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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2020.06.14 23:26

문화적 도용과 한국의 식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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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수 748 댓글 25

사회이슈적 주제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순한 맛의 글일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다른 수상한 어느 곳에 올렸다가 이쪽으로 옮겼어요. 글을 다듬다 보니 굳이 다른 곳에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령 어느 한 문화권의 바깥에서 그 문화권의 요소들을 이해나 배경 없이 남·오용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 원주민의 종교적 상징인 헤드드레스가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이용되는 것이나, 힙합 신에서의 흑인 문화 전반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화적 도용은 인종, 계층, 국가, 문화적 차별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최근에 미국 사회 내에 산재하는 시스템화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종 차별에 대한 자타에 대한 반성이 잇닿고 있습니다. 문화적 도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커진 것도 그 현상의 한 축에 속할 것입니다.

 

식문화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음식의 원형이나 원래의 재료, 그 조리방법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변형을 레시피로서 소개한다던가, 식재료의 유래와 사용에 대한 이해 없는 사용이나, 그 문화권 바깥의 인원이 해당 문화권 음식을 만들어 파는 등이 마찬가지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식을 만든답시고 비빔밥에 아보카도를 넣는다던가, 김치국물을 가지고 블러디 메리를 만든다던가, 갈비찜을 만든답시고 갈비를 먼저 구워 카라멜화를 시키고 야채를 볶은 뒤 레드 와인을 넣어 디글레이징을 하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차별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곳이 주로 미국인 데에 반해 저는 토종 한국인입니다. 그렇기에 식문화의 도용이라고 한다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피해자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는 의구심 때문에라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식문화는 특히 지난 한 세기즈음을 거치면서 매우 빠르게, 그리고 매우 크게 바뀌어 왔습니다. 그 중에서는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도 있을 것이고, 반대 방향으로의 퇴보도 있을 것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온 영향도 상당 비중을 차지합니다. 육수나 채수를 내는 것보다는 다시다와 미원, 설탕 등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최근으로 가자면 수많은 음식에 모짜렐라 치즈 (내지 모조 치즈) 를 끼얹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됩니다. 음식의 유행의 주기도 매우 짧아서,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팍 식어버린 불닭의 유행이나 어느 순간 대중화된 매운닭발 등의 예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식문화는 실시간으로 해체와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바쁜 생활 속 가정식보다는 저렴한 외식이 보편화된 것이나, 초경쟁적 사회에서의 유행 선점을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개발 등을 꼽을 수 있일 것입니다. 그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라도 이러한 "식문화의 도용"에 대한 비판에 제가 쉬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미국인중심적인 사고라는 인식마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 도용에 대한 비판이 국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이 한식을 만든답시고 상상도 못한 재료를 넣는다던가, 한국인이 보기에는 한식같지 않아 보이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한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모습에 대해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요리에 대한 쉬운 길을 알려주는 백종원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한식의 원래 형태를 훼손시키고 조미료의 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망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요리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미주 한국인 이민자분이 뉴욕 시 한복판에서 운영하는 한식 전문 채널입니다. 이 분께서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전통적인 한식을 하는 축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미 한식의 정통성이나 식문화의 도용에 대한 부당함을 부르짖기보다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결국 음식은 먹어서 배가 부르고 맛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변화해나가며 발전하는 것이 식문화의 본질이 아닐까요.

 

이걸 굳이 글로 써 올리는 것은 이러한 한식 식문화의 오남용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위 내용은 아무리 장황하게 늘어놓아봐야 제 의견이고 생각일 뿐이니까요.



  • ?
    포인트 팡팡! 2020.06.14 23:26
    마커스님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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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ofile
    title: 부장님호무라      scientia potentia est 2020.06.14 23:31
    일식집만 해도 전 세계 한 50%는 일본인이 아닌 한국인이 퍼트렸습니다. 당연히 그 지역에 맞게 현지화도 많이 했고요. 그런 걸 가지고 일본은 일식을 망가트렸다고 하기보다 일식 확산과 홍보에 톡톡히 써먹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서로 윈윈이었죠.
    그러니 외국인들이 한식을 현지화하고 퍼져나가는 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은 그 전파 과정을 도와주면서 방향성만 잡아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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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4 23:55
    다만 과연 우리가 무슨 권위로 남들의 방향을 잡는다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가 있을 뿐입니다. 한식과 한식 식재료의 전파가 풀뿌리 형식으로 전세계적으로 자생하였듯 우리는 우리대로 나은 점을 배우고 받아들일 뿐이지 그 이상은 만용의 범주에 걸치지 않는가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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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우나      7460 2020.06.14 23:31
    뭔가 보면 근본없는듯한 무언가가 잔뜩 보이고 하는데 전 맛만 좋으면 된거지 라는 생각으로 해탈중이네요

