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아이패드 프로 9.7을 2달 정도 쓰면서 느낀 점을 맘껏 적은 글입니다. 비교군은 주로 서피스 프로 4나 서피스 북입니다. 필력도 후달리고, 혼자 느낀 점 아무 말 대잔치라 전혀 객관적이지도 않고, 여하튼 몇몇 분들은 공격적이라고 느끼실 수도 있겠습니다. 그냥 일기 적듯이 적었으니까 길고 재미없고 해도 그러려니 해주십사.
말투가 싫으시면 뒤로가기, 내용이 맘에 안 드시면 얼마든 댓글로.
이것저것 사진 찍어둔 게 많은데 그냥 글만 쓰겠습니다. 캡쳐 같은 사진이 전부 버그 때문에 화면 안 나오고 그런 거라, 굳이 나쁜 얘기 사진 섞어서 길게 할 이유 없으니까.
들어가기 전에, 저는 애플 싫어합니다. 폐쇄적이고 어쩌고 저쩌고도 괜찮습니다, 아이폰에서 이어폰 잭을 뺀다던가 하는 기행은 상관 없습니다. 꼬와서 안 살거니까. 하지만 웹에 쫙 깔린 맹목적인 빠들의 행동이 주된 애플을 싫어하게 된 이유입니다. 이어폰 잭을 뺐을 때 에어팟이 편하네~ 3.5 없는게 낫네~라던가 아이패드 프로 12.9가 서피스보다 생산성이 좋네~ A9X가 코어M이랑 동급이네~ 같은 글 도배하고, 애플이 하면 선구자고 다른 회사가 하면 카피캣임! 하는 논리를 2017년까지 써먹고요. 자신의 존엄성이 아이폰 시리얼에 종속된 것이기라도 한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보기 싫습니다. 큼. 적고 보니 쉐도우 복싱이네요. 그냥 그간 느낀 점을 대놓고 누구라고 특정하긴 뭐하니까 쉐복이라고 할게요.
애플 싫어한다고 했지만 애플 기기는 싫지 않습니다. 아이폰 4와 함께 사온 애플 인이어는 여전히 제 주머니에서 10년 채울 때까지 구를 것이고(폰은 사망;) 아이패드 1을 처음 만져봤을 때 아버지가 뭐라든 추석 3일 내내 그거 잡고 있었던 추억은 결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식스건이었나... 위의 예를 보시면 알겠지만 상당히 오래 전 애플 기기들을 좋아했는데, 나 때는 말야 카악~ 하는 의미도 없잖아 있습니다. 요즘 애플 하는 돈독오른 짓 보면 특히나요.
지금까지 애플 기기와의 추억은 여기까지 팔고, 이제 기기 자체로 들어가 봅시다.
지금 9.7인치 하이엔드 아이패드를 사야겠다면 유일한 선택지인 아이패드입니다. 아이패드 5세대는 오히려 얘보다 떨어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그만큼 싸고) 돈 생각 없이 그냥 최고의 9.7 아이패드가 필요하다면 얘 밖에 없을 겁니다. 6월 5일의 WWDC 전에 쓰려고 급하게 몇 달 된 원고 서너번 다시 고쳐서 씁니다.
디스플레이.
끝내줍니다. XPS 12처럼 4K를 박아넣었다던가 하는 변태 짓을 하거나 그렇지는 않습니다만. 삼성이나 소니에서 이미 8-10인치 2560x1600 태블릿 많이 내놨거든요. 그래도 여전히 멀리서 보니까 해상도는 충분. 빛샘도 없고, 불량화소도 없고, 색도 균일하고. 최고다 아이패드쨩!
밝기도 좋습니다. 지하철에서 지상으로 나오면 얘도 같이 읽기 좋게 밝아집니다. 다만 밤에 쓰기엔 최저 밝기가 너무 밝다는 단점이 있습니다. 서피스 북 최저밝기가 밤에도 안 보일 정도로 어두운 화면을 보여주는 거에 비하면 아쉽네요.
색감이야 애플 기기에선 당연한 거고. 저반사 코팅에 라미네이팅에 여하튼 신기술도 많고 그 이름 값 합니다. 특히 저는 라미네이팅 된 화면이 너무나 당연하다고 여겼기 때문에 아이폰 SE를 사고는 이게 정전식 터치스크린 맞긴 하냐? 하고 신경질냈지만 아이패드는 그 갭이 훨씬 덜해서 좋네요. 깨지면 터치까지 작살나겠지만...?
