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 어떤 분이 음감이랑 음악이랑 앨범 수집 얘기 하셔서 판때기 모으는 입장에서 써 봅니다.
1. 전 상대음감인지 아닌지도 모르겠고 그냥 채보 적당히 하고 레코드 속도 듣고 적당히 맞춥니다. 절대음감 가진 사람 몇몇을 봤긴 했는데, 글쎄요 채보에 약간 편한 거 빼고는 잘 모르겠더군요. 제가 채보를 하면 조성이 원곡과 다른 경우 조를 밀어줘야하는데 절대음감은 그럴 일이 없으니까요.
세계 각지 토속음악 소위 'ethnic' 이나 동양음악까지 관심 가지고 이거 판때기 모으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절대음감은 서양음악쪽에서 좀 유용할 뿐, 비서양음악에서는 잘 모르겠더군요. 해당 지역 귀명창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아무리 자기가 상대음감이라도 해도 고정된 특정 음을 상당히 자주 들으면 익숙해질 수 밖에 없기 대문에 크게 불편한 건 모르겠습니다. 굳이 절대음감 아니라도 유명한 음악가나 엔지니어도 셀 수도 없이 많구요.
2. 저는 이것저것 가리지는 않는데 판때기 장르를 굳이 꼽으라면 클래식(기악이 좀 더 좋은데 성악도 괜찮습니다), 폭스트로트, 재즈, spoken words 정도 되려나요.
최근에 한번 보니 리스트에 있는 게 290장정도이고 귀찮아서/해외에 있어서 리스트에 없는 게 4-50장정도는 되는 듯 싶습니다.
1890년대 초창기 실린더 레코드부터 56년 엘비스 레코드까지 고루고루 역사적인 것들이면 다 모읍니다. LP는 안 모읍니다. 개중에 좀 특이한 건 미국 대통령 켈빈 쿨리지의 1925년 취임사 라디오 방송 녹음... 1897-1900 사이에 만든 왁스 실린더 음반 민트급도 하나 있구요.
3. 오디오 기기는 쓸만한 HMV 102 축음기 한 대하고(수리중) 스피커 앰프 합쳐서 40만원짜린데 크게 문제는 없습니다. 150정도면 괜찮겠다 싶은 걸 살 수는 있겠는데 로또 당첨되면요. 오히려 판모으는 데 쓰는 돈이 훨배 더 많습니다. 오디오야 최신의 좋은 것을 언제든지 살 수 있는 반면, 어디서도 듣지 못하는 역사적 음반들은 그렇게 흔치 않거든요.
사실 오디오 기기라고 하면, 레코드 트는 카트리지가 더 관심이 가네요. 레코드마다 그루브 크기가 모두 달라서 적어도 5가지 사이즈의 바늘이 있어야 괜찮게 복각이 가능한데, 이게 한 60만원 들겁니다. 생각해보니 복각용 소프트웨어도 가격이 싸진 않군요.
4. 음악이란 건 정말 다양한 주변 환경에서 다양한 감정 상태를 가지고 듣는 것이기에 어떠한 음악도 하나의 생각에 대응되지 않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가장 'horny'한 녹음으로 꼽는 멘젤스존 바이올린 협주곡 1926년 크라이슬러 연주도 아침에 모닝콜로 들으면 썩 유쾌할 것 같진 않네요.
5. 1896년부터 1920년대 중후반까지 생산된 판들은 회전속도가 78이 아닙니다. 한 50rpm대로 도는판부터 100rpm 넘게 돌아가는 판까지 다양합니다.서양음악같은 경우는 가수의 나이와, 즐겨부르는 키나, 악보나, 당시 세션이나, 피치파이프 소리나 허밍노이즈, 마지막으로 복각 기술저의 의견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당시 녹음용 턴테이블이 돌았던 속도를 알아내죠. 당시 서양음악은 A=440Hz로 녹음된 것이 아닌 경우도 있고, 브라스 밴드나 첼로 조율도 현대와는 다릅니다. 성악 창법이나 피치도 요즘 것이랑은 다릅니다. 단순히 음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음악과 가수와 환경에 대한 총체적인 이해가 필요합니다. 게다가 동양음악같은 경우는 음계가 서양음악처럼 정립된 게 아니라 전후상황을 훨씬 더 살펴야 합니다. 근데 전 오히려 이게 더 재밌더라구요. LP와는 정말로 다릅니다. 예컨대, 맨 위 짤방의 레코드는 60rpm 중후반대로 돌고 있습니다. 만약 이것을 78rpm으로 돌린다면 몇 옥타브가 올라가 테너가 테레비 음성변조 목소리처럼 들립니다. 저도 익히고 있는 과정이지만, 회전속도는 중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