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 빈궁하게 자라놔서 반찬 투정 없이 주는대로 먹는 편이나, 좀 크고 나서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로 좋은 것도 몇번 먹어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커버할 수 있는 음식 수준의 범위가 꽤나 넓다고 생각합니다.
커피의 경우 사회생활 때문에 이것저것 마셔봤고, 처남이 커피장사를 하니까 전반적으로 기준이 높아졌지만, 그렇다고 비싼 것만 찾는 건 또 아니거든요. 믹스 커피도 마시고, 카누 정도면 마실만 하지 않나, 귀찮으면 캡슐이 최고지 등등.
그런데 오늘 최악의 커피를 마셔봤네요. 원래 역대 최악의 커피는 지금 사는 동네 스타벅스였는데 그걸 능가합니다. (스타박스가 다 맛없다는 말은 아니고 이상하게 다른 동네 스타벅스는 괜찮은데 이 동네 스타벅스만 구린내가 나더군요)
결혼식에 가서 부페를 집었는데, 대체로 다 먹을만 했어요. 트집을 잡자면 냉동 횟감이 덜 녹았느니, 베이커리는 먹을 게 하나도 없었느니 등등 한도 끝도 없겠으나, 그런 걸 감안해도 먹을만은 했습니다.
사실 이런 건 가격대와 퀄리티가 정비례해서 올라가는 법이죠. 아주 비싼 곳은 아니었으니 100% 만족스럽진 않았으나 이 정도면 먹을만하다고 생각했는데 문제는 후식으로 한잔 뽑은 커피.
무슨 커피가 쓴맛만 가득하고 다른 맛이 하나도 없어요. 이걸 도저히 그냥 먹을 순 없어서 물을 좀 타봤는데 보리차가 되더군요. 남북전쟁때 고구마나 옥수수를 커피 대용품으로 썼다는 데 그게 훨씬 낫지 않았을까 생각될 정도.
움베르토 에코가 과추출된 커피머신을 줄창 까댔고, 똑같은 재료여도 이걸 어떻게 추출해 내느냐에 따라서 맛이 달라지긴 하나, 이번 경우에는 아무리 봐도 기계보다는 원두가 의심이 가네요.
예식장 식당에서 원두를 직접 볶을리는 만무하고 어디서 볶은 걸 받았겠죠. 납품업자의 농간으로 폐급이 들어갔던가 아니면 보관을 잘못했나... 이런 곳이 원래 강배전한 원두가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건 알지만 이건 볶은 것도 아니고 태운 듯.
오죽하면 집에 오자마자 카누 스틱 두개 뜯어서 입가심했어요 -_-) 지금까지도 그 찝찝함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여기까지 쓰니 제대로 된 커피를 마시러 가고 싶지만, 그러려면 최소 왕복 30분은 필요하니 걍 포기해야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