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백수생활 중이라 아이패드 미니의 활용도가 0에 수렴해버린 상태에다가 너무나 심심했기 때문에 미니 5 대신 써볼 만한 게 뭔가 고민을 좀 했습니다만... 크게 돈을 쓰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에 저렴한 핸드헬드 게임기로 눈을 돌렸습니다. 주된 용도가 에뮬이 아니었기 때문에 좀 시큰둥한 상태였지만 유튜브를 뒤져보니 퀘이크 시리즈도 돌릴 수 있지 않겠어요? 퀘이크라면 참을 수 없지.
해서 도착한 것이 RG351P입니다. 블루 버전.
보정을 사진마다 들쭉날쭉 하는 바람에 이 사진에선 진한 푸른색에 가깝지만 실제로는 그것보다 채도가 좀 옅고 남색에 가까운 느낌. GBA의 그 블루랑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사양은 락칩의 RK3326, 1GB RAM, 사용자 임의로 사용가능한 내장 스토리지가 없기 때문(...)에 반드시 마이크로 SD에 OS를 설치하고 사용해야 합니다. 디스플레이는 480x320으로 GBA 해상도의 4배군요.
사실 RK3326을 썼다는 점에서 이미 이 물건의 가격과 성능이 다분히 예측되지 않나 싶습니다. 하긴 이런 기기들이 애초에 오드로이드 고 클론이었던가(...).
같이 장착돼서 온 64GB 메모리엔 351ELEC이 설치되어 있고 롬도 끼워넣어 주긴 했습니다만... 그건 제가 사용하려는 목적과는 거리가 멀었고, 거기에 리니지 OS를 설치하느라 밀어버렸습니다. 사족인데 안드로이드라도 설치해서 사용성을 확보해 보려고 했습니다만... 351P/M 전용 이미지로 설치를 시도했음에도 정상적인 OS 진입이 불가능했습니다. 다른 SD카드를 사용해도 마찬가지라 이건 포기. 어쨌든 지금은 256GB 카드에 ArkOS를 올려놓은 상태. OS가 SD카드에 저장되기 때문에 조금만 탈이 나도 먹통이 되기 때문에 장치, 혹은 컴퓨터에 연결하고 뺄 때는 반드시 안전한 방법으로 제거해야 합니다.
부팅 시의 로고도 바꿀 수 있는데 기본 로고가 구려서 바꿨습니다.
GPD WIN MAX, 스위치와 비교하면 이 정도. 노안이 있고 손이 큰 편이라면 좀 불편할 수 있습니다.
전면의 버튼/스틱 구성은 근래 볼 수 있는 콘솔 게임의 레이아웃을 따르고 있습니다. 왼쪽 스틱과 십자의 위치가 바뀌었으면 하는 소소한 불만이 있군요.
본체 아래엔 놀랍게도 스피커가 양쪽으로 달려 있습니다. 스테레오 재생이 된다는 거죠. 가운데엔 마이크로 SD 카드 슬롯과 리셋 버튼이 있고요.
좀 깊이 들어가는 편이라 손톱을 기르는 것이 카드를 빼낼 때 편합니다.
뒷면엔 이것저것 적혀 있습니다. 양쪽엔 고무 패드가 붙어 있군요. 미끄러지지 말라고 붙인 건가?
본체 오른쪽엔 볼륨 조절 다이얼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단가를 절감할 줄이야.
본체 위쪽엔 타입 C 단자가 두 개 있습니다. 둘 다 OTG 혹은 직결로 키보드나 마우스, 기타 장치 연결이 가능합니다. 충전은 오른쪽 위의 단자(사진에서는 왼쪽)에서만 가능. 가운데에는 3.5mm 이어폰 단자가 있습니다.
트리거 버튼은 L/R 두 개씩 낭낭하게 들어갔습니다만... 위치가 위치다 보니 L2와 R2를 결코 편하게 누를 수가 없습니다. 사람에 따라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을 정도. 저는 확실히 누르기 불편했습니다.
아무튼 351에 설치한 ArkOS는 우분투 기반의 OS인 것 같고, 그 위에 에뮬레이션 스테이션을 프론트엔드로 올려서 기본 사용이 가능하고... 에뮬레이터는 또 다시 프론트엔드인 레트로아크를 실행한 뒤 각 시스템 별 코어를 로드해서 에뮬 게임을 돌린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굳이 에뮬만이 아니라 오만 잡것들도 돌리는 것 겉 같지만... 뭐가 이렇게 복잡해? 에뮬레이션에 대한 얘기는 일단 이 정도까지만.
별도의 테마도 적용해서 사용가능합니다. 테마별로 다양하게 사용가능한 기종에 대한 백그라운드 이미지를 제공하는군요.
공개로 풀린 PC-98용 메타녀라도 돌려볼랬는데 안 돌아가서 실망했습니다.