트루톤이라고 주변 환경 색 따라서 화면 색을 바꿔주는 기능이 추가되었는데, 얘가 의외로 물건입니다. 지하철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 확실히 옆에 앉은 사람들 화면보다 보기 편하다는게 느껴집니다. 킨들 같은 전자잉크의 장점을 조금 가져온 느낌이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퀀텀닷이 더 흔해지고 해서 백라이트 색마저 바꿀 수 있게 된다면 그때 완성본이 나오지 않을까 점쳐봅니다. 그냥 기믹으로 끝나는 거 아닌가 싶은 기능이라 걱정했는데 정말 좋습니다. 폰은 모르겠지만 태블릿쯤 되면 없으면 불편할 거 같아요.
4:3 비율은 이제 채용한 태블릿이 많습니다만 저는 열렬한 3:2 지지자라서 불만이 좀 있습니다. 영화를 보면 절반이 레터박스, 유튜브를 보면 1/3이 레터박스, 이런 식이라 좀. 책 보기에 좋냐 하면 괜찮긴 한데, 3:2는 A4지 비율이잖아요?
소리.
역시 끝내줍니다. 쿼드 스피커라고 위 2개 아래 2개가 달려있는데, 어지간한 스피커 대신 써도 될 정도로 소리도 크고 막귀인 제가 들어도 찢어지거나 베이스만 울리는 일 없이 고른 소리가 납니다. 베이스가 좀 미묘하긴 한데 그래도 6.1mm치곤 사기급입니다. 저는 일코중이라 데레스테 같은 거 돌리면 항상 이어폰인데, 공강날 같이 집 빌때 스피커로 돌려 보면 무지막지합니다.
저는 항상 단점 한 개씩 짚지 않으면 죽는 병이 있어서 쓰자면, 스피커는 좋은데 구멍의 위치는 안 좋습니다. 스테레오라는데 그게 옆으로 나가지 앞으로 안 나와요. 영화를 보면서 손으로 양쪽을 감싸면 더 소리가 좋게 들리는데, 이럴 거면 차라리 소니처럼 화면 좌우 유리를 깎아서 전면 스피커 쓰는게 더 좋을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패드 1부터 이런 모양이었는데 애플이 들어줄 리는 없지만.
그으리고오, 이게 소리에 영향을 주는지는 못 느끼겠지만 위아래 스피커의 배치가 살짝 다릅니다. 위는 전원버튼 근처 위치, 아래는 라이트닝 포트 바로 옆. 저는 위아래양옆앞뒤대각선상하좌우좌우우좌 대칭이 아니면 짜증내는 변태라서 계속 확인해보게 되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어폰 잭은 여기엔 잘 계십니다. 그 유명한 “Courage” 덕분에 이젠 장점이 되었죠? 뭐가 문제인진 모르겠지만 제 헤드폰을 연결했다가 빼니까 계속 헤드폰 출력으로 고정이 되네요. 해결 방법을 모르겠어서 껐다 켰습니다. 이어폰은 잘 되는 걸로 봐서 헤드폰 탓인가 싶은데… 그러다 말다 하네요. 다른 애플 기기에선 별 문제 없는데, 일단 적어둡니다.
크기, 무게.
킹갓엠페러 에어 3.
역시 크기 때문에 한손으로 쓰기는 좀 어렵지만, 미니를 사기는 스펙이나 가격이나 좀 그래서요. 이번에 애플이 미니 라인을 버린 것 같아 안타까워요. 케이스를 씌워도 다른 태블릿하고 비슷한 두께입니다.
다만, 다만, 다만. 카메라. 왜? 진지하게 이거 튀어나오게 만든다는 생각은 어느 뇌가 새우 눈알만한 놈 아이디업니까? 케이스가 없으면 얘가 흔들려요. 특히 저는 펜슬도 샀거든요? 필기할 때 딱 느낌이 오던데, 누가 이거 얼마 안 되니까 괜찮다 그랬어요? 아, 케이스까지 사서 쓰시라고? 여하튼 별 이상한 짓 골라서 한다. 진짜 사용할 때 기분 나쁩니다.
아이폰과의 연동.
