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쯤 갖고 싶지만 실제로 쓰기엔 애매한 PC계의 계륵, 바로 UMPC입니다.
컴퓨터는 소형화, 고밀도화 될 수록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고 제작도 힘든 것이 인지상정이기에, UMPC는 넷북보다도 못한 취급을 받았었죠. 실제로 성능도 그랬구요. 초소형 PC라는 플랫폼이 사라지고 태블릿과 스마트폰이 대중화된건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그마저도 대세는 점점 커지는 폰 하나로 수렴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하지만, 그런 것과 관계없이 '온전한 윈도우가 들어있는 초소형 PC'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아니, 수요보다는 컴덕의 욕망이라고 표현하는게 낫겠네요. 미세공정의 발달로 이전보다 훨씬 높은 성능의 CPU를 더 작은 공간에 쑤셔넣을 수 있고, NVMe SSD의 대중화 역시 그런 소형화의 물결에 불을 지폈습니다. 고성능 ITX PC가 유행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겁니다.
어쨌든, 작은 기판에 오밀조밀 모여있는 고성능 부품들은 그 존재만으로 하드웨어 매니아들의 지갑을 비우게 만드는데 충분합니다. 저도 당했고, 많은 사람들이 당했습니다. GPD사는 이전부터 게이밍을 강조한 UMPC를 출시하여 주목을 끌었지만, 이번에는 아예 모바일 아이스레이크 CPU, NVMe SSD, 아이리스 그래픽, wifi 6에 썬더볼트 단자까지 탑재한 MAX라는 제품을 내놓습니다. 말이 UMPC지 그냥 좀 큰 게이밍 기기나 다름없는 스펙에 많은 사람이 주목했고, 펀딩은 대성공했습니다.
문제는 이들이 중소기업이라는 겁니다. 펀딩을 한 사람은 수천 명이고, 제품 출하일은 7월이었으나 거의 2개월 가까이 연기되다가 이제서야 겨우 배송을 시작했습니다. 그정도야 금방 지나간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항의가 빗발치는데도 무성의한 답변으로 일축하는 회사에 오만 정이 다 떨어졌습니다. 펀딩 사기가 하도 많아서 그동안 1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이 날라간 거 아닌가 생각하며 스트레스를 받았었죠.
이전 제품들도 이런 이슈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이쯤 되면 그냥 안일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뭐, 지금이라도 왔으니까 좋게 넘어가지만, 품질과 관계없이 앞으로 이 회사의 물건은 안 살것 같네요. 펀딩도 마찬가지입니다. 좋게 말해서 펀딩이지 돈을 바치고 물건이 떨어지기를 바라며 기우제 지내는 느낌이었습니다.
제 얘기는 여기까지 하고, 실물을 한 번 보도록 합시다.
박스는 나름 신경써서 만들었는지 꽤나 고급스럽습니다. 약간 한정판 게임기 받는 느낌이랄까요.
포장 상태도 좋습니다. 손잡이 만들어준 것도 세심하네요.
GPD WIN MAX 본체, 100W급 고속 충전기, 설명서, 끝.
생각보다 크고, 생각보다 작습니다. 아이패드 미니 두 개 붙여놓은 느낌입니다.
사이즈 체감을 위해 몇가지 물건을 둬 봤습니다.
가로 길이는 갤럭시 워치보다 조금 짧고, 세로 길이는 커세어 마우스와 비슷합니다.
좌측면에 게임패드-마우스 모드 변경 스위치가 있습니다.
이 스위치를 이용해서 본체에 있는 아날로그 스틱을 마우스로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좀 의외였던게, 생각보다 편합니다. 좋은 기능이네요.
후면에 HDMI 단자, USB A 3.2 gen1 포트 2개, USB C 3.2 gen2 포트 2개.
C타입 단자중 하나는 무려 썬더볼트 3을 지원합니다. 이걸 써서 외장 eGPU를 쓸 수 있습니다.
