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제가 어렸을 때 궁금하던 주제였습니다. 마침 노트북 충전기 때문에 찌릿찌릿하다는 글이 나온 김에, 이 주제에 대해서 조금 풀어보려 합니다.
위험한 전기라 하면 고전압을 먼저 떠올리게 됩니다. 1.5V 건전지는 만져도 별 느낌이 없고, 12V는 조금 찌릿하고, 220V에서는 심각한 감전을 당하고, 전신주나 송전탑, 번개 정도의 초고압이라면 살아남은 것이 다행일 것입니다. 따라서 전압이 높을수록 위험하다... 라는 생각을 하나 도출해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전기를 공부하셨거나 산업안전 교육을 받은 분들이라면 감전 사고를 다룰 때 전압이 아닌 전류에 대해 나타낸 이런 그림을 보셨을 것입니다.
그림과 같이 감전이 인체에 끼치는 주된 영향은 인체를 흐르는 전류량에 달려 있습니다.
더 나아가기 전에, 여기서 더 깊은 의문을 가져 봅시다. 전압이건 전류건 아무튼, 전기는 왜 사람을 해치는 것일까요?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생물 수업때 배운 내용을 다시 쓰면 이러합니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의 근육은 신경에 의해서 전기적으로 조절됩니다. 1) 뇌에서 어떤 명령을 내리면 신경을 타고 전기 신호가 전달되며 2) 그 신호를 받아서 근육이 움직이기 때문에 우리가 숨을 쉬고 손가락을 움직여서 키보드를 누르는 등의 움직임을 할 수 있게 합니다. 3) 또한 신경은 촉각, 통각과 같은 여러 감각을 뇌로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컴퓨터에서 전기 신호로 여러 기기들이 통신을 하는 것과도 비슷합니다.
때문에 외부에서 들어온 전기가 자체적인 신경 신호를 방해하는 가짜 신호를 만들어서 몸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감전 효과를 일으킵니다.
둘째로, 저항을 통해 흐르는 전기는 열을 발생시킵니다. 따라서 신체에 아주 강한 전기가 흐르면 여기서 오는 발열이 신체를 말 그대로 구워버리게 됩니다. 이 경우는 화상을 발생시킵니다.
첫째에 초점을 두어 설명하겠습니다.
외부에서 약한 전류가 전달되는 경우라면 촉각이나 통각 신경을 대신 자극하여 따갑고 찌릿한 느낌을 만들어 냅니다. 그리고 전류가 흐르는 경로에 있는 근육들도 자극되어, 근육이 순간적으로 떨리거나 딱딱하게 굳는 움직임을 만듭니다. (저도 220V를 만지면서 경험해 보아서 잘 알게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강한 전류가 심장을 통과한다면 대단히 위험합니다. 왜냐면 심장도 근육이며 규칙적인 전기 신호로 조절되기 때문입니다. 심장의 신호는 잠시라도 끊겨서는 안 되기에 여러 백업 신호 메커니즘이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심장을 잘라서 식염수에 담궈 놓아도 자체적으로 신경 신호를 일으켜서 심장은 일정 시간 동안 계속 뜁니다.
문제는 외부의 강한 전류는 심장 근육들이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리듬을 완전히 깨트린다는 것에 있습니다. (심장은 단순히 디지털같이 0, 1과 같은 신호로 동시에 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근육들이 규칙적인 심박 단계를 가집니다) 그래서 한번 강력한 외부 전류가 지나간 뒤에는 마치 100명이 노를 저어야 하는데 다들 전혀 박자가 맞지 않는 것과 같은 상황이 됩니다. 근육들이 규칙적인 운동을 하려는 성질은 있으나, 심장 전체를 조율할 지휘자가 없어서 제각기 뜁니다. 이렇게 되면 심장은 파르르 떨리게 됩니다. (이를 세동이라고 부릅니다. 심장 질환의 응급처치에 쓰이는 제세동기AED가 이 심실/심방 세동을 원래의 규칙적인 신호로 리셋해주는 전기적 지휘자의 역할을 합니다.)
이처럼 사람을 감전시키는 것은 전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더 깊은 의문을 갖고 다른 관점에서 본다면 어떨까요?
생물 시간을 다시 떠올리면 신경은 다음과 같이 작동함을 배웠습니다.
신경과 신경이 전기로 신호를 전달한다고 하였는데, 근본적으로 이는 전위차, 즉 전압 레벨에 의해 활성화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뇌가 근육을 움직일 때도 일정 문턱 이상의 전압이 필요합니다. 즉 앞서 설명한 감전의 메커니즘, 신경과 근육의 자극을 일으키려면 각각의 세포에 문턱 이상의 전압이 공급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세포 수준의 관점에서 사람을 감전시키는 것은 전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 앞으로의 일부 내용은 옴의 법칙, 저항의 직렬/병렬 연결, 비저항과 전류밀도, 전기장의 개념을 모른 채로 읽으면 다소 이해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잘 모르겠다면 관련 키워드로 검색하여 공부하시는 것을 권합니다.
