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인정기설(悪人正機説)입니다.
이 이론은 일본 가마쿠라 시대의 불교 종파 정토진종의 창시자인 신란이 주장한 사상입니다.
당시 일본은 전란과 사회적 혼란이 지속되면서, 기존 불교의 수행 중심 교리가 민중들에게 와닿지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신란은 천태종에서 수행했으나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호넨의 정토종을 만나 아미타불의 본원력에 의지하는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신란은 이를 더 급진적으로 발전시켜 “악인이야말로 아미타불의 구제 대상”이라는 사상을 제시했죠.
그의 핵심 주장은, 인간은 근본적으로 죄를 짓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범부)이며, 선행을 통해 스스로 해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히려 악인일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깨닫고 아미타불에 의지하려 하므로, 선인보다 구제받기 쉬운 존재라고 보았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인간의 노력이나 공덕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향한 절대적인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는 악인이라고 아미타불을 믿으면 나쁜 짓 해도 된다는 건 아니고, 아미타불을 믿으면서 악한 행동을 안 하거나 가급적 줄여야 한다는 조건이 붙긴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사상은 사무라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전쟁과 살육 속에서 살아가는 사무라이들은 기존 불교의 계율과 업보 사상으로는 죄책감을 극복할 수 없었지만, 악인정기설을 통해 “전장에서 많은 죄를 지어도 아미타불을 믿으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정당성을 얻었습니다.
또한, 수행을 강조하는 기존 불교와 달리 단순한 염불 신앙만으로 구원을 약속했기에, 복잡한 교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농민과 서민들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졌습니다.
결국 악인정기설은 기존 불교의 엄격한 계율 중심 사고방식을 뒤집고, 혼란한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무라이와 민중들에게 새로운 신앙적 기반을 제공했습니다.
이후 정토진종은 일본에서 가장 큰 불교 종파 중 하나로 자리 잡으며, 서민 불교로서의 입지를 확립하게 되었죠.
이러한 정토진종의 사상은 묘하게 개신교와 비슷한지라 훗날 전국시대 당시 일본으로 선교를 온 예수회 선교사와 수사들은 마르틴 루터의 무리가 일본에도 있다고 평했습니다.
근데 궁금한게 자기가 회개해서 구원받았다고 하는 사람한테
내가 예수님한테 기도로 항소해보니까 너 유죄래 라고 하면 누가 이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