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중학교때쯤일 겁니다.
당시 교실이 1층이었는데 제 자리가 교실 왼쪽 창문 바로 옆이었어요. 창문 바깥은 운동장이었고.
원래 열리는 창인데 문틀이 고장이 났었는지 그냥 창틀을 없애고 큰 유리창으로 마감을 해놓은 자리였어요.
근데 창 유리가 프레임보다 높이가 조금 낮아서 위쪽으로 틈이 있었던걸로 기억해요.
그리고 맨 아랫줄 창은 대부분 그렇듯이 시야차단을 위해서 유백색필름으로 썬팅을 해놨었어요.
태풍이 불던 그 날, 바람이 심하게 부니까 이 유리창이 점점 배가 불러오기 시작하는 겁니다.
필름이 없는 그냥 맨 유리창이었으면 당장 깨져도 이상하지 않았을텐데
필름이 붙어있으니 깨지지는 않고 그냥 배만 심하게 계속해서 불러오더라구요.
옆 짝이랑 같이 상당히 불안해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날 태풍으로 단축수업하고 집에 가기 전까지 다행히도 그 유리창이 깨지지는 않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나서 태풍 매미가 오던 날.
그 당시만 해도 부산에 살면 매년 태풍은 한 두차례씩 오기 때문에 크게 신경도 안썼기도 했고
낮까지만 해도 바람이 그다지 심하게 불지도 않아서 어느 정도일지 알 지 못했었죠.
추석연휴를 맞아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랑 부산 서면에서 만나서 영화를 한 편 봤었죠.
근데 영화 끝나고 나오니 날씨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더라구요.
그래도 일단 밥은 먹어야겠기에 롯데백화점 뒤쪽 고깃집에서 밥을 먹는데
이 식당 출입문 상단에 설치된 환풍기들이 미친듯이 돌면서 굉음을 내더군요.
게다가 앉은 자리 옆 창문이 마치 옛날 그 때처럼 배가 불러오더라구요.
이 창도 역시나 썬팅이 되어있었습니다.
순간 어렸을 때 학교 창문 생각도 나더라구요.
불안불안하고 시끄럽기도 하고 해서 밥도 대충 먹는둥마는둥 하고 서둘러 나와서 헤어지는데
롯데백화점 앞으로 나오니 비가 수평으로 내리는데 우산을 도저히 펼칠 상황이 아니더라구요.
당연히 우산 몇 개가 바닥에 나뒹굴고 있고, 백화점 앞 인도에 오토바이 한 대가 누운채로 쭈욱 미끌려 가더군요.
안경을 쓰고 있기 때문에 앞이 분간도 제대로 안되는 상황에 겨우겨우 지하도로 내려가서 전철을 탔더랬습니다.
전철도 태풍 때문에 지연운행이 되는지 빨리 오지도 않더라구요.
한참 기다려서 탄 전철은 전력공급에 문제가 생겨서 계속해서 가다서다를 반복하고
실내등도 계속 꺼졌다 켜졌다 반복하면서 거북이 운행을 했었죠.
몇 분이면 도착할 서면->문현역 구간을 거의 30분 가까이 걸려서 도착했습니다.
그렇게 겨우겨우 집에 도착했는데 당연하게도(?) 저희 동네는 정전이었죠.
근데 제 방 창문 건너편 옆집 전신주가 기우뚱 하더군요.
저거 넘어지면 저희집 쪽으로 넘어지겠다 싶어 상당히 불안해 했습니다.
그리고 문현교차로 쪽에 "시티프라자" 라는 당시 주변에서 제일 높은 주상복합건물이 있는데
변압기 폭발로 추정되는 "펑"소리 + 불꽃이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아무튼 그날 밤은 살면서 거의 유일하게 태풍 때문에 무서웠던 날로 기억이 남아있네요.
<태풍 왔던 다음 날 새벽 6시경 하늘>
<같은 시각 문현교차로 옆 시티프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