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찍는 영화가 있어 여러 기법을 공부하는데 1회차에서 보이지 않던 것이 2회차에서 많이 보입니다.
한국어였다면 이해가 좀 더 쉬울텐데 일본어라 대사 파악이 어렵다는 점이 혹평을 더 키운 느낌을 받았습니다.
편집장이 주인공을 부를 때 호칭이 변한다거나, 소년과 어른의 관계와 그 사이에 있는 총 또는 청년의 역할과 입지, 얼핏 보면 모호하지만 다시보면 그 행동의 실마리가 보이는 등의 디테일 있는 영화였습니다.
예를 들어 어른이 되면 우선순서가 바뀌지 않는다는 편집장 대사를 먼저 제시한 후 그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청년 스가의 대화가 제시되어 있는데, 기존의 대사 진행 후 요약 방식을 자연스럽게 뒤집는 서술 방식이죠. 이런 디테일함이 영화 곳곳에 숨겨져있어 찾는 재미가 있었습니다. 너의 이름은이 외면적으로 성장했다면, 이번 날씨의 아이는 주인공-도쿄, 인물-인물, 소년-어른, 소년-자연 등 다양한 관계 덕분에 이번작은 내적으로 많이 성장했다고 생각합니다. 놀랍게도 이런 관계는 항상 대립하지도 우호적이지도 않습니다. 그저 자연스러운 다자간의 상호작용을 다뤘다는 점에서 확실히 전작과 다르구나.. 하는 생각입니다.
그 때문에 이런 디테일을 캐치하지 못하면 평작 또는 전작에 비해 졸작이라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영화 전체가 다자간 관계 덩어리입니다.
가장 많이 받는 비난이 유치하다는 점인데요. 주인공에 집중하니 그렇게 느끼는 겁니다. 야쿠자가 경찰에 잡힐 때 착각하여 다른 건수를 말해도 그냥 넘어가거나, 상경 초기의 주인공의 처우, 주인공이 생각하는 치기 등.
소년(더 나아가 청년) 행동에 대해 어른(사회)의 반응은 유치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일본 특유의 돌려서 표현하는 방식에 익숙치 않아 표면 속 의미를 놓치는 대사가 많습니다. 1회차에 본 얼척없는 오토바이 추격씬은, 주인공이 경찰서에 있다는 말을 들은 스가가 경찰서 가는 길에 주인공을 맞닥뜨리는 설정으로 넘어가 '줄 수' 있습니다. 개연성은 개인의 몫이지만 대사와 행동 하나하나는 전부 감독이 의도한 것이죠. 예를 들어 오토바이 추격씬 전에 자전거가 잠겨져 타지 못 한 건 불행이 아닌 사회의 제약으로 해석해야 좋습니다.
무엇보다도 21세기 과학시대에 샤먼의 개념을 적극 차용하여, 샤먼의 희생이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생각한 감독의 상상을 수려한 장면들로 느낄 수 있어 정말 좋았습니다. 결과적으로 한 사람의 희생을 바라는 전근대 사고방식과 현 시대는 크게 다르지 않게 나왔습니다. 다만 현대는 국가가 만들어 준 완충지대가 있기에 구전되는 비극이야기와 다른 결말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심지어 그걸 전근대시대와 같이 노랫가락으로 승화시켰죠. 이 얼마나 재밌는 발상인가요!
결론적으로 이번 영화는 최소 '자막을 보지 않고' 디테일-영화기법-에 집중해야 그 진가가 드러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저 작화 좋은 평작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습니다. 유치하잖아요?
지하철에서 작성하니 표현이 부실합니다. 이해 안 되거나 궁금한 내용이 있다면 서로 풀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