예상하진 못했지만 RPG 쯔꾸르 2003 기반의 게임들도 파일만 넣어주면 잘 동작합니다.
유메닛키도 작동하고
노비타의 바이오해저드(...)도 됩니다.
아참, 원래 하려던 건 퀘이크 시리즈 돌리는 거였죠.
모든 퀘이크 소스 포드들은 당연히 정품에서 사용하는 pak 파일들이 필요하고 저는 전부 구매했으니 스팀 폴더나 원래 갖고 있던 파일을 옮겨다가 집어넣었습니다. 결과를 말하자면,
퀘이크 1: OS 기본 상태에선 레트로아크에 TyrQuake를 얹어서(...) 돌아가는 방식인데 이게 조작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군요. 원하는 대로 키 바인딩이 매우 힘들었습니다. 기껏 세팅을 해놓고 다시 실행하면 config.cfg 파일을 디폴트값으로 돌려놔 버리니 원... 대충 타협을 보긴 했지만 불만족스럽군요. 소스 포트 자체도 quakespasm처럼 메뉴 투명도나 스케일 설정이 되지는 않는 수준이라 아쉽고.
그나저나 딱히 오픈지엘 가속이 되지는 않는지 렌더링 해상도를 올리면 바로 성능저하가 보입니다.
퀘이크 2: 기본으로 설치돼 있는 비타퀘이크 대신 Anberports를 이용해 소스 포트를 새로 설치. Yamagi Quake II 베이스고 레트로아크를 쓰지 않기 때문에 바로 하드웨어 버튼 할당이 가능해서 모든 설정이 완벽하게 가능했습니다.
문제는 오픈지엘 라이브러리를 포함하지 않고 있어서 하드웨어 그래픽 가속이 불가능하다는 점인데... 480x320 해상도로 동작함에도 30fps 유지하기가 힘든 상황이 많이 발생합니다. 이런 기기에서 펜티엄 133MHz나 사이릭스 6x86 이딴 걸로 돌리던 추억을 되새길 수 있다니 별로군요. 그래도 그냥저냥 참고 할 정도는 됩니다.
퀘이크 3: 소스 포트 이름은 까먹었지만 아무튼 이건 오픈지엘 가속도 되고 퍼포먼스 측면에서는 가장 나았습니다. 하지만 화면 안에서 효과가 많아지거나 오픈된 공간에 있거나 반투명 효과가 나타나면 30fps 이하의 프레임을 찍는군요. 그나마도 옵션을 여럿 죽여놓은 상태였습니다. 왜 config.cfg가 아니라 autoexec.cfg를 편집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퀘이크 3 콘솔 명령어에는 이골이 났으니 어쨌든 입맛대로 손보는 데는 성공했고요.
...그리고 이런 설정들은 키보드를 연결하고 진행하거나 SD카드를 빼고 컴퓨터에서 수정해야 한다는 점이 번거롭긴 했습니다. 포트 제작자들도 굳이 이 기계로 이런 게임을 진지하게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을까 하고 만든 느낌이랄까...
그 외에 AnberPorts 등을 사용해서 기타 오픈 소스 엔진 게임들은 물론 하프라이프, 블러드 같은 게임들도 실행할 수는 있지만 퍼포먼스와 조작 설정의 한계로 FPS 장르들은 그냥 돌려보는 선에서 그치는 편이 좋을 것 같군요.
그러고보니 제가 둠 얘기를 하지 않았군요? 둠도 레트로아크를 기본으로 LZDOOM 소스 포트를 띄워 작동하는데 이것 역시 지옥같은 세팅 때문에 포기했습니다. ArkOS에 포함된 LZDOOM은 뭐가 문제인지 35FPS 기준으로 작동하고(애초에 초당 35틱으로 작동하던 게임이긴 합니다만) 여기서 프레임레이트를 높게 설정하면 그만큼 더 빨라지는 이상한 문제가 있다는 것도 문제. ELEC에서 멀쩡하게 60fps로 동작하는 거 보면 그냥 포팅을 이상하게 한 건가 싶고요. GZDoom을 쓸 수는 없었던 건가?
그러고보니 이 물건, 와이파이 동글 연결도 됩니다. OTG 어댑터로 대충 굴러다니던 와이파이 동글을 끼워보니 와이파이 접속이 되더군요. 이걸로 FTP 서버를 만들어서 PC에서 접속해 자료를 옮길 수도 있습니다. 특히 Anberports로 앱을 설치하려면 인터넷 연결이 필수이기도 하니 만약 있다면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물건이 되겠습니다.
왜 인터넷 연결이 필요하냐면 각 게임 모듈을 설치하고 업데이트를 받기 위해서입니다. 지금은 잘 돌아가지만 나중엔 어떨지 모르겠군요. 베타 기능 중엔 지포스 익스피리언스와 연동한 스트리밍 플레이도 가능해 보이지만 귀찮아서 테스트해 보진 않았습니다. 레트로아크에서도 코어나 썸네일 등의 업데이트를 인터넷에서 내려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연히 도스박스를 통한 도스 프로그램 실행도 됩니다. 간만에 IMS 포맷 음악을 들으니 없던 추억도 생기고...
