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기글의 진가해님과 함께 <사바하>를 보았습니다.
감독의 전작인 <검은 사제들>이 취향이었기 때문에 기대를 잔뜩 했고,
미리 말씀드리자면 오컬트/설정 덕후인 제게는 굉장히 만족스러운 작품이었습니다.
이 영화는 공포, 스릴러를 기대한다면 재미가 떨어지는 영화입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유전>과 같은 서양 공포 영화 수작과 비교한다면 전!혀! 무섭지 않습니다.
저는 무서운 것을 정말 못보는 사람이지만 초반 몇 장면을 제외한다면 두눈 부릅뜨고 볼 수 있었습니다.
무서운건 <검은 사제들>이 훨-씬 무서웠습니다.
오히려 이 영화는 공포와 스릴러가 적었기에 차분한 분위기, 낮은 톤으로 진행할 수 있었고, 덕분에 관객들에게 화두를 던질 수 있어 매력적이었습니다.
해당 리뷰에는 강력한 스포가 있으니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 가기를 눌러 주세요.
(스포 방지를 위한 큰 포스터)
영화의 시작은 99년생 금화의 내레이션으로 시작합니다. 금화는 '귀신'으로 태어난 쌍둥이 언니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귀신은 금화의 부모님을 앗아가고, 출생신고조차 안된 채로 가둬져서 자랍니다.
귀신이 태어났을 때 염소들이 울어댔던 것은 흡사 '악마'를 연상하게 하였습니다. 감독이 노린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 장면은 끝까지 귀신에 대해 의문을 갖게 합니다.
이어 사이비 잡는 목사 박목사가 나옵니다. 박목사는 실상 이 영화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꾼입니다.
어두침침한 영화 분위기 사이사이에 개그 포인트를 넣어주는 역할이기도 하죠.
진선규씨가 맡은 해안스님과의 합이 좋습니다.
특히 불교 경전과 탱화를 해석해주는 장면에서 저는 감독이 배운 변태임을 다시금 느끼게 되었습니다.
박목사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성경의 구절, 기도문 또한 영화의 맥을 짚어주며 생각하게 합니다.
이래서 발음과 감정선, 그리고 발성이 좋은 배우를 쓰는구나도 느꼈습니다.
이들은 이단 종교인 <사슴 동산>을 추적합니다. (노루 강해욧)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월 출생 99년생 여자아이들이 거의 다 살해된 것을 알게 되죠.
이 장면을 묵직하게 던져주는 것은 황반장역의 정진영씨입니다.
벽면에 붙어있던 문서들을 하나하나 떼내면서 문서에 가려져있던 실종 포스터들을 보게 되죠.
모두 공통적으로 영월 출생의 99년생 아이들이었습니다.
선(善)의 극의에 달한 자가 타락하여 저지른 일이었죠.
타락한 등불(미륵)은 자신의 대적자를 경계하기 위해 소년원에서 네 명의 부친살인수를 거둡니다.
그리고 불교의 4천왕 자리를 줍니다. 이들은 그들의 등불을 위해 99년생 여자아이들을 산후조리원서부터 해외에까지 광범위하게 추적하여 죽입니다.
뱀은 아름다운 눈을 갖고 있으며, 달콤한 말로 유혹합니다. 그리고 소녀의 몸으로 화해 태어난다고 하죠.
예언은 뱀이 첫 피를 흘리는 날 등불이 꺼진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4명의 소년수들은 첫 월경이 오기 전에 그녀들을 모두 죽이고자 합니다.
이 영화의 별미는 사슴 동산 경전의 예언과 금화의 상황이 교차되는 것입니다. 모든 예언은 금화를 가리키고 있지만, 금화의 쌍둥이 언니인 '귀신'을 가리키는 것 같기도 합니다.
영화는 내내 그래서 정나한이 죽이려고 하는 뱀은 누구인가를 의심하게 합니다.
금화는 짧고 서글프게 정나한을 흔들거든요.
금화에게 현혹된 정나한은 귀신을 죽이고자 달려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미륵의 모습으로 화한 귀신과 조우합니다.
금화의 다리를 뜯어먹고 뱃속에서 태어난 귀신은 흉측한 몰골을 벗고 미륵의 모습으로 정나한을 현혹합니다.
과연 그녀가 진정한 미륵인가, 그렇다면 뱀은 누구인가 하는 고민이 시작됩니다.
왜 금화의 다리를 뜯어먹었나, 왜 그녀의 주위에 뱀이 있을까, 왜 그녀의 주변에는 소가 죽고, 부모가 죽는 등의 불길한 일이 일어나는가, 만약 그녀가 미륵이라면 왜 그런 일이 일어났을까 하는 의문이죠.
미륵으로 화한 귀신과 정나한이 조우하면서 영화는 반전을 겪습니다.
귀신은 그를 현혹하기 위해 성인의 증표를 확인하라고 합니다.
정나한은 그 길로 그의 등불에게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가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진실과 마주하게 됩니다.
이 이상 적다 보면 영화의 모든 내용을 기재하는 것이라 이쯤 마무리 짓겠습니다.
예수가 태어난 날, 수많은 어린 아이가 왕에 의해 참살당합니다. 마침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성탄절이네요.
박목사가 기도문을 읊고, 등불과 귀신, 그리고 금화 중 누가 뱀이었는가를 끝까지 고민하게 하면서 영화는 막을 내립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일신의 자비를 믿는 목사의 입에서 그의 행함에 자비가 있는지, 그가 존재한다면 어찌 이 참상이 벌어졌는지에 대한 의문과 절규가 흘러나옵니다.
이 영화가 종교 영화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정확히는 종교에 대한 화두를 던지는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블로그나 각종 후기에 악평도 많고, 호평도 많지만, 이 글을 읽어주신 분께서 종교/오컬트/설정에 관심이 많으신 분이시라면 한 번쯤 영화관에서 관람하셔도 좋을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나올 한국 영화가 몇 편일지는 모르겠지만 제겐 2019년 한국 영화 중 가장 만족한 영화가 될 듯싶네요.
조만간 2회차를 찍을 예정입니다.
영화에 다양한 종교적 상징이 나옵니다. 지식이 일천 한지라 다 알아보지는 못한 것이 아쉬웠습니다. 관련 지식이 있다면 더 많은 것이 보이는 영화일 것입니다.
그럼 저는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