    뭔가가 근본없이 위에 모짜렐라 치즈를 잔뜩올린 무언가가 메뉴에 있고 시켜서 나오면
    전 휴대한 파르미지아노를 거기위에 왕창 갈아넣곤 하는 이상한 식이습관이 있습니다.(음?)
    파르미지아노 체고시다(옆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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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4 23:56
    사실 따져 말하면 한다리 걸쳐 우리나라로 전파되어온 피자의 모습이나, 온갖 음식에 모짜렐라 치즈 (비슷한 것) 을 때려붓는 모습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문화의 오남용이라고 하더라도 할 말이 없는 수준이기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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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on 2020.06.14 23:46
    제가 평소 갱각하던 한국의 식문화는 세대에 그대로 녹아있는 형태입니다. 전후부터 70년대까지는 먹을것=생존배채우기였고 70년대부터 90년대까지는 성장한 경제를 바탕으로 식도락(다양한 먹을거 찾아가기)문화 였고 90년대부터 10년대까지는 식문화 자본의 확장을 통한 새로운 맛의 탐구 정도가 아닐까 합니다. 본문글에서 언급한 해외음식들의 소개도 포화된 식산업에서 일종의 돌파구로 나온 결과가 아닐까 합니다. 안될거 같은 음식장사도 해외여행으로 다양한 해외의 맛을 많은 사람들이 느껴봐서 호응이 되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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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4 23:58
    맞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외국의 문화를 많이 받아들이고 변형시켰던 것처럼 외국에서도 한식에 대한 포용과 그에 따른 변형이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문화적 오남용이라고 딱지붙이고 비판하는 것이 과연 생산적인 것일까 하는 의구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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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lzleking      쌈마이 5.1.2 굴리고 있습니다 (...) 2020.06.14 23:51
    모든 음식이 문화권 사이의 교류를 거쳐서 다양해집니다.

    결과적으로 맛있기만 하면 무슨 시도를 해도 문제가 없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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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5 00:01
    문화적 도용을 외치는 사람들이 보수적인 시각이라고 한다면 반대로 본문처럼은 진보적인 시각이라고 볼 수 있겠지요. 다만 어떤 면에서는 이미 우리가 일상에서 접하는 한식이 너무나 간소화되어서 되돌리지 못할 만큼 훼손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지울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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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lzleking      쌈마이 5.1.2 굴리고 있습니다 (...) 2020.06.15 00:04
    뭐 현대 유럽 요리도 한창 귀족들 많을 때보다는 간소화된 면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경써야 할 일은 언젠가 다시 꺼내볼 수 있도록 레시피를 보존하는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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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5 00:24
    예전에 참고 자료로 쓰겠다고 중세 유럽 귀족 계층의 식사 양식에 대해 찾아봤던 적은 있는데 생각해보니 요리 자체에 대해서는 알아본 적이 없군요...