애플 제품이 다른 것들에 비해 우월하다고 확언할 수 있는 요소이죠. 잘 됩니다. Handoff든 메시지나 이런 거 포워딩이든. 다만, 저는 알람을 아이패드로 켜는데, 헤이 시리 하면 아이폰이 인식할 때도 있고 아이패드가 인식할 때도 있어서 애매합니다. 자기 전에 침대 옆에 충전기 꽂아 두고 언제 깨워라 하는데, 아이폰이 시리를 채 가서 다시 눈 뜨고 휴대폰 알람 끄고 아이패드에 알람 켜고 하는 건 귀찮죠.
그런데, 카카오톡 없습니다. 그래서 결국 폰 켜야 됩니다. 의미와칸나이. 또, 문자가 왔는데 아이폰은 XXX가 보낸 문자라고 연락처 저장해 둔 거 맞게 뜨는데, 패드에선 +82-10XXXXXXX이렇게 뜹니다. 기본이…
애플 펜슬.
여기서부턴 이제 슬슬 까는게 늘어납니다.
펜슬. 샀습니다. 네. 주변에선 "엌ㅋㅋㅋ앱등앱등헤이헤이"라던가 "필통에 만년필이랑 애플 펜슬 같이들었넼ㅋㅋㅋ”, “여름에 부채로 써도 되냐?” 같은 반응이었죠. (광기에 찬 친구는 두개 사서 젓가락으로 쓰자...고 합디다.)
필기감은 뭐라고 할까요? 아이패드 위는 유리죠? 애플 펜슬은 와콤 펜팁이랑 비슷한 미끄러운 플라스틱 팁이고요. 그럼 이 두개를 문지르면 어떤 느낌이겠어요?
뭐긴 뭐야, 그냥 유리에 플라스틱 문지르는 느낌이죠. 전혀 종이란 느낌 없이 쭉쭉 밀려나갑니다. 딜레이도 적다 그랬는데 전 53의 Paper라는 앱이랑 원노트, Nebo등을 써 봤지만 서피스 펜에 비해 아주 우월하다고 느끼진 못했습니다. 더 빠른 거 같긴 한데, 그렇다고 여전히 디지털 펜이라는 티는 나니까. 적어도 서피스 펜은 유리 문지르는 느낌 아니거든요. 와콤 태블릿이랑 비교하긴 좀 미안한가 싶지만 그것도.
팜 리젝션도 이게 됐다 말았다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 노트 앱에서 생기는 거 보니 펜 탓 맞습니다. 쓰고 나면 가끔 오른 화면 아래에 작은 점들이 있습니다.
잘 그리지는 못하지만 그림도 그립니다만 가장 큰 아이패드의 넌센스는 얘는 아이패드라는 거. 데스크탑에서 돌아가는 포토샵? 사이툴? 클립 스튜디오? 다 없습니다. 저는 특히 폴더 트리가 인간이 만든 그나마 가장 덜 불편한 파일 정리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전히 애플의 웃기지도 않은 앱 간 공유 방식도 싫습니다.
거기다 Ctrl+Z가 직관적으로 안 되는데 그림을 그린다는게 저는 적응이 안 되어서 한두장 그리다 때려쳤습니다.
필압이나 틸트는 잘 됐습니다. 하지만. 지원 안 하는 앱도 태반이라서 의미와칸나이. 원노트조차 필압, 틸트 안 먹어요~ㅎㅎ. 당연한 결과입니다. 수많은 애플 기기중에 고작 최신 고급형 기기 2개가, 추가 구입해야 되는 액세서리 기능 하나 지원하자고 개발자들이 재깍재깍, 이것저것 고쳐줄 거라고 생각하면 안 되죠.
배터리도 모든 강의의 디지털화를 꾀한 게 과분했는지 오래간다는 생각은 안 들었습니다. 역시 펜은 아예 배터리 없는EMR로 만들던지 몇 달씩 가는 교체형이 답이라고 봅니다. 충전은.......어댑터도 줍니다만 그냥 주변의 비웃음을 감수하고라도 즉석에서 부채 조립하는 게 덜 귀찮습니다. 뒤쪽 뚜껑(33000원^^) 잃어버리기 딱 좋으니 조심하시고. 펜 자체도 잘 굴러다니니 그것도 조심하시고. 전자제품 주제에 사람이 참 신경써줄 것 많죠?