모양새는 좀 웃기겠지만 인텔 NUC과 비슷한 형태로도 활용 가능하겠네요.
측면에는 LAN 포트 하나와 MicroSD 슬롯 탑재.
기본으로 주는 스토리지 용량이 512GB나 되서 굳이 쓸 일은 없을 것 같지만, 256GB짜리 하나 넣어서 음악이나 잔뜩 들으면 되겠네요.
맞습니다. 전 늙은이라 음악을 일일이 다운로드해서 소장하는 파입니다. 앨범도 직접 사서 굽습니다.
전면에는 고맙게도 3.5파이 단자가 있습니다.
방수를 포기하고 쿨링을 극대화하는 뒷판 디자인. 블로워 팬이 무려 두 개나 들어갑니다.
여기까지 보면 아시겠지만 하우징의 재질이 생각보다 좋습니다. 고급스럽고, 흠집이 덜 나며, 플라스틱의 느낌이 아니라 알루미늄의 느낌에 가깝습니다. 딱 레이저 블레이드 스텔스의 그 재질입니다.
전체적인 샷 한장. 큽니다. 하지만 들고 쓸 수 있습니다.
디스플레이는 8인치 IPS 터치스크린이 들어갑니다. 해상도는 16:10 비율 WXGA.
글레어 패널이라 빛반사가 조금 심하지만, 깔끔한 색상을 출력해줍니다. 솔직히 기대도 안 한 부분인데 놀랍습니다.
이건 여담이지만, 저는 16:10 비율이 편합니다. 주 모니터인 SW240도 16:10인데 A4 사이즈 크기를 정확하게 두 장 띄워놓고 작업이 가능하기 때문에 보기도 편하고 능률이 좋습니다.
힌지는 수평에 가깝게 펼 수 있습니다. 들고 사용해보면 닌텐도 3DS XL을 사용하는 느낌입니다. 물론 더 무겁지만요.
보급형 노트북처럼 삐걱거리고 흔들거리지 않기 때문에 들고 다녀도 안정감 있게 화면을 볼 수 있습니다.
키보드 안쪽엔 게임할 때 쓸 수 있는 스타트/셀렉트 버튼이 있습니다. 크기가 작아 누르기 힘든게 단점.
추가로 저 같은 경우에는 패드를 쥔 상태에서 엄지가 스타트 버튼에 닿지 않습니다. 손이 작은 사람들을 위해서 조금 바깥쪽에 버튼을 뒀으면 좋지 않았을까 싶네요.
십자버튼은 훌륭합니다. 그냥 엑스박스 원 컨트롤러 느낌 그대로입니다.
아날로그 스틱도 부드럽게 사용 가능합니다. 이건 스위치스러운 느낌이네요.
버튼 디자인이 마음에 드는데, XBOX 유저와 PS 유저를 둘 다 배려하여 자그마한 도형이 함께 그려져 있습니다. 색상도 이뻐서 보기 좋습니다.
근접 촬영으로 보는 재질 상태.
하우징 마감이 모난 데가 없어서 따로 얘기할 거리가 없네요.
키보드는 전작의 피쳐폰식 배열을 탈피하여 멤브레인 스위치가 들어갔기 때문에 그런대로 타이핑이 가능한 수준까지 올라왔습니다. 다만, 크기상의 문제로 배열이 달라서 한 두시간 정도 사용기간이 필요합니다.
또한 한/영키가 없어서 소프트웨어로 따로 변경해줘야 하는 것도 단점입니다. 나중에 안쓰는 키 하나를 지워버리고 거기에 대신 넣어놔야겠습니다.
뒷면에는 L/R 스위치가 두개씩 들어가 있습니다. 웬만한 게임은 이걸로 전부 플레이 가능합니다.
GPD는 평평해서 진짜 컨트롤러의 그립감을 따라갈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이게 어디입니까.
