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봤는데 글을 올리지 않았던 것들 몰아서 올립니다.
알리타: 배틀 엔젤
원작인 총몽을 보긴 했는데 결말이 어땠는지 기억도 안 납니다. 사실 총몽이 원작인지도 가물가물 합니다. 그냥 영화 보다가 아 맞아 저런 애가 있었지 기억나는 정도. 그러니까 원작하곤 상관 없이, 영화 그 자체만 놓고 평가합니다.
비주얼은 백점 만점에 90점은 주겠군요. 중국이나 일본의 판타지/SF 영화처럼 정말 심각하게 어색한거 아니면 그런갑다 하고 보는 편이거든요. 그래픽이 뭐가 어떻게 대단한지는 모르겠지만, 뭐가 이상한지 하나도 느끼지 못했으니까 대단한 건 맞는 듯 합니다.
주인공 눈이 너무 크다는 지적이 있는데 맞는 말입니다. 눈알 괴물이 등장하는 매체는 참 많지만 유독 알리타만 지적하는 이유는, 영화에 등장하는 수많은 등장 인물 중에서 오직 알리타만 눈이 크거든요. 인간도, 반쯤 로봇-혹은 반쯤 인간도 나오는 영화인데 알리타같은 캐릭터는 오직 하나 뿐이에요. 혼자만 그렇게 생겼으니 거슬릴 수밖에.
로봇과 인간의 경계를 나누는 게 무의미해 보이는 세계관이고, 팔다리 바꿔치기 정도는 정말 대수롭지 않게 나오는데, 이런 분위기에서 로봇인지 인간인지 둘 사이의 관계가 어떤지 정체성은 무엇인지 등등 SF 장르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고민은 하나도 나오지 않아요. 그런 상황에서 주인공이 심장 갈라 보여주기 쑈를 하고 있으니 그냥 뜬금 없네요.
이 영화에 스토리나 개연성이 있다면 그건 북한 민주주의에 준하는 수준일 겁니다. 영화에선 계속해서 많은 것들 보여주고 쉬지 않고 시간이 흘러가지만, 그 템포가 너무 지나쳐서 피곤합니다. 영화 초반에 주인공을 구해서 위험하니까 나가지 말라고 하는데까지 영화 안 시간으로 고작 하루인가 이틀인가 그래요. 엄청 쌘 안드로이드라서 막 내놓고 키우나봐요.
나중에는 막 괴물같은 로봇도 뚜까패는 주인공이 초반에는 누가 봐도 조기 사망할것 같은(그리고 나중엔 우리 편이 될것처럼 생긴) 흑인 조연의 시기어린 바디 체크에 맞아서 데굴데굴 굴러가지요. 저 흑인 캐릭터도 뜯어보면 로봇일지 몰라요. 그렇지 않고서야 밀도나 충격이나 통각 체계를 무시하고서 안드로이드랑 몸싸움해서 이긴다는게 말이 되는건가.
그 외에도 스토리와 개연성에서 지적할게 참 많았는데... 요새는 좋은 것만 기억하고 살기로 마음먹은지라 다 까먹었어요. 영화 2회차를 돌리며 키보드를 준비해 준다면 어지간한 리뷰 수준의 분량은 채울 수 있을 것 같은데, 영화 러닝타임 동안 괴로웠으면 됐지 그 괴로움을 또 겪을 필요는 없겠죠.
거기에 배경음악은 시도때도없이 등장하는 수준을 넘어 쉬지 않고 쿵쾅쿵쾅거렸는데 중간에 뚝 끊기고 다른 걸로 바뀌는군요. 도대체 누가 음악을 맡았길래 이모양인가 했더니만 매드 맥스: 분노의 도로... 아니 이런 사람을 데려다가 겨우 이런 식으로밖에 못 만들어요? 편집을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끔찍한 결과가?
영화 시간은 한정됐는데 그 안에 자기가 원하는 걸 다 담고야 말겠다는 감독의 욕심 말고는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네요. 보면서 지겨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 돈 많고 능력 좋은 성공한 덕후가, 자기가 원하는 덕질을 하는 것까진 좋아요. 그런데 그걸 왜 내가 돈 내고 봐야 하는걸까요?