그리고 펜의 사용성 얘기를 안 할 수 없죠. 서피스 펜이 문단 선택, 터치가 스크롤의 역할을 하는데 얘는 그냥 터치랑 별다를 게 없어요. 포토샵에서 3손가락으로 실행 취소/실행 조작이나 5손가락으로 전체화면 같은 조작 하던 서피스에 비하면 어이가 없을 정도로 펜이랑 터치를 구별 없이 씁니다. MS가 이거까지? 싶을 정도로 펜과 터치를 구별해놓은 거에 비하면 얘는 그냥 정확한 손가락 이상의 가치를 모르겠습니다. 이건 애플 펜슬 컨셉 자체가 문제에요. 옆에 버튼도 없고요, 뒤에 지우개도 없고요, 자석 꽤 좋아하는 애플제라 자석으로 붙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하나에 마법의 가격 12.9만원이죠? 서피스 펜 2개 + 펜팁 킷 2개 값인데, 저는 서피스 펜 2개 사서 젓가락으로 쓰는 쪽의 효용성을 더 높게 보겠습니다. 그리고 펜팁은 이쑤시개로 쓰셔도 이거보단 돈이 덜 아까울 겁니다. 걔네는 싸고 포토샵에서 지원도 괜찮거든요.
아니면 최신 서피스 펜이 같은 가격인 99$인데 아마 그게 더 나을 거에요. 딜레이, 틸트, 필압, 기능, 편의성 모든 면에서 서피스 펜이 스펙시트상으로 압살합니다.
iOS.
저는 iOS 7부터 도입된 UI에 매우매우매우 호의적이기 때문에 iOS 10도 디자인이나 애니메이션 같은 겉보기에는 좋은 점수를 줄 수 밖에 없습니다. 제어 센터에서 플레이어가 분리된 건 짜증나지만 지금 그런 사소한 게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똥덩어리들이 쌓였어요.
손가락 네개로 하는 제스처들은 버벅거리고, 프레임이 떨어지는게 눈에 보입니다. 화면을 돌리면 배경화면은 혼자 띡 90도 각 재서 애니메이션 없이 돌지를 않나, '기본' 캘린더 앱은 수시로 팅팅팅팅탱탱탱탱 하질 않나. 총체적 난국도 아니고 총체적 개판입니다. 안드로이드보다 불안정하다는 생각을 할 줄은 몰랐는데, 이제 그런 소리 해도 되겠는데요?
안 좋은 부분만 적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이게 애플이 '기본'이라고 만들어 준 것들이잖아요. 근데 그게 '기본'이 안 되어 있다는 게 얼마나 부아가 치밀어오르는지 아시나요?
그리고. 앱이 없습니다. 구글 캘린더가 올해 초에 처음 아이패드로 나왔습니다. 구글이 일을 안 하는 것 같아요? 다음, 카카오톡이 없습니다. 카카오톡이 없으니 아이패드를 잡고 있거나 말거나 주머니에 휴대폰 넣어두셔야 하고. 삼성 Flow 같은 거 없습니다. 지출 관리하는 앱이 아이폰엔 있었는데 패드엔 없어 깔아보니 화면 옆에 조그만하게 x2버튼이 뜨네요? 2011년 아이패드 1 쓸 때 보던 걸 2017년에도 봐야 된다고요?
다른 태블릿 시장 앱이 궤멸이라면 얘는 근근히 살아는 있다 정도이지 충분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고작 이거 때문에 아이패드 샀나..
그리고! 시X! 퍼스트파티 계산기가! 날씨 앱이! 없습니다! 아이패드용으로요! 어이가 없죠? 네! 저도 없어요! 어이가 없어도 이렇게 없기는 참. 워낙 어이가 없어서 제가 인터넷에 검색도 해 봤어요. 아이패드 계산기라고.
웃긴 건 시리한테 날씨 물어보면 또 답은 곱상하게 잘 합니다. 뭐 하자는 건지.
아이튠즈도 까야겠습니다. 얘 지 멋대로 죽을 때도 있고, 분명 음악을 다 옮겼고 패드에서도 뜨는데 재생이 안 되는 파일들이 있습니다. 같은 앨범 안에서 첫 곡은 나오고 두번째 곡은 안 나오는 거는 저도 참신하다는 생각이 드는 뒤통수 때리는 방식이네요. 아이폰에서도 마찬가지. 태그로 정리한 게 뒤죽박죽되는 거야 기대도 안 했습니다.
그래도 제일 크게 실망한 파트는 아닙니다. 개판이라는 표현이 실망이 아니면 뭐냐고 묻지 마세요. 기글이라서 아주*^^* 곱게 순화한 거니까.
배터리.
