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유명 보호소인 '티어하임'에서는 어린 고양이를 분양할 때 2묘 동반 입양을 추천합니다.
고양이의 사회화에 동년배 아이의 존재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1묘만 입양하려다가 까인 사례도 있다고 하네요.)
루다린님과 저는 둘째 고양이까지 들일 계획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왕이면 설기가 아직 어릴 때 둘째 고양이를 데려와서 형제처럼 자라게 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
둘째는 제 취향의 고양이(설기는 제 취향이 아닙니다. 하지만 폴 인 럽)로 들이기로 합의한 상황이었습니다.
이왕이면 유기묘/파양묘로 둘째를 들이자 싶어서 가끔 검색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인천 유기묘 중에 한 아이가 눈에 띄어서 전화를 했더랬죠.
30일까지 임시보호 가능하고, 31일부터 입양으로 서류 처리가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나이대도 설기랑 비슷하고 무엇보다 루다린님 취향의 늘씬하고 근육질 고양이였습니다.
(제 취향은 아니에요;3)
상의 끝에 이 아이를 둘째로 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계양역에서 30분 걸어가면 있는 보호소
입양 준비물은 고양이를 데리고 나올 수 있는 켄넬 혹은 이동장과 신분증입니다.
고양이를 입양하는 절차는 간단했습니다. 간단한 인터뷰와 임시보호 확인서 작성, 그리고 고양이를 안아들고 사진 찰칵.
10분도 채 안 되는 시간에 많은 것이 결정되었습니다.
보시다시피 눈곱이 노랗죠? 보호소의 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입소한 열흘 가량 동안 아이에게 허피스(고양이 감기, 헤르페스)가 왔습니다.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입양한다면 입양 금액은 보호소마다 다르지만 이 아이는 없었습니다.
위의 우주선 케이지는 고양이 진료용으로는 그렇게 좋지 않습니다. 위아래로 열리는 형식의 켄넬이 훨씬 안전합니다.
뚜벅이로 이 아이를 데리고 병원을 가야 했기 때문에 구매한 것이지 차로 이동 가능했으면 절대 사지 않았을 형태입니다.
설기 다니는 병원으로 택시타고 이동해서 전염병 검사를 하였습니다.
보호소에서 고양이를 입양한다면 반드시 병원에 들러서 범백과 같은 위험 전염병 검사와 기생충 약을 처방받아야 합니다.
위험한 전염병 중 3개는 음성이 떴는데 마지막 '범백혈구감소증'이 양성이 떴습니다.
('범백' 또는 '고양이 홍역'이라고도 불린다. 전염성이 강한 파보 바이러스에 의해 옮는 범 백혈구 감소증은 자칫하면 고양이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치사율이 높다. 하지만 예방접종을 한 고양이라면 안심해도 된다. 예방률이 무척 높기 때문이다. http://naver.me/5Qfhee3Q)
이 아이를 유기한 사람 혹은 잃어버린 사람이 아이에게 적합한 접종을 하였으면 걸렸을 리 없는 병이지만
그렇지 않았는지 이 고양이는 범백 확진이었습니다.
진료비는 키트 검사 비용 13만 원 + 외부 기생충 애드보킷 1.6만 원 + 항생제 주사&처방약 3만 원 정도였는데 할인해주셔서 16만 원 나왔습니다.
범백은 전염성이 강한 병이기 때문에 아이를 집에 들여놓고 제가 지나간 자리, 격리실 근처 전부 락스 소독을 해야 합니다. 이동장도 새것이지만 폐기할까 고민했습니다만 락스 청소로 소독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범백 환묘를 집에 돌려보내는 병원 소식에 지인들이 다른 병원 입원치료를 조언해주었기 때문에 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소독하고 바로 제습기로 말리면서 인근 큰 병원에 연락하여 범백 치료가 가능한지 문의하였습니다. 범백은 앞서 언급했듯이 전염성이 강하기 때문에 진료를 거부하는 병원이 더러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범백묘는 진료 후 모든 의료기기를 다 락스 소독 해야 합니다.
다행히도 병원 한 군데에서 치료 가능하니 당장 데려오라고 하셔서 빠르게 건조한 이동장에 고양이를 다시 넣었습니다.
