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새벽에 자는 글러먹은 생활로 돌아가나 싶었더니만, 아침 6시 반에 전화가 오네요. 1층 할머니입니다. 화장실 수도꼭지가 안 잠겨서 물이 계속 쏟아진데요. 내려가보니 벽에 달린 샤워기/냉온수 수전에서 정말 물을 토해내고 있습니다. 밸브를 내려도 물은 그대로 나오고요. 차라리 이러면 간단하죠. 이 수전만 바꾸면 되니까요.
일단 집의 상수도를 다 잠궈두고 여기저기 찾아보니, 버스로 3정거장 쯤 떨어진 자재 가게가 7시부터 문을 엽니다. 7시 되길 기다려서 전화해 문 연거랑, 욕실 수전이 있다는 걸 확인하고 출발, 사 와서 바꿔 달았죠. 테프론 테이프도 있고 스패너도 있고 그냥 풀어서 바꾸고 조이기만 하면 되는데 뭐 복잡할게 있을리가 없잖아요?
그런데 좀 있으니 다시 할머니가 전화를 하시네요. 물이 샌다고요. 내려가 보니 정말 물이 찔끔찔끔 나오고 있습니다. 다시 수도를 싹 잠그고 수전을 풀어서 조이고 잠그고 수도를 열고 확인하고 물이 새니 또 풀고 잠그고의 무한반복을 하고 있으려니 이젠 조여도 안 잠기고 계속 돌아가고 벽 안에 있는 파이프도 함께 돌아가고 헛돌고 내 멘탈도 같이 돌아가네요.
도저히 안되겠어서 9시에 집 바로 옆에 있는 설비 업자 아저씨한테 전화를 했더니 30분 후에 오시네요. 이 아저씨는 작년 초에 옥상 수도가 터졌을 때 불렀던 적이 있거든요. 이 분도 오셔서 보시더니 안에 파이프가 헛돈다며 재수가 없으면 벽을 다 까야 한다던가 엘보가 깨졌을 수도 있다 등등등의 무서운 말씀을 하시네요.
다행이도 수도 관을 막고 물을 틀어보니 물은 안 새고, 다시 달고 나니 그 후로는 안 새네요. 패킹-이 설비 아저씨는 빠킹이라고 하셔서 몹시 욕 같았어요-이 빠졌던가 찌그러졌던가 했던걸로...
이영도 작가님이 소설 후기에서, 왕년의 경험을 살려 컴퓨터 먼지 청소를 했는데 컴퓨터가 고장나서 사람을 불렀더니 다 고치고 나서 '컴퓨터에 먼지만 치웠다'라는 말을 하더라...는 대목이 생각나는군요.
이제는 졸린 수준을 넘어서 아무런 생각도 안 드는데 이대로 버틸 수 있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