    다행히도 망치 같은 분도 계시고, 국내에서도 전통 한식에 대한 보존 노력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보다도 제가 걱정하는 여기서 나아가는 미래 한식의 모습입니다. 이건 정말 극소수의 고급 현대 한식 전문점과 전문가들 이외에는 어디부터 찾아야 할 지를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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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NESIS      쪼렙이에요 2020.06.14 23:52
    하긴 우리가 먹는 음식들이 대부분 급조된 음식이니까요. 문제가 되는 건 음식은 융합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다른 쪽에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는 겁니다. 한식은 그렇게 파괴하고 변형 시켜온 한국인들이 한복에 대해선 엄청 엄격하거든요. 이건 어떻게 보면 상업성과 연관이 깊습니다. 한복은 명절에나 입는거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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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5 00:04
    제가 아는 것 없는 겁쟁이라 굳이 더 큰 범주가 아닌 그나마 온건한 주제인 식문화에 대한 이야기로 한정짓는 것으로...
  • profile
    GENESIS      쪼렙이에요 2020.06.15 00:06
    식품 회사들이 이렇게 융합 시킬 수 밖에 없었다고 봅니다. 그걸 좋게 말해서 세계화인데, 엄연히 말하면 한식을 세계 진출 하려고 개선한게 아니라 다른 나라 음식들을 이것저것 가져와서 섞은 것에 불과합니다.
  • profile
    마커스 2020.06.15 00:16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공급이 먼저냐 수요가 먼저냐같은 이야기이지만 현대 한식의 간소화는 백종원같은 분들이나 제일제당같은 기업의 공급이 주도가 되기보다는 음식을 먹는 사람들의 수요가 먼저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도 이야기하였지만 당장 바쁜 현대 사회 속에서 맞벌이가 늘면서 가정주부라는 역할이 퇴색되고, 밥을 해 먹자니 최소한의 시간과 노력으로 최대한의 맛을 낼 수 있는 조미료에 대한 수요가 늘게 되었으며, 그 이상으로 저렴하게 밖에서 외식을 할 수 있게 되면서 요리 자체를 취미로 하는 일부, 그 중에서도 조미료 등을 최소화하는 것은 일부분의 일부만이 남게 되니까요.

    추가: 댓글을 달고 나니 수정되어 조금 다른 이야기가 된 것 같습니다만, 그래도 일단 쓴 게 있으니 남겨놓아 봅니다.
  • profile
    GENESIS      쪼렙이에요 2020.06.15 00:27
    이탈리아에서도 엄청 보수적인 사람들은 볼로냐 파스타, 볼로네제 따위는 미국식 파스타라고 주장하죠. 그런데 정작 볼로냐에서도 그 파스타를 해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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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5 00:37
    고기소스인 라구 알라 볼로네제 말고 사실상 토마토 기반 소스에 고기 들어간 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렇다면 그건 그것대로 따로 있기는 할 겁니다. 라구 알라 나폴리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모양이군요.

    뭐, 사실 따지고 보면 까르보나라와 알프레도와 정체불명의 크림소스가 혼용되는 것이나 전세계적으로 기묘하게 변형된 피자 등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들이 식문화의 오남용에 대해 억울한 부분이 많긴 할 겁니다. 그렇지만 그만큼 전세계적으로 식문화에 기여한 것 역시 인정을 안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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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 2020.06.15 00:31
    저 같으면 마트에서 먹을 것을 구입할때 원 식재료의 함량을 약간 따져서 물품을 구입하는 성향이 있어 싼것보다는 최대한 식재료가 단순하고 본연의 맛에 충실한 것을 찾게 되더군요.
    그런것은 대체적으로 맛이 약하고 밋밋한 편이지만 본연의 맛을 단순하게 전달되어 더 좋다고 여겨지더군요.

    육수조차 제대로 우린 것들만 봐도 한방에 차이가 나더군요. 멸치보다는 조금 더 큰 고기(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를 더 많이 넣고 고열로 우려낸 육수가 깔끔해서 더 좋지만 다 원가절감과 직결되다보니 전국을 놀러 다닐때 인터넷으로 검색되는 맛집보다는 가급적 평범한 현지인들이 들어가는 식당을 눈여겨 보며 따리 들어가거나 손님들이 많이 찾는 재래식 식당에 가보면 중간 이상은 가는 것 같습니다