기존에 다니던 병원에서는 첫째 설기의 항체 검사를 안 해줬는데 이 병원에서는 범백 고양이도 키우실 거면 기존 아이 항체검사를 해봐야 한다고 해서 설기도 데리고 갔습니다.
혼자서 켄넬 하나, 우주선 이동 가방 하나 들고 이동하려니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병원이 저녁시간에 번잡한 곳에 있어서 승차 거부도 있었고요.
설기는 익숙지 않은 차에 제가 힘이 달려서 안정적으로 이동이 되지 않으니 잔뜩 언짢아했습니다.
루다린님이 있어야 안정을 취하는 고양이인지라 잔뜩 겁을 먹었죠.
둘째 녀석은 야옹 야옹 울고 가방의 등 쪽 부분을 스크래치 하고 집 안에선 안 흘렸던 눈곱을 줄줄 흘리고 있었습니다.
다행히 택시가 잡혀서 병원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습니다.
범백은 전염성이 높기 때문에 우선 설기부터 진료를 봤습니다.
고양이는 3차까지 종합 접종을 맞는데, 접종을 완료했어도 항체가 형성되지 않아 추가 접종이 필요한 경우가 왕왕 있습니다.
다행히도 설기의 항체 검사 결과는 매우 좋았습니다.
제일 아래가 기준색이고 순서대로 범백, 허피스, 칼리시 입니다.
항체는 색이 짙을수록 잘 형성된 것입니다.
특히나 고양이 사망에 직결되는 범백 항체가 강하게 형성되어서 설기가 둘째로 인해 범백을 앓더라도 무증상 혹은 약하게 앓고 지나갈 가능성이 높다고 합니다.
허피스의 경우는 항체 형성이 잘 되는 편이 아니고, 고양이의 면역력에 따른 것이라 추가 접종을 하진 않습니다.
설기가 나오고 둘째가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둘째가 화장실도 잘 가고 식욕도 있다는 말에 그럼 범백이 아닐 수도 있다고,
분변 키트 정확성이 떨어져서 피검사를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혹시나 첫 번째 병원에서 오진이었을 수도 있으니 희망을 갖고 대기하는데 눈물이 주룩주룩 나더라고요.
수의사 선생님과 테크니션 선생님들이 둘째가 너무 착하다고 진료 쉽게 봤다고 하셔서 의아했습니다.
첫 번째 병원에서는 저랑 수의사 선생님이 엄청 진땀을 뺐거든요.
수의사 선생님이 환하게 웃으시면서 아가 범백 아니라고 했을 땐 정말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위의 차트에서 WBC가 백혈구 수치인데 범백혈구감소증의 경우 저 수치가 1이 나온다고 합니다.
둘째는 지극히 정상 범주이고 살짝 높긴 한데 이것은 허피스 감기로 인해 염증 수치가 높아졌기 때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범백이 아니라는 말에 지금까지 혹시 설기가 옮을까 설기 만지기 전에 독한 소독제로 손 씻고 만지고
둘째가 계속 안기고 비비고 치대는데 받아주질 못해서 서러웠던 게 눈 녹듯이 사라지더라고요.
진료비는 8.55만 원 나왔습니다.
도합 245,500원!
고생한 설기랑 둘째 츄르 한 포씩 먹이고 집에 모셔왔습니다. 둘째는 토요일에 한 번 더 병원 가서 감기 치료받아야 해요.
설기 몸무게가 2.01kg인데 얘는 2.15kg이더라고요. 수의사 선생님 말씀하시길 유치도 안 빠져서 3-4개월쯤 됐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덩치 큰 동생이 생긴 셈이죠.
처음 온 고양이는 밥도 안 먹고 숨어만 있는다는데 얘는 계속 안기려고 하고 비비려고 해서 루다린님이 홀딱 반했어요.
게다가 엄청난 체육 냥이여서 활동성이 어마어마합니다.
생식 먹이는데 밥이 맛있는지 계속 눈물을 줄줄 흘리는게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공고 기간은 오늘 30일까지고, 31일부터 소유권이 저희에게로 이전됩니다.
제 심장을 들었다 놓은 이 아이 이름은 설탕입니다. 백설기 동생 백설탕!
가끔 사진 게시판에 사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3
설탕이가 허피스 감기 이겨내고 건강하게 함께할 수 있도록 응원 부탁드려요~:3
그럼 이만
총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