그냥 그렇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적당한 사용(해외 벤치에서 말하는 Mixed Use) 기준으로 8~9시간 버팁니다. 게임 하면 좀 더 달고, 만화 낮은 밝기로 보면 덜 달고 하는 그런 식입지요. 이걸 산 이유도 적당한 성능 + 좋은 화면 + 좋은 배터리를 찾다가 나온 것이어서요. 그냥 그래요. 아이패드 5세대만큼 변강쇠는 아니고, 그냥 다른 태블릿들만큼 갑니다. 모자라지 않는다는 걸로 넘어갈게요. 헤비한 사용에서 조금 더 가면 좋겠습니다.
다만 100% 구간이 이상하게 긴데…(한 15-20분동안 100%) 이거 LG가 하던 짓 아니던가요?
다시 신나게 까아죠? 자, 8시간 잘 썼다 치고, 충전해 봅시다.
어...왜 안 되죠? 12W 충전기요? 말이 되냐 시X 고속충전기 사야지.
고속 충전기는 아이패드 프로 12.9 전용?
넵. 하루에 10시간 쓰고, 자기 전에 충전하세요. 물론 잠을 언제나 4시간 이상 잘 수 있는 규칙적이고 여유 넘치는 삶을 살고 계신다면. 배터리 시간에서 벌어놓은 점수 충전 시간에서 다 갉아먹었습니다. 그나마 하루에 100% 쓸 일이 잘 없어서 더 까지 않는 걸 다행이라고나 하려고요.
생산성.
저는 태블릿이 미래의 컴퓨터 형태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아니, 신봉합니다. 만약 지금 추세대로 저전력화가 진행된다면 정말 대부분의 작업은 태블릿+eGPU 독 조합으로 처리하는 게 꿈이 아닌 세상이잖아요. 그래서 더욱 아이패드에 거는 기대도 컸고요. 애플이 경쟁작이라고 우기는 서피스 시리즈를 제가 정말 극성 빠질을 하는 이유도,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모바일 컴퓨터에 가장 근접한 기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가격 빼고 ㅜ)
이제 본론으로. 진지한 얘기를 할 겁니다. 아이패드에서 생산성을 논한다는 건 “푸흡ㅋㅋㅋ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라는 답이 나오리란 것을 압니다. 저도 얼마 전까지 그랬거든요. 그런데 애플 펜슬을 사고 하니 정말로 못 쓸까? 조금 불편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호기심이 스멀스멀 자라났습니다. 싸구려 서피스처럼 정말로 못 쓸까? 하는 생각이 계속 들어요. 그리고 오피스 앱들을 깔고 블루투스 키보드도 써 보고 하다가 느낀 것.
이건 아니다. 아니다. 절대. 아니다. 화면이 크고 작고를 떠나 일단 iOS에 ARM으론 안 됩니다. 윈도우 태블릿이 단순히 야겜 머신이나 액티브 엑스 고기방패가 아님을 깨달았습니다. 키보드 커버를 팔지만 마우스가 안 됩니다. 탈옥해서 쓰는 사람마저 있으니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건 아닌데, 의도적으로 맥이랑 차별화하려고 이따위 짓 해 둔 거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원고지에 쓴 초고를 워드로 옮기고 있었는데, 스캐너 앱으로 사진을 찍고 워드를 옆에 스플릿 스크린으로 띄워서 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확대가 어느 수준까지만 되고 그 아래 문단은 안 보임. 그래서 아날로그 감성을 채우며 원고지를 들고 타자를 쳤죠. 뭐하는 짓인지. 다음 문제는, 타자를 치며 이어폰을 꽂고 있었는데 음악이 안 나와서 보아하니 스플릿 스크린에서 이미 앱 2개를 띄웠으니 유튜브를 틀 수가 없음. 윈도우였으면 상상조차 못할 부분에서 막힙니다.
저런 거 외에도 파일 공유가 아주 불편합니다. 2번째 지적합니다. 음악은 차라리 아이튠즈 매치 사용중이라 오히려 편합니다. 그런데 문서는, 여러 앱을 쓰면 된다 워크플로로 돌려라 하지만 드래그&드롭만큼 편한 걸 두고 내가 왜요? 어이쿠, 드래그&드롭을 쓸 수도 없죠. 아이패드는 마우스 따원 지원 안 하니까. 지원할 생각도 없다고 했고! (놀랍지만 진짜 애플이 그랬습니다. 2017년인데도 역시 경이롭죠.)
