 나중에 일본 해군과 해상자위대의 근간이 되죠.
이후 88함대 계획이 수정된 형태로 8-8 함대(新八八艦隊)로 발전하기도 했지만, 결국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꿈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여러모로 이 계획은 당시 일본이 미국을 잡겠다고 한 무리한 정책이었습니다.
아부라가나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