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이슈적 주제이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순한 맛의 글일 것입니다. 사실 그래서 다른 수상한 어느 곳에 올렸다가 이쪽으로 옮겼어요. 글을 다듬다 보니 굳이 다른 곳에 올리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
문화적 도용(cultural appropriation)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가령 어느 한 문화권의 바깥에서 그 문화권의 요소들을 이해나 배경 없이 남·오용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예를 들자면 미국 원주민의 종교적 상징인 헤드드레스가 일종의 패션 아이템처럼 이용되는 것이나, 힙합 신에서의 흑인 문화 전반에 대한 무분별한 사용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문화적 도용은 인종, 계층, 국가, 문화적 차별과도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는 주제입니다.
최근에 미국 사회 내에 산재하는 시스템화된 인종차별에 대항하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각종 차별에 대한 자타에 대한 반성이 잇닿고 있습니다. 문화적 도용에 대한 우려와 비판이 커진 것도 그 현상의 한 축에 속할 것입니다.
식문화에 대해서도 예외는 아닙니다. 음식의 원형이나 원래의 재료, 그 조리방법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변형을 레시피로서 소개한다던가, 식재료의 유래와 사용에 대한 이해 없는 사용이나, 그 문화권 바깥의 인원이 해당 문화권 음식을 만들어 파는 등이 마찬가지로 비판받고 있습니다. 외국인이 한식을 만든답시고 비빔밥에 아보카도를 넣는다던가, 김치국물을 가지고 블러디 메리를 만든다던가, 갈비찜을 만든답시고 갈비를 먼저 구워 카라멜화를 시키고 야채를 볶은 뒤 레드 와인을 넣어 디글레이징을 하는 등의 이야기입니다.
차별에 대한 반성의 목소리가 나오는 곳이 주로 미국인 데에 반해 저는 토종 한국인입니다. 그렇기에 식문화의 도용이라고 한다면 남의 이야기만은 아니게 될 것이고, 일반적인 시각에서 피해자라고까지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는 의구심 때문에라도 한번쯤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한국의 식문화는 특히 지난 한 세기즈음을 거치면서 매우 빠르게, 그리고 매우 크게 바뀌어 왔습니다. 그 중에서는 좋은 방향으로의 발전도 있을 것이고, 반대 방향으로의 퇴보도 있을 것이며, 국내뿐만 아니라 국외에서 온 영향도 상당 비중을 차지합니다. 육수나 채수를 내는 것보다는 다시다와 미원, 설탕 등을 사용하는 것이 당연해졌고, 최근으로 가자면 수많은 음식에 모짜렐라 치즈 (내지 모조 치즈) 를 끼얹기 시작한 지도 얼마 안 됩니다. 음식의 유행의 주기도 매우 짧아서, 혜성같이 등장했다가 팍 식어버린 불닭의 유행이나 어느 순간 대중화된 매운닭발 등의 예도 있습니다.
이처럼 한국의 식문화는 실시간으로 해체와 재구성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원인으로는 바쁜 생활 속 가정식보다는 저렴한 외식이 보편화된 것이나, 초경쟁적 사회에서의 유행 선점을 위한 끊임없는 탐구와 개발 등을 꼽을 수 있일 것입니다. 그런 현실이 있기 때문에라도 이러한 "식문화의 도용"에 대한 비판에 제가 쉬이 공감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미국인중심적인 사고라는 인식마저 지울 수가 없습니다.
물론 이러한 문화적 도용에 대한 비판이 국내에서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외국인이 한식을 만든답시고 상상도 못한 재료를 넣는다던가, 한국인이 보기에는 한식같지 않아 보이는 음식을 만들어 놓고 한식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는 모습에 대해 혀를 내두르는 사람들을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국내적으로도 요리에 대한 쉬운 길을 알려주는 백종원과 같은 사람들에 대한 비판이 있었습니다. 한식의 원래 형태를 훼손시키고 조미료의 사용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한다는 것입니다.
아실 분은 아시겠지만 망치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요리 유튜브 채널이 있습니다. 미주 한국인 이민자분이 뉴욕 시 한복판에서 운영하는 한식 전문 채널입니다. 이 분께서 제가 본 것 중에 가장 전통적인 한식을 하는 축에 속한다는 점에서 이미 한식의 정통성이나 식문화의 도용에 대한 부당함을 부르짖기보다 다시 한번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결국 음식은 먹어서 배가 부르고 맛이 있으면 되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변화해나가며 발전하는 것이 식문화의 본질이 아닐까요.
이걸 굳이 글로 써 올리는 것은 이러한 한식 식문화의 오남용에 대한 다른 분들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단계에서 위 내용은 아무리 장황하게 늘어놓아봐야 제 의견이고 생각일 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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