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enz(“아니멘츠”)라는 피아니스트가 있습니다. 유튜브에서 일본 애니메이션 OST를 피아노로 편곡하여 연주하는 동영상을 여럿 올려서 유명해졌지요.
https://www.youtube.com/user/Animenzzz
좀 전에 잠실역 인근 롯데콘서트홀에서 이 분의 내한공연이 있었습니다.
이 내한공연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관심이 없었다가, 지금 제가 사는 곳 근처에서 공연을 한다니까 급 관심이 생기더라고요. 그래서 예매를 했고, 오늘 공연에 다녀왔습니다. 공연장에 음악 들으러 가는 것은 정말 오랜만이네요.
사실 저는 이 분에 대해서 잘 몰랐어요. 저는 그냥 유튜브에서 제가 듣는 노래만 검색해서 듣곤 하고, 그 중에 이 분의 피아노 어레인지 곡이 종종 들어있었을 뿐이었거든요. 그나마도 실은 Theishter(이 분의 친구 유튜버로, 역시 애니메이션 OST를 피아노로 연주합니다.)의 어레인지를 더 자주 들었습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회수가 6천만이나 되어 이 분의 유튜브에서 가장 재생횟수가 많은 곡을 저는 이번 공연장 연주로 처음 들었어요.
공연장에 가니까 연주자의 요청으로 프로그램이 팸플릿과 일부 달라졌다는 안내가 있던데, 이유는 공연 중에 알 수 있었습니다. 1부 중간에 최근 발생한 쿄토 애니메이션 방화테러 사건을 직접 언급하며 팸플릿에는 없던 <바이올릿 에버가든> OP를 연주하더라고요. 이것 외에도 쿄애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곡들이 프로그램이나 앵콜 곡에 꽤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직접 들어보니까, 이 분은 원래 피아노가 아닌 음을 최대한 피아노로 구현하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요. 원래 피아노로 연주된 곡이야 물론 피아노로 잘 칠 수 있겠지만, 일렉기타나 드럼처럼 피아노와는 동떨어진 음이 팍팍 나오는 노래도 일부러 골라 피아노로 재해석하고자 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어떤 곡에는 일부러 클래식 음악에서 따온 듯한 부분을 삽입하기도 하더군요. 알고 봤더니 이 분은 클래식 전공자인 모양입니다. <My Dearest>를 연주하기 전에는 자기가 옛날에 클래식 피아노 배우던 이야기를 꺼내면서 이 곡이 내가 힘들 때 힘이 되어준 노래다 뭐 그런 이야기도 하더군요.
연주 실력은 대단한 것 같습니다. 2부 중간이 넘어가니까 좀 지친 것인지 중간에 건반을 한두 개씩 잘못 누르는 것이 가끔 들리긴 하던데, 그래도 정말 손을 끊임없이 빠르게 놀리는 것이 굉장하더군요. 아, 그리고 2부 처음 시작할 때는 웬 10살짜리 어린이를 무대로 데려 나와 자신의 대표 어레인지곡을 함께 연탄(連彈)하던데, 이 소년도 정말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사람들이 “혹시 수제자인가?”하고 수근대던데, 알고 봤더니 박지찬 군이라고 피아노 신동으로 TV에 나왔던 아이라고 하네요.
공연 중에 뜬금없이 불편한 점이 있었어요. 바로 옆 사람의 발냄새가 심했다는 점. 아무래도 제 오른쪽에 앉은 사람에게서 나는 것 같은 킹리적 갓심이 드는 것이, 오른쪽 사람이 인터미션 때 잠시 자리를 비웠을 때는 냄새가 별로 안 나더라고요. 푹 젖은 신발을 제대로 말리지 않고 신발장에 짱박아뒀을 때의 구리구리한 냄새가 공연 내내 코를 괴롭히는 것이 좀 힘들었습니다.
웃긴 것도 봤어요. <Snow halation>을 연주할 때는 공연에서 형광봉 흔드는 걸 언급하면서 휴대폰 플래시를 흔들어달라고 하던데, 누가 진짜로 아이돌 공연에서 쓰는 형광봉을 들고 와서 그 곡 연주하는 동안만 흔들더라고요. 아니멘츠 본인도 보고서는 아 저거요! ㅋㅋㅋ 하고 언급하던데 저게 러브라이버인가 뭔가 하는 그건가요…
공연 끝나고 나니까 밑에서 CD도 3종류를 팔고 사인회도 하던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포기하고 집으로 왔습니다. CD를 살까 싶기도 했지만, ODD가 없다 보니 구입해도 들을 방법이 없겠더라고요. 그래서 그냥 유튜브나 계속 듣는 걸로… 어쨌거나, 간만의 문화생활이었습니다.
저 분은 모르는데, 직접 곡을 피아노로 어레인지하였다면 궁금하네요.
흠... 벌써 중국에는 이미 CD이미지가 돌아다니고 있... 읍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