    저런 곳은 원 식재료에 최대한 맞춰서 음식을 만드는 경향이 있어 본질의 맛을 제대로 느낄수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음식에서 가성비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 profile
    마커스 2020.06.15 01:31
    본문의 이야기와는 조금 빗겨나간 느낌은 없잖아 있습니다만, 저도 작년 말부터 다시 요리를 본격적으로 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입맛이 고급이 되는 게 느껴지더군요. 덕분에 밖에서 음식을 잘 못 먹고 있습니다. 예외가 되는 정도라면 치킨 스톡 정도인데, 아무래도 만드는 것 자체는 어려울 게 없지만 혼자 살면서 밥해먹기에는 맨날 닭을 구워먹을 게 아닌 이상은 치킨 스톡을 직접 내서 요리하는 것은 무리가 있더군요.
  • profile
    냠냠이 2020.06.15 00:53
    문화적 도용이라니.. 너무 이상한 개념이네요. 이런 걸 주장하는 게 이상할 나름이지요. 다른 이야기지만 중국이 한국브랜드인것마냥 열악한 상품들을 한국제로 속여 파는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건은 기망과 국산이미지 저하의 목적이 있어서 비난받지만 외국인들이 혐한적 의도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비난을 하고자 하는것도 아니고 그냥 자기입맛대로 가공하겠다는 건데 말레이시아 극우정당의 논리도 아니고 말이죠. 저는 문화적 도용이란 단어자체가 마음에 안듭니다. 문화란건 언제든지 전파될수 있는 문명화된 인류가 가진 개념인데... 오용 도용의 개념은 아닌 것같네요. 당장 인류학자가 들으면 비판논문 400장은 나올듯한 개념이라고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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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커스 2020.06.15 01:26
    사실 저도 문화적 도용이라는 개념 ( https://en.wikipedia.org/wiki/Cultural_appropriation ) 자체는 본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굉장히 미국중심적인 개념이 아닌가 의구심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말씀하신 가짜 한류같은 경우도 도덕이 결여된 자본주의가 동기가 된 문화적 도용이라고 할 수는 있겠지만, 일반적으로 이야기되는 문화적 도용의 범주에는 들어가지 않는 느낌이 드네요.

    다만 미국중심적인 만큼 그 문맥을 짚으면 백인 문화와 제국주의적 억압의 역사가 같이 가야 할 것 같은데, 비슷한 느낌으로 과연 우리가 일본 사람들이 김치를 기무치로 변형하여 팔고, 마찬가지로 불고기와 야끼니꾸의 관계나 더 광범위한 차원에서 문화계 전반에 대한 "문화적 도용"을 한다면 그것을 지금처럼 아무래도 좋은 것이 좋은 게 아닌가 하고 넘어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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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쮸쀼쮸쀼 2020.06.15 01:33
    Cultural Appropriation은 보통 [문화적 전유(專有)]라고 번역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더군요.

    굳이 식문화뿐만이 아니라, 문화란 것은 그 특성상 다른 문화와 뒤섞이거나 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제가 예전에 할로윈 문화가 국내에 들어온 것과 관련해 다른 사이트에서 글을 쓰고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나온 결론은 [문화는 흥겨운 사람이 많으면 저절로 퍼진다]는 것이었지요. 실제로 할로윈은 원래 고대 켈트족의 축제에서 비롯되었다고 하지만, 현대 미국의 할로윈 문화는 거기에 가톨릭 문화와 남미의 전통과 미국의 만화가 뒤섞인 코스프레 파티처럼 되었지요. 이렇게 문화가 서로 뒤섞이는 현상은 대개 누군가 의도적으로 조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현대에는 상업 자본이 돈을 벌기 위해서 하는 행위가 여기에 영향을 줄 때도 있지만, 그것 또한 사람들이 호응하지 않으면 금방 식을 뿐이죠. 사람들이 호응하는 문화는 어떤 식으로든 섞이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문화적 전유가 정말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은 단 두 가지 경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그건 바로 [타국의 문화를 함부로 남의 것(대개 자기 것)이라고 왜곡하는 경우]와 [어떤 인구집단(국가, 민족, 인종, 계층, 직업 등)을 조롱하고 깔보기 위해 그들의 문화를 멋대로 왜곡할 때]죠. 첫번째 경우는 일종의 출처 도둑질이자 역사왜곡에 속하므로 명백히 비판받아야 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식품 회사가 자국민의 입맛에 맞는 새로운 김치를 개발하거나 혹은 지금껏 한국 사람들이 한 번도 담궈보지 않은 재료로 오리지널 김치를 만들어서 판매한다고 가정하면 이는 문화 도둑질도 뭣도 아니며 오히려 김치 문화를 널리 퍼트리고 김치의 다양성을 넓히는 시도이니 장려해도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본이 김치의 기원을 한국이 아닌 일본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명백한 역사왜곡이므로 제대로 바로잡는 것이 옮지요. 두번째 경우는 정치적 올바름과 같은 주제와도 연결되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하고 논란의 소지가 있겠습니다만, 저는 기본적으로 [남을 존중하지 않는 무례함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해서는 충분히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러한 경우들이 아니라면 서로 다른 문화가 뒤섞이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막는다고 막아지는 일도 아니므로, 그걸 비판한다는 것 자체가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껴지네요.
  • profile
    마커스 2020.06.15 02:00
    통찰력 있는 답글 감사합니다. 한국어가 제일 어려워요...

