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자다 깨서(…) 간단하게 글 좀 써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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띄어쓰기는 왜 어려울까요? 왜 띄어 쓰는 게 어려울까요?
그것은 띄어 쓰는 규칙이 일관되게 적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1. 띄어쓰기의 역사
전통적으로 한국어는 국한문병용체로 쓰였습니다. 한자라는 이질적인 문자가 문장 중간에 박혀 있으니 형태소 구분이 쉬워집니다.
第四大願은내來世예菩提得ᄒᆞᆫ時節에ᄒᆞ다가有情이邪曲ᄒᆞᆫ道理行ᄒᆞ리잇거든다菩提道中에便安히잇긔ᄒᆞ며(석상9:5a-b)
이 문장을 읽는 데 크게 지장이 없을 겁니다(ᄒᆞ다가=만약 등을 알고 있다면 말이죠).
제사대원은내가내세에보리득한시절에만약유정이사곡한도리를행할이있거든다보리도중에편안히잇게하며
이 문장은 읽어내기가 조금 어려울 겁니다.
한자라는 이질적인 문자가 확실하게 형태소를 구분해주니 띄어 쓸 이유도 없습니다. 하지만 한글 전용은 띄어쓰기 없이는 형태소 구분이 어렵죠.
따라서 띄어쓰기는 형태소 구분을 좀 더 쉽게 하려고 도입한 것입니다. 서양 선교사들이 먼저 도입했고 신문에 띄어쓰기를 최초로 적용한 사례는 독립신문으로써 이 신문은 최초의 띄어쓰기 적용 신문이라는 것과 순한글 신문이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2. 띄어쓰기의 원칙
띄어쓰기에도 원칙이 있습니다. 이것만 지키면 이론적으로 완벽한 띄어쓰기가 가능합니다.
I. 단어 단위로 띄어 쓰되 조사는 붙여 쓴다.
II. 의미가 합쳐져 한 단어가 된 경우 붙여 쓴다.
III. 의미가 합쳐질 수 있는 말은 띄어 씀이 원칙이나 붙여 씀도 허용한다.
정말 간단합니다. 조사 빼고 그냥 단어 단위로 띄어 쓰면 되니까요.
그런데 띄어쓰기 대원칙에는 가장 큰 문제점이 있습니다. 한국어에서 합성어는 구와 구분하기 어렵습니다.
신용 카드는 합성어일까요? 구일까요? 사전을 찾아보면 신용^카드로 나옵니다. 원칙은 구로 보지만 사람들이 이게 구인지 합성어인지 헷갈려서 붙여 씀도 허용한다는 뜻입니다. 기본적으로 사전은 단어 단위로만 등재되기 때문에 구는 원칙적으로 사전에 등재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신용 카드는 많은 사람이 합성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예외적으로 사전에 실리고 원 형태가 구임을 밝힌 것입니다.
고무 제품과 고무줄은 뭐가 다를까요? 두 개는 통사 구조가 같습니다. 고무라는 명사가 제품이나 줄이라는 명사를 수식해줍니다. 그러나 고무 제품은 구라서 사전에 실려 있지 않고 고무줄은 단어라서 사전에 실려 있습니다. 합성어와 구를 구분하는 기준이 매우 모호하고 언중들에게 혼란만 주는 겁니다.
3. 언중들의 혼란
띄어쓰기가 정말 짜증나는 이유는 바로 합성어와 구 구분이 힘들다는 사실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국립국어원은 띄어쓰기 원칙에 허용사항을 집어 넣어 혼란을 완화하게 됩니다.
언어 직관에서 허용된 표기가 더 익숙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제1 차 인도차이나 전쟁’이 원칙이지만 우리는 흔히 ‘제1차 인도차이나 전쟁’이라고 수사 뒤 의존 명사를 붙여 쓰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허용 표기를 쓰는 것도 좋지만 가장 좋은 것은 원칙이든 허용이든 문장이나 글 전체에 일관된 띄어쓰기 규칙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한 문단 안에서조차 띄어쓰기 규칙이 들쑥날쑥하면 정말 보기 싫어지니까요.
4. ‘단어’ 단위의 혼란
대원칙에서 말하는 단어란 무엇일까요? 그리고 조사는 단어면서 왜 띄어 쓸까요? 흔히 띄어쓰기에서 단어를 구분하는 기준은 자립 여부입니다. 하지만 의존 명사는 띄어 쓰지만 조사는 붙여 써야 합니다. 아마 의존 명사는 조사보다는 의존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한 모양입니다.
단어 단위가 헷갈리는 큰 요인 중 하나는 품사 전성(영파생) 때문입니다. ‘만큼’은 경우에 따라 의존 명사로도 격 조사로도 쓰입니다. 같은 형태가 쓰임에 따라 다른 품사가 되므로 이 단어가 대체 무슨 품사로 쓰인 건지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골 때리죠.
따라서 올바른 띄어쓰기를 하려면 정말 많이 배워야 하며, 최소한 내가 쓰는 단어의 품사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쓰나요. 그냥 띄어쓰기 틀리고 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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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여러 원칙이 있지만 위에 쓴 여러 문제 때문에 항상 올바른 띄어쓰기를 준수하기란 정말 어렵습니다.
만약 띄어쓰기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어문 규범 중 한글 맞춤법 41항부터 50항까지를 읽어보세요. 국립국어원 홈페이지를 통해 누구나 접속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