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살까말까 고민중인데 스펙보다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차피 뜯어서 SSD를 교체한다면 굳이 큰 용량 라인업을 살 필요가 있을까?"
0. 왜 뜯을 생각을 하나?
스팀덱의 장점 중에선 기존의 스팀계정을 그대로 쓸 수 있다는 것이 크게 작용한다고 생각합니다. 보통 새로운 콘솔을 사게 되면 콘솔 뿐 아니라 콘솔에서 플레이할 게임 타이틀 비용도 만만치않게 들어가는데, 스팀계정과 계정이 보유하던 기존게임을 통해 그 비용을 어느정도 상쇄시킬 수 있습니다.
제 스팀라이브러리에 설치된 게임 일부의 용량을 캡쳐한 이미지입니다.
문제는 게임의 용량입니다. 클라우드 게이밍 기기가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를 위해선 미리 게임을 설치해둘 필요가 있는데 2D게임들은 용량을 많이 차지하지 않지만 AAA급 게임들은 보통 50GB넘는 용량을 차지하기 때문이죠. 최상위모델을 골라도 설치해둘 수 있는 AAA게임은 최대 9~10개가 한계입니다.
물론 현재 플레이하는 게임만 설치해두고 나머지는 지워버린다면 용량은 그리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몇년간 쭉 스팀을 사용해보니까 저는 다 설치해두는게 편하더라고요. 일단 용량이 크기때문에 지우고 재설치하면 다운로드에 시간이 걸리는게 첫번째고, 두번째로 스팀은 워크샵같은 모드가 있기때문에 모드의 세부적인 설정을 해두면 지우고 설치하는게 생각보다 번거로웠습니다.
1. 다른 용량확장 옵션
분해에 앞서 고려할 수 있는 용량확장 방법엔 MicroSD슬롯과 Type-C Gen3.2 USB포트가 있습니다. 모든 버전에 들어간 SD슬롯을 통해 간단하게 용량을 확장할 수 있는데, 아마 엔트리모델의 용량이 적은건 이 슬롯을 잘 활용하라는 의도가 어느정도 깔려있었을거에요.
리뷰어들에 의하면 SD카드에 설치된 게임을 실행하면 초기 로딩이 오래걸리지만 게임플레이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SD카드로 모든게 해결가능하다면 상위라인업에 굳이 고용량/고속의 SSD가 들어갈 필요가 없지 않았을까요? 그냥 스마트폰처럼 더 큰 용량의 eMMC혹은 UFS를 탑재했겠죠. 아니면 아예 64GB 단일모델로 나왔을지도 모르고요.
I/O속도로 인해 게임프레임이 떨어지는 게임이 분명 존재하고, 로딩이 길어지면 짜증이 나는건 어쩔 수 없는 문제입니다. 왜 노트북에서 SD카드 대신 뒷판을 뜯어서 SSD 업그레이드를 하는지, PS4유저들이 왜 내부 HDD를 SSD로 갈아치웠는지 생각해보면 결국 답은 "빠른 저장장치"입니다.
또 Type-C포트가 있고 대역폭도 충분하므로 여기에 외장SSD같은 저장장치를 달아 활용할수도 있을겁니다. 하지만 뭔가를 달고 다니면 거추장스러운건 어쩔 수 없을겁니다. 충전도 어렵고요.
결국 저같은 생각을 한 사람들이 많았나봅니다. 벨브에 질문메일이 엄청나게 갔고, 그 결과 발표되었던 초반에 비해 스펙시트가 엄청 자세해졌습니다.
2. 모든 버전에 M.2 슬롯이 있음
스팀덱은 3가지 버전으로 나와있는데, 저장장치의 차이가 가장 크다보니 특히 거기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네요. 그 결과 엔트리모델인 64GB eMMC 모델에도 M.2 2230 슬롯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2230크기 SSD는 리테일로 잘 팔진 않지만, OEM으로 많이 들어가고 외장하드에 들어가기도 해서 잘 찾아보면 의외로 꽤 많습니다. 가격은 1TB 직구 기준 $130~150 정도 하더라고요.
