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일본으로부터 한 소포가 도착했습니다.
케이스에 담겨있는 이 녀석의 정체는 바로,
손목 시계용 시스루백입니다.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로된 베젤과 1mm 두께의 사파이어 글라스로 이루어진 녀석이죠.
동일한 구성으로 시스루백을 소량 생산하는 곳이 싱가포르와 일본 두 곳이 존재했는데
요새 엔화 가치가 많이 떨어지기도 했고,
이번 주인공에게는 Made in Japan이 더 잘 어울리겠단 생각에 일본 생산품을 구매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인공인,
Grand Seiko Hi-Beat 56GS
스와 세이코사에서 생산된 마지막 기계식 그랜드 세이코*입니다.
이후 그랜드 세이코란 브랜드는 12년 동안 명맥이 끊기게 되죠.
쿼츠 파동과 함께 화려하게 부활하기 전까지 말입니다.
* "스와 세이코사 마지막 기계식 그랜드 세이코"라는 타이틀은
여전히 56GS에게 유효합니다.
쿼츠 파동 이후 스와 세이코사는 쿼츠 무브먼트를 전문적으로 제조하기 시작했고,
이는 스와 세이코사가 세이코 엡손 - 프린터 만드는 그 엡손 맞습니다 - 이라는
현재의 회사명이 된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습니다.
현재 기계식 무브먼트를 사용하는 그랜드 세이코는
과거 다이니 세이코사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던 세이코 인스트루먼트에서 생산중이니
"마지막 적자 기계식 그랜드 세이코"라는 타이틀은 앞으로도 56GS에게 유효할 것입니다.
클래식 그랜드 세이코의 특징이라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흔히 금배꼽이라 불리는 백커버의 14K 금으로 된 메달리온*입니다.
다만 오래 차고 다닐 경우 쉽게 부식되어 버린다는 문제점을 갖고 있었죠.
* 이 금 메달리온은 당시 세이코의 두 기둥이었던
스와 세이코사의 '그랜드 세이코'와 다이니 세이코사의 '킹 세이코'가 갖고 있던 상징이었습니다.
세이코는 하나의 기업 안에 두 개의 공업소를 운영하며 경쟁적인 성장을 도모했고
그랜드 세이코와 킹 세이코의 싸움은 그랜드 세이코의 승리로 끝나며
킹 세이코는 역사의 뒤안길로 걸어가게 됩니다.
지금의 기계식 그랜드 세이코들이 다이니 세이코사(現 세이코 인스트루먼트)에서 만들어진다는 걸 생각해보면
참 아이러니한 역사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시스루백으로의 교체는
백커버의 메달리온을 보존하고 동시에 시계의 심미성을 높이는 것에
그 목적이 있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물론 전자보다 후자의 이유가 좀 더 크다는 사실에 부정하지 않겠습니다만,
스와 세이코사 기술력의 결정체였던 5641A 무브먼트이기에
꽁꽁 감춰두기보단 드러내는 것에 더 큰 의미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백커버를 교체하는 것은 사실 오래전부터 계획해온 것이었는데
얼마전 소량 생산된 이 녀석의 재고가 별로 남지 않았단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구매하게 되었습니다.
여지껏 작동하는 모습에
눈을 감고 귀 기울이며 들어왔었는데
직접 눈으로 들여다보니 감회가 새로운 기분이네요.
물론 비용이 적잖이 들기 때문에
함부로 추천을 남발할 수 있는 작업은 아닙니다만 ㅎㅎ;
시스루백으로의 교체 하나만으로도
클래식에 품격을 더하는데 더할나위 없이 충분하다는
말씀을 드려보며 글을 마쳐보려 합니다.
그럼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