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 키압 낮은 키보드를 추천받은 적이 있습니다. 알바하는 곳에서 키압 높은 멤브레인 키보드를 쓰다가 손가락이 아파 도저히 일을 하기 어려울 지경이 되었기 때문이지요. 이 나이에 벌써부터 신체에 각종 퇴행성 질환이 빈발하고 있으니 손 또한 거기서 예외가 아닌 상황인데, 진심으로 하루 빨리 닝겐을 포기하고 싶어집니다. 하다못해 뉴럴링크로 전뇌화라도 하면 더 이상 손을 혹사하지 않아도 컴퓨터를 조작할 수 있겠죠. 그 정도면 충분히 훌륭한 사이보그 아닌가효.
어쨌든, 기글 여러분의 추천을 받은 결과 게이트론 백축 스위치가 키압이 낮다는 정보를 얻었습니다. 문제는 소음이지요. 어느 친절한 분께서 올려주신 게이트론 백축 비교타건 동영상을 들어보니, 소리의 크기보다도 음의 높이가 더 문제가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혼자서 쓰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사무실에 들고 가서 쓸 것이기 때문에 소음 문제가 중요할 수밖에 없거든요. 안 그래도 손이 아파서 작업 속도가 늦어지니까 매니저 양반이 눈치를 주는 상황이라, 더 눈치받기는 싫었습니다. 그래서 소음을 고려하여, 저소음 적축 키보드를 차선으로 고르기로 했습니다.
마침 요즘은 텐키리스가 엄청 끌리더라고요. 데스크톱에 어쩔 수 없이 붙여둔 핑크핑크한 다이소 5천원짜리 미니 키보드를 계속 다루다 보니 넘버패드 부분이 없어도 숫자 입력도 웬만큼 익숙해졌고. 그래서 104키 풀배열에서 넘버패드만 빠진 디자인을 우선으로 찾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현재 맥북을 메인으로 쓰고 있으므로, 혹시 맥을 지원하는 키보드가 있는지도 찾아봤고요. 그랬더니 사실상 선택지는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바로 바밀로 VA87Mac 키보드입니다. 오직 영문이 새겨진 흰색밖에 없지만, 그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여 이 키보드의 저소음 적축 버전을 지난 주말에 주문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도착했어요.
그런데 말입니다… 제 손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안 좋은지도 모르겠더라고요. 흔한 50g보다 5g밖에 차이나지 않는 45g 키압이라고는 해도, 첫 느낌은 생각보다 훨씬 키압이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그나마 스페이스 키는 다른 키보다 좀 가볍던데,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일까요. 이것조차 무겁게 느껴진다니…
그래도 키감은 괜찮았습니다. 예전에 앱코에서 나온 노푸 무접점 스위치 키보드를 썼던 적이 있는데, 그것과도 느낌이 약간 비슷합니다. 다만 세게 치면 소리가 생각보다 크게 나고, 살살 치면 소리가 아주 조용하고 부드럽네요. 이건 애초에 최대한 적은 힘으로 살살 쳐야 제맛인 것 같습니다.
정형외과에서 받은 진통제를 먹은 뒤 타자연습 사이트에 들어가서 한글 문장과 영어 문장으로 각각 간단히 테스트를 해봤습니다. 한글 타수는 대략 350~450타, 영어는 190~200타 정도 나오네요. 예전에 알고 있던 것과 동일한 수치입니다. 한글 타수는 조금 더 나오기도 하는군요. 이 정도면 괜찮은 것 같습니다. 문제는 무게가 묵직하고 높이가 높아서, 들고 다니기가 좀 더 빡셀 것 같고 팜레스트도 필요할 것 같다는 점이네요. 무릎 보호대도 필요할 것 같은데, 왜 이리 돈이 나가기만 하는 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