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기를 데리고 버스를 타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습니다. 애가 오줌은 안 싼다고 버텨서 지금 안 싸면 버스에서 힘들다고 채근하고 있었는데, 대변기 칸에서 다 죽어가는 목소리가 나오더라고요.
저기요... 혹시 누구 계세요... 뭐 이런 식으로요. 전화 통화하는 내용은 아닌 듯 하여 뭔 일이냐고 물었더니 휴지가 있냐고 묻더라고요. 없다고 했더니 구해다 줄 수 있느냐, 어디서 구하냐고 물었더니 옆에 카페에 가면 있지 않겠느냐 등의 문답이 오갔습니다.
카페에 들어가서 생각해보니 내가 싼 것도 아니고, 카페에서 음료를 주문한 것도 아닌데 휴지를 달라고 하거나 가져가는 건 좀 아니다 싶었는데... 좀 더 생각해보니 애기 어린이집 가방에 휴지를 항상 넣어 다닌다는게 생각이 나더라고요? 그래서 도로 화장실로 가서 그걸 전부 주고 나왔죠. 고맙다는 말도 듣고요.
그 휴지도 애기 코 좀 닦는다고 편의점에서 쌩돈 800원인가 900원인가를 주고 산 거였는데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 줘버렸네요. 하지만 목소리가 정말 간절해서 도저히 주지 않을 수가 없더라고요. 목소리도 관상 비슷한 그런 느낌이 있잖아요? 당장 돈 천원이 없다고 제가 곤란한 것도 아니고요.
이렇게 곤경에 빠진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왔는데, 죽어서 천국행과 살아서 로또 정도는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화장실 칸 안에 계신분은 아직 진정한 위기를 겪은적이 없어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