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밤은 너무 더웠습니다. 온도계에 표시된 숫자가 30도까지 올라갔네요. 이렇게 더운 날에는 평범한 일상의 일부였어야 할 잠조차도 보통 일이 아닙니다. 미세먼지 알림 앱이 녹색만 됐어도 창문 열어두고 잘텐데, 요 며칠은 계속해서 주황색이네요. 이런 날에 창문 열어놓고 자면 목구멍에 먼지가 가득 차면서 다음날 아침에 득음이라도 한것같은 소리가 나오죠.
그래서 침대가 있는 작은 방 말고 컴퓨터가 있는, 그리고 에어컨도 달려 있는 큰 방에서 자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그 소리를 조금이나마 일찍 들을 수 있었던 것일지 모르겠네요. 방 바깥에서 이상하지만 익숙한 소리가 나고 있었습니다. 잠이 덜 깬 상태로 소리에 집중해보니 정확히는 큰 방 나가서 바로 옆에 붙어있는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네요.
아랫집이 평소에도 개소리 고양이소리 꼬맹이 악쓰는 소리 온갖 구박과 욕설이 맞깔나게 배합된 부부싸움 소리까지 온갖 다채로운 소리를 심심치 않게 내주는 곳이라 처음에는 별 생각을 안했는데,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익숙한 소립니다. 아랫집이 아닌 저희 집 화장실에서 나는 소리였고, 그 소리는 다름 아닌 화장실 비데가 작동하는 소리였습니다.
지금도 그렇고 새벽에도 그렇고 집에는 저 혼자밖에 없어요. 마누라는 산후조리 겸 애 키우는데 도움을 받기 위해 몇달 전에 친정으로 내려갔거든요. 집 비밀번호를 알아서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또 있긴 한데, 그래봤자 양쪽 가족들이고요. 설령 그렇다고 한들 저희 집에 온다면 전화라도 먼저 하지 다짜고짜 들어올 사람은 없거든요.
이 쯤에서 나온 결론은? 누가 집에 무단으로 들어왔고, 자기 집처럼 비데까지 쓰고 있다는 거.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조용히 일어나서 드라이버 옆의 펜치를 집었습니다. 뚝배기를 노리기에 별로 좋은 도구는 아닌데, 망치는 안방이 아니라 바깥 쪽 공구통에 있거든요. 가장 먼저 생각이 나는 도구가 펜치 하나밖에 없더라고요.
문을 여는 방향 때문에 펜치를 왼손에 들고, 오른손으로 문 손잡이를 잡아서 확 열었더니 아주 끔찍한 광경이 눈에 보이네요. 수상한 사람 같은 건 없고, 비데 혼자서 더위를 쳐먹었나 물을 뿜뿜하며 허공에 발사중이었습니다. 그 물은 화장실 너머 거실 바닥에 떨어지고 있었고, 이미 거실의 1/4 정도는 바닥이 흥건히 젖어 있었네요.
구입해서 장착한지 1년도 지났으니 어차피 A/s는 건너갔는데 저놈의 비데를 펜치로 후려갈기면 좀 정신이 들까 싶었으나, 물건한테 화풀이한다고 해서 내가 수습해야 할 일의 총량이 줄어들지 않는다는 사실은 자명하고요. 몇 번 껐다 켜보니 비데는 진정이 됐네요. 그리고는 새벽 5시부터 걸레 다섯장을 들고 와서 뜬금없이 바닥 청소를 했고요.
대충 수습은 했지만 그 때문에 새벽에 잠을 설쳤고, 앞으로 집을 장시간 비울때는 비데 코드를 뽑아버리고 나가야 할것 같으니 더욱 귀찮군요. 이참에 하나 사버리는게 어떨까 생각도 들지만, 당장 테스트에 쓸 CPU도 없는 판에 혹시 모를 비데를 위해서 2, 30만원을 써야 하는건가.. 하여간 날벼락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