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도쿄는 세게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들 만큼 중요한 도시이며 영향력이 막대했지만, 원래는 한적한 어촌이었습니다. 이 어촌의 가치를 깨닫고 처음으로 도시를 만든 사람은 오타 도칸이라는 장수였습니다.
그는 당시 무로마치 막부에서 간토간레이(일본 간토 지역 전체를 다스리는 직책) 우에스기 사다마사의 부하였습니다. 그가 활동하던 시기는 전국시대가 시작되던 시점입니다. 유능한 장수얐던 그는 간토 지역전체를 평정할 수 있으면서도 교통과 상업 등도 발달할 수 있는 근거지를 찾았습니다. 거기가 바로 지금의 도쿄입니다. 그 지역은 헤이안 시대 때도 이민족을 방어하기 위한 요새가 건설되었다가 관심이 쏠리면서 소외받았던 지역입니다.
오타 도칸은 1457년 지금의 치요다 구 지역에 우선 방어 시설을 건설합니다. 산을 깎고 흙을 쌓아서 큰 언덕과 토성을 만들고, 그 토성에 벽돌과 목책, 해자를 이용해 방어선을 구축하고, 성 바깥에는 도시를 조성하려고 했죠. 이러한 양식은 전국시대 일본 간토 지역 성의 전형적인 레퍼토리가 됩니다. 오타 도칸은 이렇게 축성술, 용병술 등 군사 능력 뿐만 아니라 와카 등 문학에도 일가견이 있는 엄친아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너무 유능해서 당시 주군이던 우에스기 사다마사의 시기를 사서 암살당하고 맙니다. 그 때 오타 도칸은 죽으면서 유언을 남깁니다. "당가멸망(너희 가문은 멸망할 것이다)." 이라고요. 자기와 같이 능력있고 충성을 바치는 부하도 죽이는데, 과연 다른 부하들이 당신을 따를 것이냐는 비아냥이었죠. 결국 우에스기 가문은 힘을 잃고 허수아비로 전락하다가 1546년 카와고에 전투로 멸망하고 맙니다.
이렇게 오타 도칸이 쌓았던 에도성은 100년 넘게 방치되다가, 나중에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해 억지로 간토로 간 후 근거지를 찾던 과정에서 재발견됩니다. 그는 허술해지고 무너져가던 에도성을 재건축한다는 명분으로 임진왜란을 피했고, 나중에 일본을 통일한 후 화려하게 재개발하게 됩니다. 도쿠가와 가문이 재개발한 에도 성은 18세기 말에는 인구 100만의 거대도시로 발전하였고 메이지 유신 이후 정식 수도가 됩니다. 현재 일본 천황이 사는 궁궐은 에도 성의 중심부를 재활용한 것이며, 도쿄 시가지는 성의 주변 마을들입니다.
P.S 1546년 카와고에 전투로 우에스기 가문은 권위와 권력, 영향력을 완전히 잃고 몰락했는데, 이 때 나가오 카게토라라는 사람이 우에스기 가문의 양자로 들어가 우에스기 가문을 인수합니다. 그가 그 유명한 우에스기 겐신입니다. 그는 전쟁의 천재면서 유독 독실한 불교도며, 일본 최고의 의리남이자 비사문천의 화신이며, 사실은 여자라더라 하는 설도 도는 등 흥미로운 인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