또, 폰트 추가가 매우 제한적이고 당연히 PC 수준의 기능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어도비, 소니, 오토데스크 등등 x86에서 당연하게 여겼던 회사들마저 아이패드에선 감사합니다 하고 쓰게 되며, 쓰다가도 프로그램과 애플리케이션의 차이가 뭔지만 잘 알려주고는 다시 삭제하게 될 겁니다. 4K 편집 어쩌고 하는데, 잘라붙이는 거만 할 거면 충분하겠지만 저는 그딴거나 하려고 프로 딱지 붙은 아이패드 안 샀습니다. 서피스에서 애프터 이펙트로 뭔가 만들던 거에 비하면 아이무비 같은 건 불쌍하기 짝이 없습니다. 불쌍하다고 썼는데, 뉘앙스는 Pathetic에 가까운 한심함+경멸에 가깝습니다.
왜 x86이랑 비교하냐고요? 아니, 애플이 iPad “Pro” 라잖아요?
Super. Computer 라는 캐치프레이즈 X 까세요. 아이패드는 전통적인 "Computer"라는 물건이 할 수 있는 일의 절반도 못 합니다.
세상에는 노력으로 이룰 수 없는 게 있습니다. 태어날 때 부터 정해진 인종이나 생물학적 성별 같은 거요.
그러니까, 아이패드에 프로 붙인다고 그게 컴퓨터 되는 거 아닙니다.
정리
아이패드 프로는 아이패드입니다. 그 이상을 바라지 마십시오. 애플이 광고에서 생산성을 아무리 강조해봐야 싸구려 윈도우 태블릿이나 파일 관리라도 마음껏 할 수 있는 안드로이드 태블릿보다 못합니다. 걔네는 저가형이 싸기라도 하지 이건 5배 이상 뜁니다. 앱도 충분하지 않(거나 다른 플랫폼에선 무료인 게 여기선 유료거나)으며, 기능도 빈약한 애플 펜슬의 그나마 있는 기능을 완전히 사용하지 못하는 것도 다수입니다. SD 카드 애플이 안 넣는 거야 이젠 뭐라 하기도 지치지만 정말 생산성을 논한다는 아이패드 프로에서 이게 없다는 건 속이 제곱으로 터집니다. 저는 애플 광고를 믿고 한 번쯤 속아 주지 하고 생산성을 위해 아이패드를 샀습니다. 그리고 속았네요. 생산성을 위해서라면 아이패드 사지 마십시오. 애플 광고요? 감히 말하겠습니다. 그거 쌩구라입니다.
아이패드는 아이패드입니다. 현 아이패드 프로의 생산성이 빈약하다면, 그건 스윗스팟이 아니라 거기가 아이패드의 한계점입니다. 아이패드는 아이패드입니다. 맥북, 서피스 발끝은 고사하고 발자국조차도 못 따라옵니다.
반대로, 아이패드 에어로서는 어떠냐. 최고입니다. 글자 보기에 편하고, 가볍고, 배터리도 일반적인 아이패드만큼 가지, 소리도 출중하고. 컨텐츠 소모를 위해서는 이만한 게 없습니다. 저는 통학이 하루 5-6시간이라 노트북을 거의 들고다니지 않는데 (또는 “들고다닐수 없다”가 정확하겠네요), 지하철에서 책 읽다가, 학교에선 간단하게 펜슬로 메모하고, 돌아오면서 게임 조금, 집에서 웹 서핑 하고, 밤에 운동하면서 영화 하나 틀고, 침대에선 시리한테 나 내일 못 일어나면 죽는다, 이런 식으로 쓴다면 완벽한 기기라는데에 동의합니다. 정말로, Just it Works! 라는 말 그대로, 그냥 됩니다. 가끔 터지는 iOS 버그만 넘어가면 괜찮아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아도 그냥 아이패드 들고 나가면 하루 종일 뭔가 할 수 있어요.
그리고 거기서 드는 의문.
그럼 굳이 모바일 게임 좀 하고, 웹 서핑 하려고 이 비싼 기기를 써야 돼? 아이폰으로도 되는데?
이 회의감을 이기지 못하고 저는 얘를 팔았습니다. 여행도 있지만, 저는 거기 서피스 들고 갈 거거든요.
제가 너무 많은 걸 바래서 실망도 컸나 봅니다. 결국은 그냥 아이패드에요.
한 줄 요약
PRO는 개뿔.
애플빠지만 애플이 iOS 가지고 생산성 얘기하는거 못 들어주겠더라고요. 패드는 동영상이나 보고 게임이나 좀 하면 됐지 마우스도 없는게 어디서 생산성 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