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추석 연휴를 이용해 처가 식구들과 함께 대만을 다녀오기로 했습니다. 왜 대만이냐면 제가 대만을 좀 안다는 이유로.
전에 올렸던 대만 사진이랑 중복되는 건 어지간하면 다 뺐어요. 그리고 사진은 많지만 다 합쳐서 8MB 정도입니다. 리사이즈만 잘하면 사진 많이 올릴 수 있어요.
혼자나 두명이서 가는 여행이야 익숙하지만, 한번에 다섯명이 움직이자니 이것도 보통 일이 아니네요.
길을 잃어버리면 비상금으로 택시타고 바로 오라고 주소를 준비했습니다. 복잡한 한자를 손으로 쓰자니 못 알아먹을듯 하여 깔끔하게 프린터로 뽑기로 했는데. 왜 저거 하나 뽑는데 일러스트레이터를 켜는 걸까요. 마누라가 어도비 빌런인듯..
시작은 송산공항 2층의 똠양꿍. 유심 줄이 너무 길어서 일단 밥부터 먹기로 했어요. 이것저것 많이 들어가고 맛도 좋은데 단점은 가격이 좀 나간다는 거. 거기에 봉사료도 따로 받아요.
공항 화장실에서 본 선진문물. 오오오 다이슨이 수도꼭지도 만드나 하고 찍었는데, 알고 보니 저건 단순한 수도꼭지가 아니라 핸드 드라이어를 달아둔 거더라구요. 씻고 바로 말릴 수 있으니 좋겠지만 하나하나 따로 설치하려면 돈이 좀 나갈 듯.
숙소 체크인을 기다리면서 85도. 대만의 로컬 카페입니다. 여기에선 바다소금 커피를 꼭 드셔보세요. 단짠단짠한게 커피믹스의 완전체를 보는 듯 합니다. 땀흘리며 일하는 분들 간식용으로도 좋을것 같은데.
숙소 건물은 아무리 봐도 허름합니다. 사실 대만 건물의 상당수가 저래요. 기후 특성상 후줄근하게 보일 수밖에 없거든요. 거기에 복도도 영 별로입니다. 그런데 안에 들어가면 인테리어는 한국 수준으로 잘해놔요.
꼭대기층에 위치한 아파트 하나를 빌렸습니다. 엄청 넓은 베란다에서 타이페이의 랜드마크인 타이페이 101이 보인다는 장점이 있죠. 아래에서 설명할 사건 때문에 타이페이 101에 대한 이미지가 영 안좋아졌지만.
밤에 보면 이렇습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주 멋져 보였죠. 실제로 멋지기는 합니다.
그리고 타이페이 101이 보이는 베란다를 쓰는 방법. 술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면 저기서 맥주 한캔씩은 꼬박꼬박 따지 않았을까 싶네요.
다시 돌아와서. 첫날은 간단히 시내 구경만 하기로 했어요. 어느 나라를 가던 다 그렇겠지만, 대만도 엄청 비싼 동네를 가면 입이 쩍 벌어지도록 잘해놓거든요. 이건 루이비통 모래액자.
대만에 유명한 기업들은 많죠. TSMC부터 시작해서 ASUS/기가바이트/MSI 기타등등이 다 대만 회사니까.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 성품서점이 있다는 걸 대만 사람들이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될거라고 감히 말해 봅니다. 책부터 시작해서 별의 별 물건을 다 파는 건 교보문고-핫트랙스와 같아 보이지만, 셋팅해 둔 수준과 양과 시스템이 달라요.
위 사진은 갈때마다 침만 흘리고 돌아오는 세바스티앙 살가도 사진집. 제네시스 한권만 사고싶다..
스테들러 만년필을 전시해 놨습니다. 써봤습니다. 지금까지 파카/라미의 최하위 모델에 만족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습니다. 부드럽고 매끄럽고 유연하고 경쾌하고 거침없이 펜이 나가네요. 다만 글씨 쓸 일이 없고 돈도 없어서 사진 않았어요.
저녁은 팀호완. 홍콩 본점은 미슐랭 가이드 별을 받은 곳이죠. 홍콩까지 안 가고 대만에 와도 먹을 수 있습니다. 대만 딤섬 하면 딘타이펑을 많이들 떠올리시는데, 거기가 질렸다면 여기도 괜찮아요.
가운데에 3개 있는 돼지고기 만두가 유명한 메뉴지만, 그거보다는-
왼쪽 아래의 저 새우 만두. 녹아요. 입에서. 입이 녹는건지 만두가 녹는건지. 하여간 녹아요.
성품서점 한정판 사과 탄산수. 대만 물가를 감안하면 비싸지만 그 값을 충분히 합니다. 물 대신 마시는 탕진잼을 누려보고 싶네요.
마트에서 발견한 카스. 아 이런데까지 한류하지 말아주세요. 대만에 좋은 맥주도 많은데 왜 그래요. 일본 맥주도 엄청 싸게 들여오면서 저런거 전시해둘 공간이 아깝지도 않나요.
