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만 해도 랜덤 액세스 메모리와 롬에는 자기 코어 메모리가 자주 사용되었습니다. 자기로 뭔가를 기록한다는 것은 100년이 다 되어가는 개념인데, 이게 컴퓨터에도 빠질 수가 없지요. 코어 하나가 1비트고, 한번 읽으면 정보가 날아가서 다시 써야 하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습니다.
보조 기억 장치로는 테이프가 활용되었습니다. 용량도 크고, 예전부터 써 와서 신뢰성이 있었지만 기계적으로 작동되는 부분이 있다는 것은 진동이나 먼지가 항상 존재하는 러기드 시스템 같은 곳에 활용되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나마 테이프 같은 경우는 비행기 콕핏 보이스 레코더나 우주 탐사선에도 활용이 되었었지만,
70년대에도 비행기들은 여전히 포일을 긁어서 기록하는 비행기록장치를 사용하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
컴퓨터의 롬으로는 뭔가 좀 용량이 크고 안정성이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습니다. Andrew Bobeck은 벨 연구소에 들어온 후에 이런 저런 연구를 하며, 버블 메모리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 여러 특성들을 발견했고, 짬이 좀 생겼을 때인 70년대 초 버블 메모리 개발에 성공합니다.
먼저, 자기 버블은 자기 막에 존재해야 합니다. 결정축이 모두 같은(epitaxial) 결정질의, 자성을 가진 필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필름과 겹쳐 자기 버블의 생성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로는 오소페라이트같은 것들이 있었지만, 물리적 성질이 거의 같은 완벽한 것은 gadolinium gallium garnet(Gd3Ga2(GaO4)3)이라는 합성 물질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개의 필름을 겹쳐 자기 버블이 생길 수 있는 필드를 만들 수 있습니다.
아무런 자기장이 가해지지 않았을 때 이 필드는 면의 수직 방향으로의 자기장을 갖는데, 필름에 들어가는 방향, 또는 나오는 방향의 자기장이 띠 모양으로 형성됩니다. 이때 총합이 0이 되도록, 나가는 방향의 자기장과 들어오는 방향의 자기장의 면적은 같습니다.
그런데, 강한 자성체를(영구자석)을 들이대면 자성체에 의해 생성된 필름을 통과하는 외부 자기장 방향과 같은 자기장 방향을 가지는 영역의 넓이는 넓어지고, 그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갖는 영역은 쪼그라들어서 마치 거품과 같은 형상을 갖습니다.
이것은 패러데이 효과에 의해 현미경으로 관찰할 수 있습니다.
이 거품들은 임의의 점 영역에서 외부 자기장 방향의 힘을 훨씬 강화시킴으로써 제거할 수 있고, 외부 자기장 방향과 반대 방향의 자기장을 가하면 생성할 수 있습니다.
gadolinium gallium garnet을 사용함으로 얻을 수 있는 또 하나의 특징은, 이 버블들이 꽤 넓은 온도 범위에서 안정적이고, 2차원 영역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버블은 1비트의 데이터를 나타낼 수 있으므로 잘 컨트롤한다면 정보를 저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해결책은 이 필름에 작은 자기 막대 패턴을 각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외부 자기장을 유지한 채 그냥 두면 외부 자기장 방향과 반대인 자기 버블들은 플레인 위에 그냥 있게 됩니다. 그러나 약한 자석과 비슷한 이 패턴은 이 버블들이 이 패턴에 붙어 있게 합니다. 자석에 못을 갖다대면 붙듯, 자기 버블들을 붙여두는 역할을 합니다.
이 T혹은 V모양의 패턴에 달라붙은 버블들은 X축과 Y축의 외부 코일에 전류를 흘러주면 드디어 움직일 수 있게 됩니다. 위의 사진처럼 필름에 수평 방향으로 감긴 코일에 X축 Y축 각각에 위상이 다른 교류 전류를 흘리면 자기장이 한 바퀴 반시계 방향으로 돌아가며 형성되고, 여기 맞춰 자기 버블이 이동합니다.
이 자기 버블을 잡아두는 T나 V패턴은 이어져 있지 않고 떨어져 있는데, 트랙이 연속적이지 않게 배치함으로 한 칸당 1비트의 정보를 담을 수 있게 합니다. 만약 패턴이 이어져 있었다면 자기 버블의 이동 속도에 따라 간격이 달라지고, 이는 데이터가 달라질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자기 헤드에 많이 쓰이는 permalloy로 만든 디텍터를 사용하면 이 자기 버블이 유도 전류를 만들어 디텍터에 미세한 전류를 흘리고, 우리는 이것을 드디어 데이터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자기 버블은 사진과 같이 필름에서 원형의 자기장 영역을 갖고, 센서는 이것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기계적 구동이 필요하지 않고, 안정적이고(코나미 사례는 나중에 다룰 예정), 용량도 큰 저장 장치가 완성이 된 겁니다.
https://www.gsalmasi.com/almasiconsulting/bubbles/images/sensor17feb19.mp4
여기서 어떻게 감지가 이루어지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을 한 패키지에 집어넣으면 이런 모양이 되는 것입니다.
n부라 언제 연재 종료될지 모릅니다 -_-
다 쓰면 포럼에 몰아서 다시 올릴게요.
일단 자기 버블의 생성-작동 원리-코나미 버블 시스템 이정도로 생각중입니다.
딴 이야기인데, 1990년대 후반 이후 항공기의 블랙박스는 CVR 또한 기록매체로 일종의 SSD를 사용하는 모양이더군요. 아예 CVR과 FDR을 하나로 합친 CVDR이라는 식으로 되어 있기도 하는 모양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