기본적으로 윈도우 10 Home 2004 빌드가 설치되어 있습니다.
원래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Diskpart 클린 설치 후 다시 깔았겠지만, GPD는 게임패드 구동을 위한 전용 드라이버가 있기 때문에 혹시 모를 불상사가 발생하지 않을까 싶어서 기본 윈도우 그대로 사용했습니다.
이전에 레노버 요가북인가 하나 클린 설치했다가 터치 드라이버를 공식 홈페이지에서도 배포하질 않아서 벽돌이 된 경험이 있었거든요. 다시는 하기 싫은 경험입니다.
바이오스도 확인해 봅시다. 당연하겠지만 범용 바이오스가 들어갑니다.
i5-1035G7, 16GB 메모리, 512GB SSD.
뜨거운 것은 싫기에 TDP 제한을 겁니다.
락을 걸게 되면 TDP 15W 내에서 동작하게 됩니다. 성능은 조금 떨어지겠지만, 대신 사용시간을 얻습니다.
그 외에 별도로 튜닝을 할 수는 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다 끝냈으니 바로 넘어갑니다.
귀찮은 윈도우 설문조사를 넘기면 반겨주는 중국 감성의 바탕화면.
아예 게임기로 쓰라는 건지 기본적으로 스팀 설치 파일과 함께 GPD 사용 설명서도 동봉되어 있습니다.
혹시나 윈도우를 날려서 드라이버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을 때 대처법이 적혀 있습니다.
9인치에서 볼 수 있는 4코어 8쓰레드의 위엄.
보안은 소중하니 비트 디펜더부터 먼저 깔아줍니다.
Wifi 클래스 6의 성능은 굉장했다!
무선으로도 40MB/s의 다운로드 속도가 나옵니다. 대신 쿨러도 아주 기운차게 돌아갑니다.
CPU-Z를 통한 상세 스펙. TDP 15W 제한. 최대 25W로 올릴 수 있습니다.
메모리는 듀얼 채널 LPDDR4X 16GB. 어디서 만들었는지는 전혀 뜨지 않습니다.
간단한 벤치마크 성능.
TDP 15W 제한 + 배터리 절전 모드 상태에서 싱글 점수 371.8 / 멀티 점수 2139.2.
데스크탑 i7-2600K를 제치는 성능입니다. 4790K보다는 소폭 낮습니다.
TDP 15W 제한 + 균형 조정 + 충전 케이블 착용.
싱글 점수가 소폭 올랐으나 멀티 점수는 비등합니다. 위 벤치를 하고 나서 바로 진행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배터리 상태로도 제 성능은 잘 나오는 편입니다.
SSD는 정보 자체가 아예 검색이 안 됩니다.
진리의 CrystalDiskinfo로 확인해봅시다.
BIWIN 테크놀로지의 NVMe1.3 512GB SSD. 게임 몇개 받았다고 바로 기록량이 올라가버렸네요.
읽기/쓰기 성능은 NVMe 치고는 썩 좋지 못합니다. 하지만 사용에 있어서 불편함이 없으므로 교체 없이 그대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GPD에서는 공간이 부족하니까 교체할 때 양면 SSD가 아닌 삼성 970 evo같이 단면 SSD를 사용하라고 안내하는군요. 그 몇 mm조차 안 들어갈 정도로 구조가 빡빡한가 봅니다. 방열판 설치는 꿈도 꿀 수 없겠습니다.
깔아본 게임들을 즐기는 시간. 당연하겠지만 2D 휭스크롤 슈팅 따위 아주 잘 됩니다. 딸깍딸깍 들리는 버튼음이 게임하는 맛 납니다.
메탈슬러그 시리즈는 벌써 20년째 하고 있습니다. 20년 뒤에도 하고 있을 거 같아서 무섭습니다.