하지만 코리안-스타일-프라이드-치킨은 인정. 제발 비빔밥 김치 말고 양념치킨 밉시다.
마트에서 발견한 괴상한 물건. 저 퀘이커 브랜드를 아시는 분들은 아실텐데, 그게 왜 인삼이랑 영지버섯까지 있는거죠. 이런 동양적인 식품에 퀘이커 아저씨라니 뭐가 전혀 안 어울리는데.
대만이 과일이 싼건지는 잘 모르겠으나, 어쨌건 여기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과일이 있는 건 사실이죠. 오른쪽의 용과는 한국 부페에서 냉동된 것으론 먹겠지만, 신선한 생과일은 역시 동남아를 가야.
이건 패션후르츠. 엄청 맛있는건 아닌데 한국에선 못먹는거라 생각하니 숟가락이 가집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와사비망고.. 아니 잘 익은 망고. 한국에선 이제 망고 못 먹을 것 같네요.
다음날은 택시를 대절해서 돌아다녔습니다. 대만에서 택시 탄건 이번이 두번째고 택시 투어는 처음인데, 기사분이 엄청 친절하고 좋더군요. 전에 불미스런 사건도 있었지만 그건 불법 택시였기도 하고...
한국 사람들이 잔뜩 돌아다니는 예류에서 사진 몇장 찍었지만 얼굴이 나오는 건 빼고, 남은 건 바닥에서 멸치 말리는 것 뿐이네요.
인원 수가 많다보니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종류가 달라지더라구요. 해산물 가게에서 세트로 시키는 건 일정 인원은 되야 가능한 일이겠죠.
한국에서 관광지의 큰 가게에 들어가 시키면 바가지/질 떨어짐/불친절을 걱정하게 되는데 여긴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일단 해산물이 신선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뭐.
다음은 역시 대만 좀 아는 분들은 당연히 알고 있을 스펀. 저는 미신 같은건 질색이라 천등 날리는 것도 전혀 관심이 없었으나.. 이게 단순히 기원이 아니라 '놀이'라고 보면 좀 이야기가 달라지네요.
한국 사람 많이 상대해봤을 것 같은 '가용엄마 천등'에서 해봤는데, 사진 포즈를 이끌어나가는 솜씨가 아주 능숙했어요. 천등값이 2배로 더 비쌌다고 했어도 아깝지 않았을 듯.
저는 누가는 좋아하는데 누가 크래커는 별로.... 그냥 누가의 순수한 맛을 즐기고 싶거든요. 이번에도 선물용으로 몇개 산게 다 누가입니다.
이것 역시 다들 아는 지우펀. 그리고 지우펀의 뻔한 사진. 그냥 '쥬펀'이라 쓰지 왜 지우펀인가.. 하는 의문이 항상 남지만, 사람 많이 지옥펀이라 갖다 붙인 걸 보면 납득은 됩니다.
시간이 남아서 타이페이 101에 갔습니다. 전망대는 1시간 넘게 줄을 서서 표를 사야 1시간 30분 뒤 입장이 가능한데, 정작 그 옆에 자동판매기에서 한국어로 된 안내를 보며 살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많더군요.
일단 입장권부터 질렀습니다만 너무 비싸요. 1사람당 600대만달러. 그 돈으로 딘타이펑에 가서 만두 먹으면 배부를거에요. 그리고 그 딘타이펑조차도 대기가 70분이라고 나와 있어서 대충 푸드코트에서 한끼.
101은 전망대로서의 가치는 상당히 훌륭하지만, 입장료가 비싼데다 여기저기 사람을 우롱한다는 느낌이 너무 크네요. 입장할때 찍은 사진은 따로 돈주고 사야 하고, 한정판 나노블럭은 겁나 비싸고... 그러니 저런 댐퍼나 구경합시다.
VR 체험. 당연히 돈 내야 합니다. 사실 그보다는 MSI 시스템이라서 한장.
전망대 아래층에선 값비싼 산호니 옥 같은 장식들을 전시해 놨습니다. 몇천만원~몇억원짜리를 쭉 깔아둔 다음 몇십만원짜리를 보여줘서 구입을 유도하는 전략이 영 마음에 들지 않네요. 그냥 예술품으로만 놓고 봐도 제 취향은 절대로 아니지만.
잉거 만두가게. 작년에 갔을 때 정말 맛있는 만두를 먹었었는데, 그때는 어지간한게 다 팔리고 남은 걸 대충 산거라 무슨 맛을 샀었는지를 모르겠네요. 고기만두는 그냥 무난하게 맛있는 편.
포켓몬 음료수 자판기.
잉거는 도자기 마을이지만 첫인상은 역시 길 옆의 가로수죠. 여기에선 간단하게 국그릇 4개 정도만 구입.
모니터 테스트할때 쓰던 사진의 찻잔들이 아직도 있네요. 근데 날씨가 흐려서 그런가 그때 그 색은 안나옵니다.