제임스 카메론 감독(비록 연출은 안했지만 각본, 제작 등에서 많은 영향력을 줬으니)은 트루 라이즈까지는 참 재밌게 봤는데 그 뒤는 글쎄요.. 솔직히 아바타도 저게 왜 대박이 난건지 도대체 모르겠거든요. 감독이 성공을 거듭할수록 브레이크를 걸만한 장치가 사라지는 건가, 아니면 너무 얽힌게 많아서 이런 결과가 나오는 건지는 모르겠군요.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
영화를 다 본 후. 이런 영화를 예전에 봤었는데 그거 제목이 뭐더라.. 곡성,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 그래비티. 셋 중 하나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초자연적 존재, 대충 망해가는 세계, 우주 재난물,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인 범죄물 영화의 어디에 공통점이 있냐고요? 관객에게 쉴 틈을 주지 않는다는 점에서 똑같습니다.
솔직히 이것도 개연성 없기로는 알리타와 별반 다를 게 없어요. 근데 개연성을 따지자면 위에서 언급한 다른 영화들도 막 엄청나게 말이 되는 건 아닙니다. 그 뚝뚝 끊기는 개연성을 영화에서 설명하려 하면 구차해지는거고, 그냥 자연스럽게 보여주면 납득하고 넘어가는 겁니다. 아 저 캐릭터는 원래 저런 사람인갑다, 저 세계는 원래 저런갑다 생각하도록 만들면 되죠.
알리타는 왜 마음에 안 드는지에 대해 설명을 하다보니 길어졌는데, 이건 제 인생영화 급이라서 오히려 쓸 말이 없네요. 스릴러 영화 중에 피칠갑만 잔뜩 하고 괴물과 귀신이 깜짝 등장하는 걸로 러닝티임의 1/3을 채우는 쓰레기가 많은데, 진정한 스릴러는 사람을 '놀라게'하는 게 아니라 '긴장감을 유지'하는 겁니다.
꼭 보세요. 그리고 마음에 안든다면 낄낄 저거 영알못이네 하세요. 그런데 알만한 분들은 다 아는 명작이라 그럴 일은 없을듯.
시카리오: 데이 오브 솔다도
명작 스릴러 영화에서 잘 구축된 주연 캐릭터를 빼와서 평범한 범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그게 끝. 두 주인공이 워낙 잘 만들어진 캐릭터고, 주연 배우들이 연기를 잘 하다보니 그것만으로도 볼만한 영화는 맞습니다만. 전작의 그 찝찝한 긴장감은 온데간데 없고 그냥 멋진 캐릭터들이 총쏘는 평범한 영화가 되버렸어요. 감독이 바뀌었으니 어쩔 수 없겠죠.
흔해빠진 명절 특선 영화 수준인데, 그래도 알리타보다는 나은것 같아요. 별로 추천은 못하겠지만... 그냥 멋진 중년들이 나오는거 보는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일단 여기서 '페이버릿'은 즐겨찾기..가 아니라 '총애하는 신하'라는 뜻입니다. 영화 내용에 참 잘 맞는 제목인데, 한국어로 번역하면 좀 애매해지니 '여왕의 여자'라고 붙였군요. 충분히 이해되는 결정입니다.
궁전과 왕실의 멋진 인테리어에 혹해서 마누라가 보자고 했는데, 그런 화려함보다는 인간관계가 돋보이는 영화입니다. 사실 이 영화는 뭘 찾아보려 해도 나와있는 정보가 전혀 없어서.. 이런 영화인지 모르고 봤어요. 영화제에서 상을 꽤 많이 탔던데 그게 납득이 되는 영화입니다.
영화 안에서 쓸모없는 장면이 단 하나도 없어요. 그냥 그랬구나~ 하고 넘어가도, 나중에는 다른 의미를 담고 다시 나옵니다. 예를 들면 여자 주인공이 넘어지는 장면이 한 3번인가 나오는데, 시골에서 도시로 올라오면서 타락하게 되고, 정계에 발을 딛으면서 사람이 변하고, 주인 뒷통수를 치게 된다는 암시라고 해석할만 하지요. 이런 게 엄청 많이 나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암시하는 캐릭터들의 역할과 위치도 그렇고요.
이것도 2, 3번 돌려보면서 필기하면 그런 영화적인 장치를 잔뜩 발견할 수 있겠는데, 그건 덕후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잘 만든 영화임은 절대적으로 분명한데 스토리나 전체적인 분위기가 딱히 제 취향은 아니라서 다시 보긴 귀찮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