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스파게티 웨스턴을 비롯한 서부극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굳이 시간이 남아 철 지난 영화를 본다고 해도 재즈 에이지 이후의 시대극이 더 나아요. 무법천지의 무력만이 최고인 야만의 계절은 싫거든요. 그러면서도 디스토피아 게임들은 좋아한다니 저도 좀 이상하긴 해요.
애초에 서부극물은 잘 안하기에 전작도 그 이전작도 해보지를 않았어요. 단순히 어쌔신 크리드 오디세이 패치로 거의 최종까지 진행하던 세이브파일이 날아가서 할 게임이 없었기에 무료함을 못 이기고 구매한거죠.
게임을 즐기며 전체적으로 느끼는 감각으론 굼뜨다? 랄까 모든 동작과 반응이 다른 fps나 액션게임에 비해서 한템포 늦은 느낌이에요. 주 이동 수단인 말을 타거나 총격전을 벌이거나 산악지형을 뜀박질 할 때에도 의도했던거와 다르게 약간 핀트가 나간 반응과 그 때문에 엉성한 행동을 하게 되네요.
(서부극하면 말 그리고 열차 추격씬이죠!)
제조사는 현실성을 위해 일부러 의도했다곤 하는데 버튼 하나만 누르면 순식간에 조종간에 앉아서 풀 악셀을 밟으며 튀쳐 나가는 액션게임들이 즐비한 게임세상을 살다가 말의 안장에 오르는 데만 수초가 걸리는 게임을 하고 있으면 답답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죠.
게다가 수시로 조약돌 만한 돌뿌리에 걸려서 낙마하다가 갱단에게 총알 세례를 받는 꼬라지를 보고 있으면 더 그래요.
그리고 똥아웃 76에도 있는 빠른 이동이 레드 데드 리뎀션2는 너무나 제한적이라 맵 끝에서 끝까지 이동하는 초장거리도 직접 말 타고 열심히 이동하는 수밖에 없어서 불편한 것은 어쩔 수가 없어요.
메인퀘스트 이외에 즐길 요소가 생각보다 많지도 않고요.
잔돈벌이를 할 반복퀘스트들이 있긴 한데 정말 말 그대로 반복퀘스트인지라 장소만 달라질뿐 같은 일거리를 반복하기만 하고요. 나머지 추가요소로 희귀동물을 잡거나 희귀한 말을 길들이거나 현상금 붙은 악질 범죄자를 잡거나 보물을 탐색하는 몇가지가 있지만 역시나 장거리 이동에 지치기에 업적 쌓기를 좋아하는 성실한 게이머가 아닌 저는 금새 지치더라고요.
그래도 나름 여러가지 아기자기한 꾸밈 꺼리가 없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저기 마을에서 계절에 맞는 복장을 갖춰 입고 말 안장의 뿔과 등자 종류와 재질, 색깔까지 고르고 모자도 바꿔가며 쓰고 놀 수는 있으니까요.
레드 데드 리뎀션 2의 장점은 아무래도 락스타 특유의 연출력이 아닐까 싶어요. 게임 진행 중 상당부분에서 지정된 키만 누르면 시네마틱 카메라로 전환 되면서 정말 서부영화를 보는 듯한 카메라 구도로 게임을 즐길 수가 있어요. 장거리 이동 중에 자동운전?을 걸어놓고 시네마틱 모드를 키며 감상하면 멋지긴 하네요.
(시네마틱 모드를 켜면 화면 위 아래가 까맣게 잘리면서 마치 영화처럼 카메라 워크가~)
단점만 얘기한 거 같은데 그건 제가 음침하고 네거티브한 성격이라 뭔가를 평가할 때에 일단 흉부터 보고...
사실 전체적으로 상당히 재밌습니다. 이야기부터 살펴 보자면 게임의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전작에서 무슨 사고를 친 한 무리의 갱단이 거대 탐정사무소에게 쫓기며 어떻게든 연명하기 위해 발버둥치는 내용입니다.
주인공은 무법으로 먹고 사는 갱단이에요. 나쁜놈이죠. 하지만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더욱 정이 들고 애착이 가는 캐릭터이네요. 주요 조연 중에 하나가 적장의 악당이었다는데... 그걸 알기 전까지 그 캐릭터도 참 마음에 들더라고요. 주조연 할거 없이 캐릭터 하나하나가 정말 실존하는 사람들이 연기하듯 색깔이 있고 냄새가 있습니다. 일직선의 선택지 없는 메인퀘스트를 진행하면서도 이쁜 놈은 이쁘고 미운 놈은 밉게 정말 맛나게 만들어진 캐릭터들이에요.
(아무리 19세기 물가라지만 200달러로 십수명을 먹여살리다니...)
주요 이야기 줄기가 단방향의 별 선택지 없이 미리 예견된 방향으로 흘러가기만 하는 전개인데다 조작감도 어눌하고 다른 부수적인 즐길 꺼리가 충분히 마련 되어 있지 않지만 하나 하나 자기 개성이 살아 있고 사람냄새를 풍겨대기에 소설 읽듯이 영화 보듯이 느긋하게 즐기기엔 참 좋은 게임 같아요.
플스로 즐긴 게임이라 콘솔에 맞게 최적화 되어 있었겠지만 그래도 딱히 진행에 문제가 생길만한 버그나 오류도 없었고 제가 바라는 이상이 많았을 뿐이지 느긋하고 차분하게 즐긴다면 서부시대의 경치와 생활상 npc들의 자잘한 이야기, 여기 저기 자잘하게 설정을 맞춘 여러가지를 즐겁게 누릴수 있었어요. 송곳 찍기 게임이라던가 판돈이 너무 적었지만 텍사스 홀덤, 낚시, 사냥 같은 것들이 말이죠.
(낚시만 해도 시간 가는 줄 모르겠더라고요. 손맛이 있습니다.)
아직은 사회 곳곳에서 게임이란 문화를 사회악이나 덜 여물은 사람들의 유희로 여기고 있지만 이렇게 뭔가 각각의 냄새를 가진 게임들이 많이 생긴다면 하나의 문화로 봐주는 날도 오겠죠....만화는 슬슬 그렇게 인정 받는거 같던데... 그리고 모 게임들처럼 자기 IP를 자폭하는 일들만 없다면...
그리고 플스 프로였으면 더 멋진 그래픽으로 게임을 했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