신베이터우 온천갔다 내려오면서 들린 카페. 카페 이용 시간 제한이 있고, 미니멈 차지가 있다는 것까진 이해해 주겠는데, 커피가 맛이 없어요. 이게 체인점이던데 다 맛이 없을듯. 카페라기보다는 밥이랑 빵이 주력인것 같기도 하고.
단수이에서 먹은 망고빙수. 원래는 아이스몬스터를 좀 갈까 했으나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작년에 비해 매장 수가 줄어든것 같더라구요. 이거나 저거나 빙수는 빙수지 하고 한그릇.
단수이에서도 해물 식당. 혼자였으면 그냥 자잘한 음식들이나 먹어서 대충 끝냈을텐데, 인원이 늘어나니 이런것도 먹을 수 있습니다.
궁보지정. 혹은 궁바오지딩. 이걸 먹어본게 몇년만인지 모르겠네요. 가게마다 맛은 제각각이지만.
양념이 오묘한 조개요리.
그냥 고등어인듯
생선이 오래되서 흙 냄새가 나지만 강렬한 탕수 소스의 맛으로 커버가 됩니다.
단수이까지 왔으니 당연히 대왕 카스테라를 먹어야지. 유행은 지났지만. 이라 생각하고 한입 먹었는데, 한국에 지점이...? 저기는 범람하는 양산형 대왕 카스테라와는 다르겠지요.
산 아래는 날씨가 괜찮았는데, 양명산에 오르니 안개가 잔뜩 껴서 사일런트 힐이 됐습니다. 산행은 아쉬웠지만 휴게소에서 파는 우육면이 상당히 괜찮더군요. 정통 우육면이라기보다는 이것저것 넣은 편인데 그게 오히려 한국 사람 입맛이 더 잘 맞는 듯.
언제 봐도 시스템이 좋은 딘타이펑. 이번에 가니 더 업그레이드된것 같더군요. 돼지갈비 덮밥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메뉴입니다. 만두는 못 먹어도 저건 먹어야 할 정도로.
국물이 필요하다 싶어서 시킨 탕. 먹을만 하네요.
주인공 소룡포.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물만두인줄 알았는데 그냥 야채만두네요.
내 안에 새우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슈마이.
이건 게살 소룡포입니다. 게 모양의 밀가루 반죽이 보이시죠.
한가지 아쉬운 건 반찬삼아 시켰던 오이김치가 괘나 늦어서 후식으로 먹었다는 거.
나오면서 들린 우산가게. 비가 자주오는 대만 특성상 좋은 우산이 있을거라는 판단하에 들렸는데.. 우산이 가볍고, 든든하고, 예쁜 건 둘째치고. 여기에서 우산 파는 청년이 영어를 겁나 잘해요. 한국인들이 몰려와서 보고 있으니 되게 유창하게 영어로 설명해요. 제가 지금 특정 직업을 폄하하려는 건 아닌데, 왜 이런 인재가 우산을 팔고 있는거지? 싶을 정도에요.
마지막 날. 숙소 근처 25th corner 카페에 들렸습니다. 처남이 커피를 하니까 아무래도 카페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잖아요. 옆의 자동차 정비소는 좀 무서운 곳이더군요. 기본이 벤츠고 무르시엘라고도 봤습니다.
여기에선 이렇게 콩을 볶습니다. 처남 소감은 '이것이 커피다' 바꿔 말하면 다른건 커피로 인정 못한다는 소리. 맛이 상당히 괜찮아서 대만 올 일 있으면 일부러 여기까지 내려오...기는 쉽지 않겠군요. 번화가에 위치한 곳은 아니라서.
사장인지 직원인지 모르겠으나, 카페를 혼자 지키고 계시던 분한테 '얘가 커피 하는 애거든? 그래서 우리가 대만와서 커피 많이 마셔 봤는데, 여기가 가장 맛있어!'라고 해줬더니 너 중국어 잘하는구나 하면서 서비스로 빵을 내줬습니다.
근데 이건 제가 정말 중국어를 잘해서 그런게 아니고 그냥 외국인들이라 서비스 아닐까 싶네요. 거 왜 우리도 명백한 외국인이 '오우 이거 마시써요'이러면 하다못해 단무지 한쪽이라도 더 주고 싶고 그렇잖아요.
마무리는 아종면선의 곱창국수. 본점은 못가고 널널한 분점입니다. 이것까지 해서 마누라가 대만가서 먹고 싶다는 건 다들 먹은 듯.
대만이 날씨 더운거랑 습도 높은거랑 벌레 많은거만 빼면 참 좋은데.. 뭐 이런 기후 덕분에 과일이 풍부하다는 걸 빼놓을 순 없겠군요.
요새 젊은 연령대에서 타이페이 여행 자주 가는 것도 다 그만한 여유가 있으니, 해외여행 고민중이신 분들은 한번 생각해 보심이.
원래 동남아 쪽에는 큰 관심이 없었는데 이 글을 보고 꼭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