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벌이라고 하니 뭔가 벌판에서 싸운 대회전같지만
사실은 백제가 산성들에 틀어박혀 방어하고
신라가 산성을 공략하는 공성전에 가깝다고 합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도 백제군 5천이 신라군 5만을 상대하려면
고지대의 요새에 숨어 농성하는게 정석이죠.
황산이란 뜻부터가 원래리로는 누르리모이부리, 즉 연달아 모인 산이란 지명을
오역해서 황산(黃山)이라고 옮겼다가, 고려때 연산(連山)이라고 다시 바꿨습니다.
논산훈련소 가는 길에 보면 알겠지만 그야말로 산으로 성벽을 만드는 곳이죠.
다만 문제는 저 산성들 높아봐야 1~200미터 야산 위에 쌓은데다가
가뜩이나 적은 병력을 분산배치를 시켰다는 겁니다.
신라의 김유신도 저 성들과의 연계 작전을 파악하고 각개격파를 시켜 나갔습니다.
아마 계백도 저런 약점을 알지만, 별수 없으니 저런 방어진을 한 거로 보입니다.
자신은 시간을 벌어서 백제군이 재정비하고 지방군이 올라올 기회를 주는거죠.
ㅎㅎ
아버지 고향이 대둔산밑 수락계곡쪽인데 연산방향에서 가는 길과 양촌 가는길 모두 험준한 산을 넘어가는 길입니다.
연산쪽으로 가는 길이 비포장 도로일 시절 버스를 타면 놀이기구 수준으로 험난했던 어릴적 추억이 있고 연산 장날때문에 많은 분들 넘어 다니셨죠.
앙촌쪽으로 가는길은 터널이 개통된지 10여년밖에 안된 새로운 길이나 옛날에는 도보를 이용하여 양촌 장날까지 산길을 등반하셨다고 하더군요.
저희 할머니께서 양촌 장날에 가서 빨래용 돌판을 구매하시어 머리에 이고 오셨다고 작은 아버지께서 말씀하시더군요.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