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도 조커도 오징어게임도 아직까지 못 본 사람입니다. 그런데 1917은 언젠가 채널을 돌리다가 잠깐 보고나서 이런 명작이?! 하고 벼르고 있다가 오늘에서야 겨우 다 봤습니다. 네. 명작 맞네요. 영화가 아니라 단편 영상도 집중력이 떨어져서 몸을 이리저리 베베 꼬며 일시정지를 수없이 반복하면서 보는데, 이건 음료수 가지러 갈 때 빼고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간단하기 그지없습니다. 1차 세계 대전에서 위험한 임무를 받아서 그걸 수행한다. 다른 식으로 봐도 아주 단순합니다. 참호를 뚫고 적이 점령한 지역을 지나 아군 기지까지 간다. 그리고 잘 만든 미디어가 늘 그렇듯, 이런 스토리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그 단순한 이야기를 어떻게 연출하느냐에 달려 있지요.
1917은 그걸 쉬지않고 한 번에, 그리고 극명한 대비로 풀어 냈습니다. 1917의 영상에서 가장 놀라운 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끊어지는 부분이 없고 주욱 이어지는 것처럼 보인다는 겁니다. 물론 중간에 끊기는 했겠죠. 하지만 그걸 아주 자연스럽게 이어냈습니다. 이건 단순한 촬영 기법의 문제가 아니라, 영상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인물만을 쫒으며 영화가 진행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화면 전환도 없고, 등장 인물이 바뀌지도 않고, 시간과 장소가 완전히 바뀌지도 않고(이건 좀 애매하지만) 한 사람에게만 집중됩니다. 그래서 몰입감이 쩔어요. 이런 느낌을 주는 영화는 그래비티 이후 처음이네요.
한편으로는 영화의 분위기가 180도로 바뀌는 지점이 몇 군데 있습니다. 영상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지지만, 특정한 사건을 계기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배경, 배경의 색상, 배경에서 일어지는 사건들, 사건이 일어나는 시간대, 그리고 배경 음악이 크게 달라집니다. 개인적으로는 색상이 바뀌는 게 참 인상적이더라고요. 처음 영화가 시작했을 때의 우중충한 참호화 마지막의 모래밭 같은 참호, 그리고 중간에 나오는 풀밭이나 숲, 폐허가 된 도시에서 나오는 색은 다를 수밖에 없겠죠. 그리고 그 지극히 당연한 변화로 분위기 자체를 바꿔버립니다.
전쟁 영화 하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만 나오던 시대도 이제 끝날 때가 됐지요. 개인적으로는 전쟁 영화라는 범위 안에서는 덩케르크보다도 더 좋았다고 말하겠습니다. 그냥 영화 전체로 봐도 명작이니까 안 보신 분들은 꼭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