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2대 국왕 혜종은 이름이 왕무(王武)이며 고려 태조(왕건)의 장남입니다. 그는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시름시름 병을 앓다가 승하한데다가 그 다다음 국왕인 광종이 업적과 행보가 화려해 눈에 안 띄는 비운의 국왕입니다. 하지만 왕으로서는 몰라도 그 개인으로서는 대단했습니다.
그는 일리천 전투에서 후백제군과 싸워 고려군이 후백제군을 물리치는 데 큰 공을 세웠고, 그 외에도 후삼국시대의 혼란한 시대에 아버지태조와 국가 고려를 도와 많은 업적을 쌓아서 자신의 지지세력과 입지가 약한데도 태조의 후계자가 됩니다.
그러나 그의 지지기반인 나주 오씨 가문은 후삼국시대 당시 견훤에게항전하다가 크게 박살나 세력을 잃었고, 혜종을 노리는 세력이 많았습니다. 오죽하면 출생을 비하하는 설화까지 남을 정도였죠. 혜종을 노리는 인물 중 대표적인 인물이 왕규인데, 그는 혜종을 제거하려고 자객을 보냅니다.
자객은 왕의 처소에 구멍을 내어 침입하였고, 시위하고 있던 내시를 칼등으로 내리쳐 기절시켰습니다. 그리고 자객은 혜종이 덮고 있던 이불을 찔렀는데 그것은 지푸라기였습니다. 이러한 사태를 예상하였던 혜종은 이미 낌새를 차리고 피해 있었는데, 목표를 놓치고 당황해 하던 자객에게 "무엇을 찾느냐(!)"며 천연덕스럽게 물었습니다.
정신을 차린 자객은 칼을 들고 혜종을 시해하려 했으나, 혜종은 칼끝을 날렵하게 피하며 맨주먹으로 자객의 인중을 가격해서 쓰러트렸습니다. 왕을 시해하려는 자객이었던 만큼 무예가 뛰어난 사람을 보냈을 텐데 혜종은 무장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무장한 자객을 맨손으로 제압한 겁니다.
이렇듯 혜종은 개인적인 무력도 뛰어나고 왕건이 다른 쟁쟁한 자식들을 놔두고 굳이 후계자로 삼을 만큼 뛰어난 인물이렀으나, 정치 기반이 약하고 끝없는 견제와 암살 위협으로 자신이 명군인지 암군인지도보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고 만 겁니다. 차라리 왕이 아니었으면(성씨와 직위 모두) 훌륭한 장군으로 천수를 누렸을지도 모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