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9시가 채 되기 전 무렵, 갑자기 인터넷이 예고 없이 끊겼습니다. 처음에는 USB-C 어댑터에 물려 둔 랜선이 접촉불량으로 빠졌나 했지만, 아니더군요. 하필이면 오늘이 다 가기 전에 인터넷으로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에 당황스러웠습니다. 일단 정 급하면 테더링을 걸 생각을 하고, 원인 파악에 나섰지요. nslookup
이고 뭐고 아무것도 안 먹더군요. 심지어는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도 접속되지 않았습니다.
사용중이던 공유기는 D-Link의 DIR-850L이었습니다. 여기 입주할 당시 방에 놓여 있던 유플러스 공유기의 성능이 너무 처참하여 본가에서 예비로 들고 왔던 이 녀석을 대신 물려서 쓰고 있었죠. 얼마 전 인터넷이 SKB로 바뀌었을 때도 이 녀석은 계속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구입 당시에는 802.11ac를 합리적인 가격에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가정용 유무선공유기였죠.
잘 살펴보니, 유선이 아니라 Wi-Fi로 접근할 경우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에는 접근이 가능했습니다. 그런데 관리자 페이지에는 인터넷이 정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나왔지만, 실제로는 인터넷 접속이 전혀 되지 않았습니다. 재부팅해봐도 소용이 없더군요. 사용한 지 6년이 넘은 물건이라 이제 퇴역할 때가 된 모양입니다.
다행스럽게도 당장 교체할 수 있는 공유기가 있긴 있었습니다. 얼마 전에 인터넷을 교체당할 때 SKB 기사양반이 포장도 뜯지 않고 그냥 두고 간 SKB 기본 공유기가 그대로 놓여 있었거든요. 인증번호가 R-CS-Hfr-H534G
인데, 인터넷을 찾아보니 이건 다보링크의 DVW-2600N라는 모델인가 봅니다. 동봉된 직류전원장치로 전원을 공급해 보니 잘 작동하는데,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가 어딘지 모르겠더군요. 조금 헤멘 끝에, 192.168.25.1
이라는 주소를 찾았습니다. 인터넷에서 먼저 찾았던 192.168.35.1
이라는 주소는 같은 회사의 기가비트용 모델에서 쓰는 모양이더군요.
안내 메시지에 따라 패스워드를 입력할 때 대소문자 구분 때문에 조금 고생했지만(알고 보니 대문자는 대문자 그대로 쓰는 것이었습니다), 어쨌건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에 접속할 수는 있었습니다. 근데 좀 제약되는 것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로그 메시지에 따르면 자동 재부팅이 미리 잡혀있는 것 같은데, 정작 관리자 페이지에는 이걸 설정할 수 있는 메뉴가 전혀 없습니다. DNS 서버 설정도 수동 설정을 선택할 경우 첫번째 DNS 서버는 SKB의 기본 DNS 서버로 고정되어 있어서 바꿀 수가 없습니다. 서브넷 마스크도 255.255.255.192
로 고정되어 있어서, 내부 IP의 범위가 제약되어 있더군요. 펌웨어 버전이 1.00.00이라 그런가 싶기도 한데, 버전업할 펌웨어는 어디에도 없고 자동 업데이트도 안 보입니다.
그래서 공유기 관리자 페이지에서는 그냥 Wi-Fi 전파 출력을 최소로 줄이는 설정과 라즈베리 파이에 적당한 고정 IP를 잡아주는 설정 정도만 하고 빠져나왔습니다. 안 그래도 혼잡한 전파 환경인데, 방 안에서만 쓸 와이파이니까요. 라즈베리 파이 쪽은 이후에 Avahi를 깔아서 mDNS를 설정해볼까 싶기도 합니다. 내부망 안에서 IP 주소가 아니라 이름으로 접속할 수 있게끔 말이죠. 직접 해본 적은 없긴 한데… 뭐 안 되어도 상관없고 말이죠.
인터넷이 다시 연결된 후 일을 마저 처리하고 나니 시간이 훅 갔네요. 어쨌든 나중에는 별도로 공유기를 하나 새로 사고 싶습니다. 근데 지금 당장은 돈이 없군요. 서울시 재난지원금으로 받은 제로페이 쿠폰에 돈이 좀 남아있긴 한데, 대형마트 결제는 안 되니까 그걸로 공유기를 사기도 힘들 것 같고… DIR-850L에서 쓰던 12V 2A짜리 직류전원장치는 고이 모셔두면 나중에 쓸 일이 생기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