이것도 당연히 레트로아크에 얹혀서 돌아가기 때문에... 원하는 조작 스타일을 만들려면 많은 고생이 필요합니다. 전 아직도 코어별/게임별 설정값이 어떻게 저장되는지 감을 못 잡겠습니다. 세팅 도중에 메뉴가 오작동하는 경우도 많고 오버로드로 뻗기도 하고... 물론 이 기기의 주요 용도는 에뮬 롬을 집어넣고 그냥 쓰려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겠지만요.
딱히 할 만한 맞고 게임이 없다면 도스용 네오-고도리를 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그나저나 이거 쉐어웨언데 제작자분은 벌이가 잘 되셨을지...
예상하진 않았지만 놀랍지도 않게 동영상 재생도 지원합니다.
하지만 정말 재생만 합니다. 그냥 쉘에서 리스트만 쭉 보여주고 버튼을 눌러 선택한 파일 하나만 재생하는 수준. 그래픽 인터페이스 따위도 없는 심플함... 그냥 미디어 플레이어 같은 거 넣어줄 순 없는 건가? 라는 생각을 했지만 이 물건의 원래 용도를 생각해 참겠습니다. 다행스럽게도 X 버튼을 누르면 랜덤한 항목을 선택할 수 있다는 점, 그나마 재생 중 앞/뒤/정지/음소거 정도는 버튼으로 작동시킬 수 있어서 그건 다행이랄까.
사족이지만 모든 컨텐츠를 게임으로 퉁쳐서 출력하는 건 좀 거시기하지만 이건 테마가 아니라 ES 런처를 손봐야 하는 거 아닌가 싶고요.
동영상 얘기가 나온 김에 말하자면 LCD 패널은 좋지 못한 편입니다. IPS라 시야각에는 관대한 편이지만 정지된 화상에서 다른 장면으로 넘어갈 때(보통 메뉴를 이동하거나 화면비가 4:3인 컨텐츠를 실행 중 다른 작업으로 넘어갔을 경우) 이전 화면의 잔상이 남는 증상이(...) 있군요. 메인 칩셋인 RK3326의 한계도 있는지 1080p 파일 재생도 버거워하고요. 그래도 480x320으로 인코딩을 하면 60fps 영상도 정상적인 속도로 재생이 됩니다.
영상에 깍두기나 밴딩 현상도 꽤나 눈에 띕니다. 이건 칩셋 탓인가 플레이어 탓인가... 아니면 LCD의 색표현력이 형편없기 때문인가. 그래도 대충 볼 만은 했기 때문에 손수 600개가 넘는 뮤비와 공연 영상을 재인코딩해 넣는 쾌거를 이루었읍니다. 15~6년 전쯤에 아이스테이션 PMP에 애니 넣는다고 난리쳤던 기억도 나는군요. 디스플레이 가로세로 비율이 3:2니까 4:3 영상의 경우엔 레터박스를 주고, 16:9나 그것보다 길어진다면 자르는 식으로 작업을 했어요.
스피커는 그냥 소리가 들리는구나 정도. 특히 드럼 소리 같은 건 사정없이 찢어지므로 이어폰을 쓰는 편이 낫습니다.
아참, 앞의 사진에서도 보셨겠지만 C64 에뮬레이션도 됩니다. 그래서 눈여겨 보던 C64 데모들을 집어넣고 감상하는 중. 뒹굴거리면서 시간 때우기 좋군요. 하지만 1982년도 하드웨어 기준으로 제작된 프로그램들조차 구간에 따라 느려지는 건 좀...
배터리는 에뮬레이션이나 일반적인 앱을 실행할 때는 꽤 오래가는 편인 것 같습니다. 동영상 재생할 때 배터리를 더 잡아먹는 느낌. 3500mAh가 뻥스펙이 아니라면 하루 종일 게임만 하고 놀 수는 있을 것 같군요. 다만 충전의 경우 충전기를 가리는 것 같습니다. 35W나 65W 충전기로는 안 되는 것 같고, 그냥 싸구려 충전기에 싸구려 케이블로 연결하면 잘 됩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뭐... 가격 생각하면(배송비 포함 7~8만원 선에서 구입가능) 가지고 놀기에는 괜찮은 것 같습니다. 물론 원래의 용도에서 조금만 벗어나려고 하면 일이 굉장히 복잡해진다는 점, 상황에 따라 시스템의 불안정 혹은 오작동이 발생한다는 점들이 문제긴 합니다만 그런 문제는 비슷한 가격대의 비슷한 사양의 핸드헬드 기기라면 왠지 다들 갖고 있을 법한 문제 같아서 크게 지적하기도 좀 뭣하긴 합니다.
즐겁게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