    말씀해주신 두 가지의 경우 중 저는 두 번째를 주로 생각하고 글을 썼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사회적 정의의 잣대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에 과연 어디에 선을 그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문,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곳보다 선을 더 극단적인 위치에 긋는 경우에서 제가 느낀 거부감에서 출발한 생각입니다.

    첫번째 경우에 대해서도 우리가 (식)문화와 역사에 대해 모든 것을 알지 못하기에 쉽지많은 않은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가령 다른 댓글에서도 이야기하였던 미국식 까르보나라나 한국식 피자의 경우나, 조금 더 우리나라에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는 김밥과 노리마키의 경우처럼 과연 어디까지가 선의와 좋은 결과이고 어디부터가 왜곡을 위한 왜곡인지 구분하기란 어려운 것 같습니다. 또한 단순히 선의로 시작하여 결과론적으로는 순이익적인 결과를 낳는다고 하더라도, 가령 일본 회사가 김치를 개량하여 판매하고 이것이 단순한 시장성의 논리에 따라 세계적인 주류가 되었을 때에 제 자신에게 물어보았을 때 이것을 감정적인 문제에서 용인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네요. 마찬가지로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하물며 소상공인들 사이에서마저 어떤 문화권 바깥의 사람들이 그 문화를 가지고 돈을 번다면 그것은 그 문화권 내 사람들에게 순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는 것인지도 어려운 물음인 것 같습니다. 결국 근본적으로는 감정의 문제인 듯 하니까요.
  • profile
    쮸쀼쮸쀼 2020.06.15 02:20
    문화가 퍼지는 것도, 문화가 (경제적) 이득이 되는 것도 사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의 뜻대로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는 그걸 의도적으로 시도하는 경우라 해도 마찬가지죠. 예를 들어 이명박 정부 시절에는 국가 차원에서 [한식의 세계화]를 지원했습니다만, 그 성과에 대해서는 비판이 많지요. 외려 뜻밖의 지점에서 뜻밖의 음식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코로나19 시국에 뜬금없이 [부대찌개]가 오리지널 스팸을 만든 미국 호멜사의 홈페이지와 영국 BBC 등을 통해 서구권에 소개되고 있는 것이 그 사례입니다. 어떤 나이 많으신 분들은 부대찌개가 ‘가난하여 못 먹던 시절의 산물’이라 하여 이것이 외국에 소개되는 것에 거부감을 나타내기도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아이러니하기도 하지요. 마찬가지로 특정 문화의 산물로 번 (금전적) 이득이 그 문화권 사람들에게만 온전히 돌아가기를 바라는 것도 지나친 욕심입니다. 단기적이고 금전적인 이득을 좆기 위해 문화를 사용한다는 것은 결국 문화를 하나의 돈벌이 도구로만 보는 근시안적 시각이겠지요. 차라리 문화로 인한 이득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태도가 더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 profile
    마커스 2020.06.15 03:12
    사실 본문을 쓰기 시작했을 때만 하더라도 (식)문화의 전유라는 개념 자체에 대한 비토를 마음에 두고 있었습니다. 결국 문화는 서로 나누고 공유하며 즐기는 것이라는 시각이 위주였으니까요.

    그런데 댓글들을 읽으면서 조금 더 폭을 넓히다 보니 문화의 전유에도 문맥이 있다는 데에 생각이 닿게 되고, 압제자와 압제를 당한/당하는 사람의 위치에 한일관계를 대입하게 되니 왜 문화적 점유를 울부짖는지 - 비록 제삼자로서는 얼핏 비이성적이어 보였지만서도 - 대강 어렴풋이나마 이해가 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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