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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도 대통령이 직접 그 종가를 방문하고 그를 모신 서원의 현판까지 써 줄 정도로 그 지방에서는 나름 이름있던 양반이었어요.
독립운동하다가 잡혀가기도 한 나름 지조있는 선비였죠.
그 종가가 어릴 때까지 있었는데, 나름 이름있던 집안이라 기와집입니다. 하지만 크기가 지금 집과 비교하면 아주 작았습니다. 한 15~20평 정도? 1자형인데 그나마 중간은 대청마루가 위치해서 방 크기는 딱 누워 있을 정도 크기입니다.
그걸 보니 윤선도 고택같은 거대한 한옥은 당시로 치면 재벌 수준이 산다 봐도 무방하더군요.
그 때 제가 살던 집은 저 한옥 구조를 따라가되 시멘트와 콘크리트로 벽을 만들고 기와도 함석기와를 얹은 변종이었죠. 1950년대에 지어서 새마을 운동 당시 대대적으로 개조했다네요. 원래 집은 한국전쟁때 불타서 말이죠.
독립운동에 참가한 덕에 그 집안 자손들은 특별전형으로 대학을 가고 공기업도 입사했지만, 그걸 밝히지는 않고 삽니다. 특별전형으로 성적보다 높은 대학에 갔다고 수군거리고 질투하는 못난 인간들을 보고 아예 티를 안 내더라고요. 아예 면전에 너네 조상 빨로 대학 간 주제에 이랬다나. 사실 독립운동 하다가 몸 상한 조상이 있다면 이정도 특혜 정도는 줘야 하는데, 입시와 취업의 전쟁터가 이런 상식적인 보상도 질투하게 만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