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커는 아직까지 2인자였던 황금기 시절.
미국에서 만년필을 처음 생산하다가 연이은 경쟁력 저하로 인해 황혼기에 만들었던 워터맨의 100년 펜과, 셀룰로이드와 라이프타임 보증을 내세워 워터맨의 왕좌를 빼앗아 승승장구하던 쉐퍼의 라이프타임 만년필입니다. 이름과 다르게 쉐퍼는 100년 전 펜이고, 워터맨은 80년 전 펜이긴 합니다.
그렇기에 쉐퍼가 시작한 무기한 보증은 워터맨의 100년 펜을 기점으로 끝을 내리게 됩니다. 미 정부가 금지하여 후에 엠블럼이라는 이름으로 바꿔서 생산하거든요. 그런데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얀 점 달아서 중국제 볼펜에도 평생 보증을 붙이는 쉐퍼를 보면 참 대단하다면 대단하다 해야할 지..
실제로 써보면 워터맨은 IDEAL이라는 문구와 어울리는 부드럽고 파우더같은 필감입니다. 쉐퍼의 페더터치가 감히 비할 바가 못 되네요. 그래서 실용적이고 튼튼한 것을 선호하는 미국과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현 쉐퍼는 영 정신을 못 차린 모습이고, 오히려 워터맨이 프랑스에서 꿋꿋하게 생산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파커도 프랑스 생산이죠.
이후 워터맨은 100년 펜에서 데미를 장식하고 모든 기력을 소진하여 분점이 있던 프랑스로 이동합니다.
현재 판매되는 워터맨 만년필은 전부 프랑스 워터맨 시절 특성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습니다.
이후 쉐퍼는 치고 올라오는 파커에 대응하기 위해 다양한 매커니즘을 고안하나, 지나치게 정밀한 설계로 인해 단순하고 재미없는(실용적인) 파커가 통일하게 됩니다. 심지어 이때는 에버샤프도 파커에게 피인수 된 상태라 시장 자체가 지루해졌습니다. 에버샤프의 디자이너 중 한 명이 파커의 명작들을 디자인했다는 사실도 알면 재밌는 요소죠.
이후 파커의 대표작인 51은 지극히 실용적이고 기능적이기 때문에 재미 요소가 거의 없는데, 이는 당시 미국 만년필 시장 상황을 짐작케 합니다. 사실 파커의 디자인은 간결하다면 간결했지 화려하다는 느낌은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에버샤프 심포니의 대량생산 버전으로 생각합니다.
미국이 이렇게 지루한 양산품들을 생산할 때, 독일은 30년대에 펠리칸 100이라는 전무후무한 전설적인 만년필을 탄생시킵니다.
현재는 유럽제 만년필도 사라지는 시대라 몽블랑 말고는 다들 힘들어 보입니다.
일본 빼고.
카메라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르실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