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벽에 올라온 https://gigglehd.com/gg/mobile/7993044 글을 보고 또 몇 시간 전에 올라온 본 영상을 보고 짧게 생각을 정리해서 올려봅니다.
언어는 항상 변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들은 같은 공간에서 서로 말을 나누면서 자신의 생각을 공유하고, 비슷한 말을 하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비슷한 생각을 하는 사람들끼리 모이게 됩니다.
가령 누가 맛있는 수박을 구해 왔다면 그 주변 사람들끼리 서로 수박을 나눠 먹으면서 수박에 관한 말들을 나눌 겁니다. 그 곳에서 수박이 흔하다면 수박을 가리키는 수많은 말들이 생겨날지도 모르고, 수박에 관한 시덥잖은 농담이 그 곳에서 유행한다거나, 그 곳에서 수박을 먹는 방법이나 수박을 예쁘게 다듬는 요령 같은 것들이 남다르게 발달할지도 모르고, 혹은 남아도는 수박을 다른 곳으로 팔기 위해 수박 홍보용 축제를 열어 수박 먹는 방법을 소개한다든지 하는 일들이 생길 지도 모릅니다.
예시가 그닥 적절하지는 않은 것 같네요. 아무튼 요점은 ‘언어는 화자의 문화와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입니다. 맛있는 수박이 흔한 곳이 아니라면 수박에 관련된 십수가지 단어라든지, 혹은 수박을 먹는 방법 십수가지나 그 곳에서만 통하는 수박과 관련된 농담 따위는 없을 수도 있습니다. 언어는 그래서 철저히 문화에 종속될 수밖에 없고, 전근대에는 역시 언어가 지역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습니다(지금도 어느 정도는 유효합니다).
한 집단의 사회적인 약속이 곧 언어(말)가 되는 것인데요. 문화가 바뀌고 세대가 바뀌면 자연스럽게 언어도 바뀔 수밖에 없습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썼는데, 지금 그런 의미로 그 단어를 사용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면 철자나 모양이 같더라도 옛날 의미는 죽고 새로운 의미로 바뀌어서 쓰이는 셈이지요.
위 영상에도 나오지만 유의어(비슷한 말)는 여러 이유에 의해 서로 충돌하게 됩니다. 단어의 형태 안정성(동사의 경우 접사 ‘-하다’, 형용사의 경우 접사 ‘-답’, ‘-롭’, ‘-스럽’ 등이 붙어 안정적인 단어), 단어의 의미 안정성(가리키는 의미가 구체적이거나 원래 의미 혹은 기본 의미에 충실한 단어), 단어들의 동음(같은 발음) 충돌 여부, 관련된 단어들의 영향(파생어/합성어의 경우 원본 단어의 의미 변화의 영향을 받는 경우), 언어의 경제성(입으로 발음하기 쉬운 단어) 등에 따라 유의어는 서로 충돌하고 경쟁에서 승리한 단어만 사람들에게 선택되어 쓰이게 됩니다.
‘애매하다’라는 형용사가 있습니다. 이 단어는 고유어로 17세기에는 ᄋᆡᄆᆡᄒᆞ다(문이나 열거든 본겻틀 만나오샤 ᄋᆡᄆᆡ코 셜운 말ᄉᆞᆷ도 통ᄒᆞ오시고 《계축 상:38》)라는 형태로 쓰였는데요. 의미는 ‘억울抑鬱하다’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暧昧(애매: 희미하여 분명치 않음)라는 발음이 같은 한자어가 널리 쓰이면서 고유어인 ‘애매하다’는 이제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暧昧라는 한자어에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模糊(모호: 분명치 않고 흐릿하다)라는 한자어까지 덧붙여서 사용하는 편이 일반적입니다.
이는 고유어 ‘애매하다’가 동음 충돌 경쟁에서 밀려버렸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슷한 뜻을 가진 한자어 ‘억울하다’가 발음과 형태가 전혀 다르면서도 완전히 그 자리를 대체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사전에는 두 단어 모두 실려 있고 동음이의어로 취급되지만 요즘 화자들이 억울하다는 뜻으로 ‘애매하다’를 쓰지는 않을 겁니다.
왜 사흘보다 삼일三日을 더 많이 쓰는지, 수율收率이라는 단어를 ‘오버클럭이 더 잘 되는 물건’이라고 쓰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은 없습니다. 다만 왜 사람들이 이 단어를 저런 뜻으로 쓰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추측할 뿐이지요.
언어는 경제적인 것을 좋아하고, 극한의 효율을 추구합니다. 고유어와 한자어 경쟁에서 한자어가 우세한 것은 다소 양상이 다른 문제지만 그걸 제쳐놓아도 수사에서 한자어가 쓰이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발음하기 쉽고, 규칙적이니 더 편하니까요.
하지만 수율이나 ROM 따위의 단어는 약간 다르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소위 말하는 ‘업계’에서는 원래 의미대로 쓰겠지만 실제로 이 단어를 사용하는 또 다른 집단인 소비자들은 전혀 다른 의미로 이 단어를 쓰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가 처음 이런 의미로 이 단어를 쓰기 시작했는지는 몰라도 최근 이쪽 집단에서는 그런 의미로 쓰이는 게 굳어진 것처럼 보이니까요. 이 쪽은 오히려 언어의 사회성이라는 측면에서 바라봐야 할 문제일 겁니다.
그리고 그런 쓰임이(설령 그 쓰임이 어원적으로 잘못되었더라도) 한 집단에서만 유행하는 현상을 벗어나 그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그런 의미로 단어를 사용한다면, 곧 특정 집단이 아닌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모든 집단에서 변화된 뜻으로 그 단어를 사용한다면, 그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 겁니다.
언어 순화 운동처럼 그런 변화를 저지해야 할 지 아니라면 변화를 인정하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취급할 지는 자유입니다. 어느 쪽에 예산과 시간이 더 많이 들어가는가에 따라 언어는 변화를 무시하게 되거나 손바닥 뒤집듯 바뀌어버릴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