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몇 달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각색해 보았습니다.
서울 북쪽에 있는 변두리 동네에 사는 숲속라키는 특출난 능력도 있지 아니한 고삼이요, 항시와 여히 야자보다 집이나 독서실이 공부가 갑절로 잘 된다느니같은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을 궁리를 하며 귀가를 하던 평범한 학생이였으매, 그가 학교가 파하자마자 집에 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리라. 때는 오뉴월 아무 날 네시에서 두 각쯤 지났을 즈음이였고, 동리에서 보지 못한 자가 있었던즉 세상만사가 오비삼척이였던 그에게도 이 초면의 아무개라는 자는 라키의 눈에 띄였으리라. 라키는 주마간산으로 지나치려 했지만 이 자가 먼저 묻는 즉,
"여기 XX여대는 어디로 갑니까"
라키는 외지인들이 여대의 위치를 자주 묻는고로, 이 자도 필경 초행에 길을 잘못 든 것이리라 하고 지레짐작해 버렸다. 라키 왈,
"여기서 저기 앞의 큰길까지 간 후 한 블럭 걸어가셔서 왼쪽으로 꺾으신 후 골목길로 계속 들어가시면 왼쪽에 뵐 겝니다'
보통은 여기서 작별을 고하매, 말을 마친 후 상궤로 들어서려고 하려는 찰나 이 자 왈,
"내가 시외버스 기사인데 술을 먹었어,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는가"
하거늘, 라키는 이 자의 질문이 예사롭지 않음을 깨닫고 이내 추신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라키 왈,
"지선버스는 큰길가 나가시면 보이고, 시외버스는 큰길에서 세 블럭 걸어가신 후 오른쪽으로 꺾으시면 지하철역 근처에 보입니다"
하고, 이만 발길을 돌리려 했다. 술을 마셨다면서 거동이나 억양이 전연 약주를 한 잔 걸친 사람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아 괴히 여겨져 속히 귀가하고 싶었을 따름이리라. 헌데 이 자가 계속 말하길,
"내가 돈이 없으니 이만원만 빌려주면 안 될까 여기 내 신분증이야"
하며 상기와 여히 신분증을 보이는 것이였다. 그러나 이 라키라는 인물은 취미생활을 한답시고 레코오드나 콤퓨타를 사는 데 돈을 없애고야 마는 인물이기에, 단연 문화생활을 위한 자금이나 비상금이 있을 리 만무함이 당연하기 그지없었다. 헌데, 몇 푼이 있었다 하더라도 께름직한 느낌이 농후히 나는 이 상황에서 금전을 선선히 내어 줄 재간도 이 옹졸한 라키에겐 있지 아니했으리라. 그리하여 라키 왈
"가지고 있는 돈이 없습니다"
라고 했더니 이 자 왈,
"응 학생이라 없구나 알았다"
하고, 큰길쪽으로 어기적거리며 걸어가더라.
뭐 이랬습니다. 뭐 여대 위치 물어봤다, 술을 마셨다고 그러면서 시외버스 정류장을 물어보질 않나, 그리고 또 돈을 갑자기 빌려달라네요. 신분증을 보여주는데 지갑에 신용카드가 뻔히 있는데도 돈 빌려달라는 건 뭐 사기 아니였을까요.
고전문학에 고통받으시는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