즉, 엔트리모델($399) + 1TB 2230 SSD ($130~150) 조합이면 중간모델(256GB, $529) 혹은 최상위모델(512GB, $649)보다 비슷하거나 적은 비용으로 더 큰 저장공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64GB eMMC는 덤이고요.
옆에 not intended for end-user replacement라고 써있긴 한데, 이건 PS5/XBX같이 확장을 의도한 부분은 아니라는거죠. 분해하면 보증이 날아가겠지만 한국은 어차피 정발국가가 아니니 별 상관없는 이슈입니다. 문제는 분해 난이도인데 이건 ifixit같은곳에서 실제 분해리뷰를 올려주면 판단이 가능할듯합니다.
SSD로 확장을 해도 steamOS는 기본적으로 eMMC에 위치해있을텐데, OS기반이 리눅스이기도 하고, 스팀덱이 일종의 PC라 윈도우도 설치 가능하다는걸 보면 SSD쪽으로 OS를 옮기는건 상대적으로 쉬운 작업일것같습니다.
3. 상위 모델의 장점
스팀도 그 생각을 당연히 하고 있기때문에 최고사양 512GB 모델엔 하위 라인업과 달리 하드웨어적 차별점이 존재합니다. 프리미엄 반사 방지 에칭 유리라는 옵션이죠. 테크리뷰어들을 보니까 이 옵션에 대한 반응은 괜찮았습니다.
그런데 스팀덱에 화면보호용 강화유리를 부착하게 된다면 위 옵션이 그렇게 가치가 높은가? 하는 의문이 듭니다. 스팀덱도 결국 모바일 기기인데 스마트폰과 달리 강화유리의 강도가 어떻다 하는 이야기가 아직 없었습니다. 고릴라글래스를 쓴다면 버전명을 표기해줄텐데 언급하지 않았죠.
비슷한 포지션으로 들고다니는 닌텐도 스위치를 보면 사자마자 붙이는게 강화유리입니다. 강화유리를 달면 결국 반사율이 강화유리를 따라가기 때문에 반사방지 옵션의 장점이 사라질겁니다.
반사방지코팅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애플의 경우 애플케어플러스라는 일종의 보험이 있기 때문에 강화유리를 쓰지 않고 코팅의 가치를 잘 활용할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지만, 스팀덱이 그렇게까지 보증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한국말고 정식 출시국가에서도 말이죠.
4. 스팀독(Steam Dock)
이외에 스팀독도 나올 예정인데, 스팀덱을 거치해서 더 큰 화면으로 게임플레이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죠. USB-A 포트를 통해 용량 확장도 가능할겁니다. 다만 주로 거치시켜서 쓴다면 상위모델의 장점인 반사방지 디스플레이의 메리트가 더 희석될듯 해요.
5. 결론
정리하자면, 예산이 충분하고 스팀덱에 많은 비용을 투자할 생각이 있다면 그래도 상위라인업을 선택하는게 낫습니다. 사용패턴에 따라 반사방지 디스플레이의 활용성이 차이가 날 수는 있지만 어쨌든 하위라인업에선 선택이 불가능하고 차후 추가도 안되는 대체불가능 옵션이거든요. 그리고 분해는 위험성을 가지고 있으나 이를 고려할 필요 없이 고용량 SSD를 사용할수도 있고요. 물론 용량이 부족하다면 뜯어서 업그레이드를 시도해볼수도 있습니다.
다만 처음부터 512GB라는 용량에 만족하지 못하거나, 예산이 빠듯하지만 스팀덱쯤은 뜯어볼만 하다 생각한다면 저렴한 모델을 사서 SSD 장착 혹은 교체를 고려해볼만 합니다. 원래 모바일기기 만드는 회사들은 이런(뜯어서 업그레이드) 가능성 자체를 안주려고 노력하는데, 벨브가 괴짜스럽기도 하고 유저친화적이라 이런 결과물이 나온듯 합니다.
스팀덱용 데이터파일로 분류해서 다운받게 할텐데..