배터리 상태에서는 사무 용도로 쓴다고 가정했을 때 대략 9~12시간 정도 사용 가능합니다. 넷플릭스 연속 시청시 6~7시간을 왔다갔다 하고, 게임은 4시간 정도가 최대인 듯 합니다.
이정도면 스위치보다는 오래 사용 가능하니까 합격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도 그럴게 배터리가 11V 5000mAh나 하는걸요.
요리조리 사용해보면서 프레임을 측정해 봤습니다.
들고다니면서 사용하는 것을 가정한 것이라, 'TDP 15W 제한 + 배터리 절전 모드'임을 감안해 주셔야 합니다.
최대 성능은 당연히 이것보다 높을 것입니다.
고정 60 FPS
- 메탈슬러그 시리즈
- PPSSPP
- MAME
- Enter the Gungeon
- 하프 라이프 시리즈
- 다크 소울 리마스터
- 다크 소울 2
-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 시리즈
- 스타듀 벨리
- DJMAX RESPECT V
RESPECT의 경우 키 배열 변경이 안 되서 조금 불편합니다.
알고보니 변경이 가능했습니다. 모두 DJMAX를 하세요. 재밌습니다!
가변 40~50 FPS (하옵 기준)
- 크라이시스 2
- 둠 (2016)
평균 30 FPS (하옵 기준)
- 크라이시스 3
- 에일리언 아이솔레이션
- 다크 소울 3
- 몬스터 헌터 월드 : 아이스본
30 FPS가 나오는 게임들은 TDP 25W, 최대 성능 모드에서 약 50~55 FPS까지 올라갔습니다. 물론 쿨링팬이 이륙하는듯 한 굉음이 납니다. 그래도 그정도로 돌아간다는 게 신기할 따름입니다.
사실 좀 의외였던 건 다크 소울 3이었습니다. 나온지 좀 된 게임인데도 돌리기 힘들어 하더군요. 왼쪽 구석탱이에 27 프레임이 나온다고 적혀 있네요.
전원 케이블을 꼽아주면 프레임이 단박에 올라가긴 하지만, 전 벽에 꽂힌 케이블에 묶여사는 생활은 싫습니다. 언젠가 PD 충전 + 썬더볼트 3 지원이 가능한 3m 케이블이 수중에 들어오면 생각해 보겠습니다만.
총평은 보시다시피 갖고 놀기 좋은 장난감입니다. 애초에 화면이 작아서 메인 컴퓨터로 쓰는것은 한계가 있고, 그 성능도 당연히 엄청나게 좋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보조 역할로 눈을 돌려보면 활용도가 아주 많습니다. 자료 옮기는 용도, 카페에서의 간단한 포토샵 편집, 미니 유투브/넷플릭스 플레이어, 이동식 에뮬레이터 기기 등등. 가끔씩 친구와 만나서 멀티 플레이 게임을 할 때도 유용하게 쓸 수 있고, 비행기에서도 지루하지 않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겁니다. 어.. 비행기는 사실 잘 모르겠네요. 배터리 용량도 문제지만 코로나가 워낙에 심각하니까요.
가격이 모두 궁금하시겠죠. 저는 인디고고 펀딩으로 6000 홍콩 달러 + 관세 9만 원 해서 대략 100만 원 정도를 지불했습니다. 이정도 사양에 걸맞는 가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UMPC라는 것 하나만을 보고 산 것이고, 저는 만족했으니 충분한 값어치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기판을 열어서 내부도 구경해보고 싶게 만드는 제품이었습니다.
3줄 요약
+ 9인치 터치스크린 UMPC
+ 주제에 괜찮은 사양
- 무겁고 (800g) 방수에 취약함
2.5단계 거리두기가 오는 20일까지 연장되었다고 하더군요. 모두들 나가고 싶더라도 조금만 참읍시다. 야근하는 분들은 힘내시구요. 절대 제가 당직을 서서 그런 건 아닙니다.
그럼 이만 글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메탈 슬러그 하러 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