그러면 왜 많은 전기 및 산업안전 자료에서는 전류를 기준으로 할까요? 각각의 세포 내부에 흐르는 전위차를 논하기 위하여 인체 특정 조직에 흐르는 전류밀도와 비저항으로부터 계산하는 것보다, I = V/R 이라는 간단한 수식으로부터 높은 전압 혹은 낮은 저항 -> 높은 전류 -> 감전 으로 이해하는 것이 산업적 교육 측면에서 훨씬 직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두 관점을 모두 살펴 보았으므로 이제 우리는 감전이란 현상을 다양한 근거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 왜 젖은 손으로 전극을 만지면 위험한가?
: 인체를 모식화 하자면, 각기 다른 저항을 갖는 피부 - 체내 장기 - 피부 셋이 연결된 회로로 볼 수 있습니다. 마른 피부는 저항이 대단히 높은 반면 젖은 피부는 저항이 낮습니다. 따라서
1) 마른 손으로 만질 때는 총 저항이 커서 전류가 낮아서 감전 위험이 낮고, 젖은 손으로 만질 때는 같은 전압이라도 저항이 낮으므로 I = V/R에 의해 큰 전류가 커서 감전 위험이 높습니다.
2) 마른 손으로 만질 때는 저항이 큰 피부에 대부분의 전압이 직렬 분배됩니다. 따라서 신체 내부 장기에 분배되는 전압이 낮아 감전 위험이 낮고, 젖은 손으로 만질 때는 신체 내부에 대부분의 전압이 분배되어 감전 위험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 왜 양 손으로, 혹은 머리에서 다리로 전류가 흐르는 감전이 특히 위험한가?
: 인체 내부를 여러 저항을 가진 부분으로 보자면, 한 손의 두 손가락으로 전극을 만졌을 때 대부분의 전류밀도는 손 안에 국한된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인체를 수많은 '미니 큐브 저항 덩어리'가 직/병렬로 연결된 물체라고 생각해 보십시요) 따라서 대부분의 영향은 손 근육의 격렬한 움직임으로 나타나고, 심장에 흐르는 전류/전압은 낮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아있는 것이죠) 반대로 심장을 통과하는 전류는 생명에 큰 영향을 줍니다.
- 그러면 왜 정전기는 수천~수만V 라는데 죽지 않는 것이지?
: 정전기로 발생되는 전압은 높습니다. 그런데 많은 과학 교양서나 뉴스에서 정전기는 "전류가 낮기 때문에 안전하다" 라고 설명을 뭉갭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여기서도 V = IR 아냐??) 무엇이 다른 것일까요?
제대로 된 설명은, 정전기는 아주 순간적으로 지속되며 우리 몸은 어느 정도의 정전용량(캐패시턴스)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체내에 흐르는 전류가 낮다는 것입니다.
기글 회원분들이라면 캐패시터나 서지 프로텍터의 역할은 아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순간적으로 전기가 끊기거나 출렁여도 캐패시터는 이 변화를 효율적으로 흡수하고, 건물에 번개가 쳐서 엄청난 전압이 유입되어도 서지 프로텍터는 이걸 흡수해내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예 지속된 정전 상태나 지속적인 초고압을 버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전기의 짧고 강렬한 '스파이크'를 넓고 완만한 허용 가능한 자극으로 낮춰 주는 것이죠. 헬멧이나 에어백이 있는 충돌과 맨 뚝배기로 받는 충돌과도 아주 유사합니다.
정전기는 아주 순간적으로만 유지되는 전압입니다. 전하가 다 이동하면 끝나죠. 그래서 분명 우리 몸이 높은 전압을 받는 것은 맞으나, 전압의 상당수는 피부로 분배되거니와, 우리 몸이 가지는 캐패시턴스 때문에 실제 내부 장기로는 정전기가 유지되는 시간보다 훨씬 길게 지연된 약한 전압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위에서 기술한 감전의 효과를 받지 않는 것이죠.
이 효과는 작은 생물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전기 파리채에 손을 넣어도 좀 아프고 말지만 (저는 해 봤습니다. 여러분은 하지 마세요. 위험한 경우가 있습니다.) 작은 곤충은 몸의 캐패시턴스도 훨씬 작거니와 몸 자체가 작아서 같은 전류가 흘러도 내부에 흐르는 전류밀도의 관점에서는 훨씬 높습니다. 그래서 전기 파리채로 작은 곤충들을 살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가 십년 넘게 의문에 의문을 거쳐 찾아낸... 답들을 적어 보았습니다. 어떻게든 다른 분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식을 널리 퍼트리는 것이 이 글의 목적이므로 어디에 퍼나르건 상업적이지만 않으면 환영입니다.
사족으로, 제가 그렇게 옛날 사람은 아니지만, 이 의문을 가졌을 때에는 스마트폰이란 것이 없었고 국내 인터넷 커뮤니티는 크지 않았으며 영어를 잘 못 했기에, 뭔가가 궁금하면 도서관에 가서 뭔가 관련있을 책을 닥치는 대로 빌려 읽는 것이 최선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어린 사람들을 포함해 모두에게 지식을 배우기에 정말 좋은 시대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Df2nhfxVz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